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영래_시인. 소설가. 1963년생. 소설 『숲의 왕』 『씨앗』 『푸른 수염의 성』, 시집 『하늘이 담긴 손』 『두 별 사이에서 노래함』, 에세이 『편도나무야, 나에게 신에 대해 이야기해다오』 등
8. 수렵에서 농경으로―그 전환점에서 발생한 종교 혁명
지난번에는 쿡 제도에 전해오는 야자나무의 기원과, 하와이 제도에 전해오는 과일나무와 구근식물의 기원에 관해 살펴보았다. 두 신화에서 공통된 점은 어떤 존재의 자발적인 희생, 매장, 그 무덤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식물의 축복이다.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세계종교사상사』에서 ‘기원 신화의 대부분은 식물 재배나 곡물 재배를 행하는 원시민족들로부터 수집된 것’으로서, ‘그들 신화 중에서 상당히 널리 분포되어 있는 주제는 죽음을 당한 신적 존재로부터 식용 알뿌리 식물과 과일나무(코코넛, 바나나 등)가 태어났다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뉴기니의 섬들 가운데 하나인 세람에는, ‘하이누벨레’라고 불리는 신적인 여성이 팔다리가 절단된 채 매장되었는데, 그녀의 몸에서 그때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던 식물, 특히 구근식물들이 솟아나왔다는 전설이 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먹게 하는 자들’인 동물과 식물에서 그 상이함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이 지점이다. 그 차이점을 가려서 보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지난 봄호에 게재된 ‘동물 편’에서 노루 춤과 들소 춤의 기원을 통해 살펴보았듯이, 동물들은 이미 이 세상 안에 존재하는 자들이었다. 인간은 동물을 사냥하는데, 그 사냥을 돕는 것은 ‘동물의 주인’이라고 불리는, 그 동물 집단의 영적인 우두머리이다. 노루와 들소가 목숨을 잃지만, 그것은 사냥의 형식을 빈 자발적인 헌신이다. 때문에 사냥은 그 자체가 성스러운 제의가 된다. 늑대 춤의 기원에서도 보았듯이, 늑대를 토템으로 하는 부족민들은 사람이 죽으면 동물의 나라로 가고, 그곳에서 늑대로 변신하게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인간은 그 늑대로부터 사냥술과 경이로운 사냥 도구들을 전해 받는다. 동물의 주인으로부터 양식으로 선물 받은 동물들은 일정한 제의를 거치면 되살아난다. 또한, 사람이 죽으면 그가 먹고살았던 그 동물로 거듭난다고 그들은 믿었다. 이처럼 신비스러운 순환 구조에 비추어보면, 인간이 먹는 어떤 동물은 그의 조상이기도 한 것이다.
구석기시대의 동굴 벽화들은 그런 점에서 아직은 다 해독되지 못한 많은 상징들을 함축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은 동물이 거듭나기를 기원하는 주술과 춤이다. 부활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테마였던 것이다.
제의와 종교의 속화된 형태인 민담에서 그 자취를 찾아보도록 하자. 러시아의 저명한 민속학자 알렉산드로 아파나세프가 편집한 러시아 민담에는 아내를 위해 ‘놀랍고도 신기한 것’(이 민담의 제목이기도 하다)을 찾는 상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한 노인을 만나 그의 집으로 따라간다.
