대학 시절의 일이다. 졸업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진짜 소설가에게 배울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정작 수업을 들어보니 창작이 아니라 이른바 소설론에 관한, 좀 딱딱하고 재미없는 강의였다. 소설 창작을 희망하는 학생이 거의 없었기에 그러시지 않았던가 싶다. 대신에, 만약 원하는 학생이 있다면 따로 시간을 내어 읽어주겠다고 하셨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일주일을 기다렸다. 수업이 끝난 뒤 복도로 부르시더니, 수십 개의 밑줄이 그어진 원고를 돌려주며 논평을 해주셨다. 학생들이 시끄럽게 지나다니는 복도, 듣는 사람도 나뿐이었지만 그건 생애 최초로 경험한 공식적인 논평이었다. 나는 신이 나서 학기를 마칠 때까지 네 편의 소설을 보여드렸다. 선생님께서는 때론 칭찬과 격려를, 때론 보다 나은 대안을 제시해주셨다. 한 번은 소설 초반에 등장하는 뭉게구름에 대해 이렇게 물어보셨다. “이 뭉게구름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요?” 예상 못한 질문이라 더듬거리면서, 그냥, 맑고 푸근한 하늘을 의미하는 거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안돼요.”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소설 내에서의 사소한 묘사 하나도 전체 내용과 긴밀히 연결되어야 해요. 빼도 무방한 문장이 소설 안에 들어가는 걸 허락하지 마세요.” 한양대 현길언 선생님의 그 말씀을 듣고 나자, 그 말씀을 듣기 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천성이 게으른 편이라,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 내가 사는 주위에는 항상 산이 우글거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어느 날 나는 반강제로 아버지와 산에 올랐다. 신춘문예를 준비하던 터라 글쓰기에 대한 얘기가 오가던 중, 아버지께서 물어오셨다. “감옥에 십 년 있었던 사람이랑 감옥에 대해 면밀히 조사한 사람, 둘 중에서 누가 감옥을 더 잘 묘사할 수 있을 것 같니?” 함정이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좋은 묘사란 생동감이 있어야 하니, 당연히 직접 체험한 사람이 더 낫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쉬운 질문을 던질 정도로 너그러운 분이 아니다. 어차피 확률은 반 반. 가지 않고 조사한 사람이요, 하고 일단 대답하고 나서는 왜 그러냐고 물어 올까봐 머리를 막 굴렸다. “그래.”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전자는 자기 경험에 얽매이기 쉬워서, 그걸 맹신한 나머지 배타적으로 사고할 수가 있거든. 자기가 아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거야. 압도적인 경험 자체보다는 오히려 상상이 깃들 빈틈이 있는 경험이 유용할 때가 많단다.” 안고 있던 숙제 하나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고려대에 계시는 시인 김명인 선생님은 짓궂은 분이다. 시 창작 수업에서 내가 쓴 시를 합평할 때, 책상을 탁탁 쳐 박자를 맞추며 변사의 흉내를 내셨다. 나름 고심해 쓴 문장인데 그렇게 신파조로 읽는 걸 들으니 무척 상투적으로 느껴졌다. 그날 저녁 여러 학생들과 식사를 마치고 나서, 차로 모셔다 드리겠다는 누군가의 제의를 거절하며 숙소까지 걷겠다고 하셨다. 덕분에 조교인 나도 함께 걸어야 했다. 얼마쯤 걸었을까, 선생님이 뜬금없이 물으셨다. “멋지게 쓰면 다 될 것 같지?” 밤이라 달아오른 얼굴을 감출 수 있어 다행이었다. 육 년 전인가, 아니면 그 일이 칠 년 전이던가? 망신의 아픔은 상찬의 기쁨보다 오래 간다. 또 그만큼 도움이 된다. 글에서 상투성이란 치명적이다. 그리고 상투성은 진정성의 결여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선생님이 그 말씀을 하실 당시의 내 문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내 글이 상투적이지 않은지 늘 고민한다.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선생님이 하셨던 대로 책상을 탁탁 치며 변사처럼 읽어본다. 그래도 낯 뜨겁게 들리지 않는다면 일단은 통과다.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그 말을 창처럼 곧장 내지를 때, 내 글이 나 자신을 움직일 수 있을 때 글은 저절로 멋져질 것이다. 재미있는 건, 김명인 선생님이 나를 정신적으로 학대한 그 방식 그대로를 요즘의 내가 흉내 낸다는 점이다. 그러할 때 제자들의 얼굴이 붉어지는 걸 보면 꽤 즐겁다. 복선은 골치 아픈 존재다. 어설프게 깔았다가는 결말이 빤히 보이고, 그렇다고 너무 깊이 숨겼다가는 생뚱맞은 결말을 준다. 어느 정도로 해야 할 것인가? 이 질문은 자신의 독자를 한정시키는 것과 같다. 복선의 수준을 올리면 상대적으로 저연령층, 저학력층의 독자는 포기해야 한다. 수준을 낮추면 고급독자로부터 비웃음을 산다. 예술성과 소통성의 오묘한 줄다리기인 것이다. 복선과 키워드가 발견되지 않아도 나름대로 좋은 이야기, 그러나 발견되면 더 좋은 이야기가 바로 뛰어난 소설이라 믿는 건 작가의 입장에서나 가능한 생각이다. 학자로서는 그런 잣대를 가질 수가 없다. 끝내 들키지 않았다면 그건 실패한 복선에 불과하다. 고려대의 소설가 서종택 선생님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다. “꽁꽁 숨겨라, 하지만 반드시 들키게 만들어라.” 이 말씀은 본디 복선이 아니라 글의 의도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복선에 그대로 적용해도 여전히 유효하다. 복선이란 사건과 결말의 단초며, 사건과 결말은 고스란히 글의 의도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가능한 최대치로 숨겨두고, 그 복선이 복선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다른 어딘가에 키워드를 숨겨두는 것도 괜찮은 방식일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래도 복잡하고 골치 아프다 느껴질 때면, 항상 서종택 선생님의 말씀을 되새겨본다 ― 꽁꽁 숨겨라, 하지만 반드시 들키게 만들어라. 마음이 편해진다. 이런 간단명료한 경구는 어느 날 뚝딱 나오는 게 아니다. 돌이켜보면, 내게 글쓰기를 가르쳐 주신 스승들이 어디 이 네 분만이겠는가? 한 외로운 인간의 글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영혼들의 주관이 친밀하게 중첩되어 있는 법이다. 다만 내 글쓰기의 스승을 생각하다보니, 이 분들의 말씀이 두서없이 떠올랐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