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정양_시인. 우석대학교 명예교수. 1942년생 시집 『살아있는 것들의 무게』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 『철들 무렵』 등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은 애당초 우리나라 속담이 아니었다.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기 전 자기 문도들에게 남겼던 이 말이 그 후 일본에서 속담화되었고, 조선조 말 일본공사로 와 있던 이노우에 가로가 민비(명성황후)를 제거하기 위해서 이 일본 속담을 의도적으로 우리나라에 유포시켰다고 한다. 김동인의 친일 역사소설 『젊은 그들』에는 민비를 대상으로 한 이 음험한 속담이 거듭해서 동원된다. 동아일보에 소설이 연재되던 당시(1929년)에는 그에 대한 별다른 말썽이 없었던 모양인데 오늘날 돌이켜보면 작가 김동인은 간 큰 남자 시리즈에 넣어도 좋을 만한, 간덩이가 한참 부은 작가다. 이태진 교수(서울대)는 세간의 관심을 모은 바 있던 그의 논문 「역사소설 속의 명성황후 이미지」에서 ‘나라를 망친 권력욕의 화신 민비’라는 명성황후의 왜곡된 이미지가 어디서부터 유래됐는지를 추적하여, 일본의 저널리스트 기쿠치 겐조의 『대원군전』(1910년)이 그 근거임을 밝힌 바 있다. 기쿠치는 명성황후 시해에 직접 가담한 자라고 한다. 그로 인해 왜곡된 명성황후의 이미지는 이후 장도빈의 역사서 『명성황후와 대원군』(1927), 호소이 하지메(細井肇)의 다큐멘터리 소설 『여왕 민비』(1931)로 계승됐고, 그 기쿠치의 『대원군전』을 기본 텍스트로 삼은 대표적인 국내 역사소설이 정비석의 『민비』(1981)라고 지적하면서 이태진 교수는 “이 소설은 독서계로부터 폐기처분 받는 게 옳다”고 주장한다. 김동인의 『젊은 그들』을 이태진 교수는 아마도 미처 읽지 못했던 것 같다. 김동인의 『젊은 그들』이야말로 그 『대원군전』의 골격에 약간의 야쿠자적 무협소설 장치가 가미된 것이다. 『젊은 그들』에 나오는 민비는 시아버지(대원군)를 몰아낸, 시아버지의 뺨을 때리는, 나라살림을 유흥비로 거덜 내고 가렴주구로 민생을 도탄에 빠뜨린, 그리하여 마침내 나라를 통째로 말아먹은 못된 왕비로서 온갖 비난과 야유와 원망의 표적이 되어 있다. 민비만 아니었더라면, 그를 진즉에 없애버렸더라면 마침내 나라가 망하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면서, 여러 차례 민비를 시해해버릴 기회가 있었음에도 차마 단행하지 않았던 일들을 대원군을 비롯한 소설의 주인공들은 끝까지 한스럽게 여긴다. 이 소설의 문맥대로라면 그 후 일본이 고맙게도 민비를 시해함으로써 나라를 걱정하는 ‘젊은 그들’의 묵은 원한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셈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소설이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을미왜변으로도 일컫는 그 사건은 대한제국 탄생의 빌미가 되어 오백년 조선왕조를 문 닫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을사보호조약과 한일합방의 야만적 밑그림으로 작용한다. 그것은 한반도를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저지른 천인공노할 원죄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곳곳에 항일의병들이 일어나고 김홍집을 비롯한 당시의 친일내각 대신들이 길거리에서 백성들에게 개처럼 맞아죽었던 일들을 전혀 모르기라도 한 것처럼, 식민지의 작가 김동인과 동아일보는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지 불과 35년 후에 일본의 그 야만적 원죄를 희석시키는 소설을 썼고 그것을 연재했다. 써주니까 연재한 것인지 연재해준다니까 쓴 것인지 모를 일이지만 간덩이가 한참 부은 작가와 신문이다. 동냥아치 보자기 싸움하듯 어떤 신문사는 또 그 이름의 문학상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기도 하다. 하긴 이 땅의 친일의 후손들이 끝까지 감싸주고 싶은 작가요 신문들일 것이다. 민족정론지임을 자처하는 신문사들의 음험한 행적들, 역사가 악마의 작품임을 확신하는 듯한 그 행적들이 새삼스럽다.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문하는 사상 유례가 없는 범국민적 애도물결을 헐뜯으면서 자신의 언행을 먼 훗날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역사를 과연 객관적 기록으로 여기는 건지 아니면 명성황후의 경우처럼 역사가 악마의 작품임을 철석같이 믿고 하는 소린지 그들의 역사 감각이 섬뜩하기까지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