“노인은 상인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말했습니다. ‘저기 우리 집 마당에 걸어 다니는 거위가 보이지?’ ‘네, 보입니다.’ ‘자, 그럼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보게. 야, 거위야, 이리 오너라!’ 그 말을 듣자 거위는 집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노인은 프라이팬을 집어 들더니 다시 거위에게 말했습니다. ‘거위야, 프라이팬에 들어가 누워라.’ 그러자 거위는 정말로 프라이팬 위로 올라가 드러눕는 것이었습니다. 노인은 프라이팬을 오븐 안에 넣고 거위를 구운 후 꺼내어 식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자, 이제 앉아서 먹자고. 단 하나, 조심할 것이 있네. 다 먹고 난 뼈는 절대 식탁 아래로 던지지 말고 전부 한 군데에 쌓아 두어야 하네.’ 두 사람은 식탁에 앉아 둘이서 거위 한 마리를 통째로 먹어치웠습니다. 전부 먹고 나자 노인은 모아진 거위 뼈를 식탁보로 싸더니 그것을 마루바닥으로 던지며 말했습니다. ‘거위야, 일어나 날개를 흔들며 마당으로 나가거라!’ 어라, 이게 웬일이죠? 신기하게도 거위는 마치 오븐에 들어간 적조차 없었다는 듯이 일어나더니 날개를 흔들며 마당으로 뛰쳐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상인이 말했습니다. ‘주인어른,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야말로 정말로 놀랍고도 신기한 것이군요!’”
뼈와 연루된 부활에 관한 자료들은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 풍부하게 제시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다만 그 핵심적인 의미만을 새겨보도록 하자. 엘리아데는 앞에서 언급한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원초적 종교 사상의 중요성은 먼 후대에까지 살아남는 그 생명력을 통해 확인된다. 그중에서도 생명이 뼈로부터 다시 태어난다는 신앙은 상당수 문화 속에서 지속되고 있다. 동물의 살을 다 먹고 난 후에도 남은 뼈를 부수어버리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것은 수렵민이나 목축민의 문명에 고유한 사상이지만, 더욱 복합적인 종교와 신화 속에서도 존속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예가 토르 신의 염소이다(토르는 게르만 신화의 제우스에 해당하는 우레의 신으로서, 두 마리의 염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하늘을 가로질렀다고 한다). 그 염소들은 저녁에는 목이 잘려 잡아먹히지만, 그 다음날 아침이면 토르 신은 남겨진 뼈를 가지고 죽은 염소들을 되살려낸다. 에제키엘의 환영(「에제키엘」37:1-8) 역시 유명하다. ‘뼈로 가득 찬 들판’으로 인도된 이 예언자는 하느님의 명령에 복종하여 소리친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라. 주 여호와께서 너희 뼈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생기를 불어넣겠다. 너희가 살아날 것이다’ (…)소리가 나더니 이 뼈 저 뼈가 서로 붙어 연결되기 시작했다. 내가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가죽이 덮였다.”
이야기가 앞서갔지만, 죽은 자들이 되살아나는 수렵 신화에서 농경 신화로 눈길을 돌리면, 무엇보다 먼저 우리 앞을 가로막는 것은 살해의 개념이다. 식용 식물은 애초에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의 발생에는 살해와 매장과, 동물에서 식물로의 변용을 통한 부활이 요구되었다. 20세기 초에 아마존 강 상류를 탐험했던 테오도르 코흐 그륀베르크는 식인 풍습이 있는 야나후 족을 통해 태양-소년 밀로마키의 전설을 채록했는데, 여기에는 수렵에서 농경으로 옮겨갔던 원시부족의 전환기적 위기감과 삶의 변화가 잘 드러나 있다.
“옛날 옛적에 위대한 물의 집, 태양의 땅에서 온 작은 소년이 있었는데, 그의 노랫소리는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수많은 사람들이 들으러 찾아왔다. 소년의 이름은 밀로마키였다. 그러나 그의 노래를 들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서 생선을 먹기만 하면 죽어버렸다. 그래서 죽은 사람의 친족들이 어느새 청년이 되어버린 밀로마키를 붙잡았으며, 자신들의 형제를 죽인 위험인물인 그를 커다란 장작불에 태워버렸다. 그럼에도 젊은이는 최후의 순간까지 아름답게 노래를 불렀으며, 불꽃이 그의 몸을 핥는 동안에도 그는 노래하였다. ‘이제 나는 죽는다, 이제 나는 죽는다, 이제 나는 죽는다, 내 아들아, 이제 나는 이 세상을 떠나간다!’ 그리고 그의 몸이 열기로 부풀어 오를 때에도 그는 여전히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하고 있었다. ‘이제 내 몸은 부서진다, 이제 나는 죽는다!’ 그러고 나서 그의 몸은 터져버렸다. 그는 죽어서 불에 완전히 타버렸지만, 영혼은 하늘로 올라갔다. 한편 그 재는 바로 그날 그 장소에서 녹색의 긴 이파리로 자라, 점점 커지고 커져서 쭉쭉 뻗어나가더니, 다음날에는 이미 커다란 나무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세상에 나타난 최초의 팍시우바 야자수였다. 사람들은 이 나무로 커다란 피리를 만들었고, 그 피리에서는 예전에 밀로마키가 불렀던 노래처럼 아름다운 소리가 났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열매가 익으면, 모든 과일의 창조자이며 증여자인 밀로마키를 기리며 피리를 불고 춤을 춘다”(캠벨의『원시신화』에서 재인용).
▲ 구석기 시대 동굴벽화 중 하나인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 구석기 시대의동굴 벽화들은 사냥을 떠나기 전의 입문의례. 사냥감에 대한 경의에 찬 경배, 죽은 동물이 거듭나기를 기원하는 주술과 춤을 담고 있다.
식용 식물을 통해 인간이 도달한 새로운 종교. 엘리아데는 그것을 ‘곡물 재배의 성공에 의해 시작된 종교 혁명’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신적 존재의 살해, 또는 자발적인 희생에 의한 식용작물의 탄생. 이 이야기의 영적인 변용이 어디에 이르게 되는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이 땅의 가장 위대한 희생양이 무엇인지 잘 알았던 예수는 이렇게 말한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요한 12:24) 바울로 또한 고린토에서 말하고 있다. “내가 이제 심오한 진리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죽지 않고 모두 변화할 것입니다.”(고린토1 15:51)
죽음의 기원에 관한 인도네시아의 신화에 의하면, 태초에 살던 인류의 조상에게는 양성의 구분이 없었고, 탄생도 죽음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신을 찬미하는 거대한 축제가 열렸는데, 그 모임에서 춤을 추던 한 사람이 그만 사람들의 발에 밟혀 죽는 일이 생겼다. 그 순간 사람들의 성(性)이 나뉘었다. 그래야만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수 있고, 죽은 사람의 빈자리가 채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을 묻은 자리에는 나무 한 그루가 솟아났는데, 거기에는 먹음직스런 열매들이 열렸다. 사람들은 그것을 따서 먹었다. 이때부터 삶과 죽음이 나뉘고, 살기 위해서 다른 생명을 먹어야 하는, 다시 말해서 죽여야만 하는 일이 비롯되었다.
성의 분열에 따른 죽음의 발생은, 세포분열로 영생을 누리는 아베마나 짚신벌레 같은 원생동물에서 유성생식을 하는 고등동물로 진화함으로써 인류가 필연적으로 맞게 된 죽음의 생물학적 설명과 다를 바가 없다. 수렵에서 농경으로 옮아감으로써 여성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 또한 자연스럽지만 크나큰 변화이다. 엘리아데는 그 점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농경의 발견에 따르는 최초의,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결과는 구석기 수렵민들이 가지고 있던 가치 체계에 위기가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동물계와 종교적 질서 사이에 존재하던 관계는 ‘인간과 식물 사이의 신비적 연대감’이라고 불리는 것에 의해 대체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뼈와 피가 생명의 본질이며 신성함의 표현이라고 여겨졌다면, 그 이후로는 정액과 피가 그것을 체현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 후에 여성과 여성의 성스러움이 최고의 위치로 격상되었다. 여성이 식물의 재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에 여성이 경작지의 소유자가 되었다(…) 대지는 여성과 동일시되었다.”(『세계종교사상사』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