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히라이데 다카시_시인, 소설가, 다마(多摩)미술대 예술학과 교수. 1950년생
시집 『집의 녹색 섬광(家の緑閃光)』 『젊은 접골사의 초상(若い整骨師の肖像)』, 평론집 『파선의 행방(破船のゆくえ)』 『공격의 칼끝(攻撃の切尖)』, 산문집 『베이스 볼 시학 ベースボールの詩学』 『윌리엄 블레이크의 배트 ウィリアム・ブレイクのバット』 『백구 예찬 白球礼賛』 등
* 편집자 주 : 올해 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결승전에 이르기까지 다섯 차례나 이어진 한일전이 그 중심에 있었다. 지난해 한일중동아시아문학포럼에 참가했던 일본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히라이데 다카시 씨가 WBC와 한일전에 대해 보내온 에세이를 싣는다. 작가는 일본 사회인 야구팀 감독을 맡고 있으며 평소 야구에 대한 관심이 깊어 관련된 산문집을 여러 권 내기도 했다.
4년 전 처음으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개최되었을 때 느꼈던 나름대로의 감회가 있다. 먼저 1985년 가을 처음으로 미국에 거주하면서 생생하게 맛 본 일본과 미국 야구의 차이가 그 하나이다.
처음으로 구장에 발길을 옮긴 것은 시카고컵의 리글리필드였다. 담쟁이덩굴로 덮인 벽돌로 된 펜스와 7회 초가 끝나자 중계 중이던 아나운서가 부스 밖으로 몸을 내밀고 노래를 선창하던 모습, 그런 야구장의 분위기를 한가로이 즐기는 관객들의 모습은 나를 충분히 만족시켜 주었다.
월드 시리즈 첫 시합은 객원교수로 있던 대학의 도서관원 집에서 함께 텔레비전으로 관전했다. 농장이나 공장에서 일하는 그의 친구들인 독신남자들도 함께였다. 도서관원은 소탈하고 섬세하며 지적인 초로의 남자였는데, 서툰 일본어로 “내 친구들은 모두 서민입니다”며 그들을 소개해 주었다.
진심으로 야구를 좋아하며 즐기는 그들이었으나 뜻밖에도 담담한 관전 모습에 조금은 놀랐으나, 그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주자가 삼루에 있을 때 왼쪽 파울 에어리어로 볼이 날아갔다. 삼루수가 뒷걸음질 치며 달리다 등을 돌려 볼을 잡았다. 주자가 달리기 시작했다. 삼루수는 볼을 잡으면서 이미 홈으로 던질 태세를 취했다. 3미터나 남은 곳에서 주자가 아웃을 당했다.
이럴 경우 일본의 텔레비전 해설자나 아나운서라면 삼루주자의 무모함을 꾸짖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 모인 서민 야구광들은 하나같이 그를 용감하다 칭찬했다.
월드시리즈는 일곱 경기 모두를 관전했다. 제3, 4, 5전은 세인트루이스구장으로 가서 직접 관전했다. 그리고 미국야구의 경기 평가기준에는 선수와 관객 모두에게 '용기 있는 행동'이란 항목이 분명히 포함되어 있다는 인상을 재차 확인하게 되었다. 확률을 요구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일본야구와의 차이가 여기에 있었다. 부러웠다.
그런데 이 같은 점에서 파워와 스피드로 분명 일본을 앞선 미국 메이저리그(MLB)에도 파고 들어갈 틈이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시리즈의 일곱 번째 경기는 용기와 자존심에 치중한 나머지 정신적인 균형을 잃은 한 투수의 자멸적인 한 구로 역사에 남을 결착을 맞이하게 된다. 이토록 박살이 난 월드 시리즈 최종전은 지금까지 없었다고까지 일컬어질 정도이다. 이런 점에 미국 야구의 재미와 국민성의 취약함이 혼재하는 것 같았다.
그 시합을 보면서 미국의 챔피언 팀이라 해도 그들의 허를 찔러 승리를 손에 넣는 것이 반드시 불가능한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확률을 요구하고 실패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일본야구가 그야말로 용기로 관철되었을 경우라는 조건이 붙게 되지만. 그러나 그런 야구는 데이터와 이론만의 지루한 시합과 서로 등을 맞대고 있다.
용기와 무모함은 표리하여, 무모함을 피하고 데이터와 이론에 의지한다면 분명 이길 확률은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확률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니다. 야구는 확률만으로는 이야기할 수 없는 ‘다양의 마(魔)’를 지닌 스포츠이다. ‘다양의 마’를 자기편으로 하는 능력은 선수 개개인에게서 발견된다. 상황을 보며 ‘모든 것이 가능한’ 경기에서 다음 플레이를 순간적으로 선택해 행동에 옮긴다. 그런 플레이를 끌어내는 팀이 승리에 가까운 것이다.
제2회 WBC에서 이러한 레벨을 발휘한 것은 미국이 아니었다. 쿠바도 아니었다. 미국은 메이저 리그 각 팀과의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아 전력이나 컨디션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팀을 출전시켰다. 한편 쿠바는 장난으로 심판에게 불평을 토하다 자멸하는 등 프로다운 태도라 할 수 없는 모습을 드러낸 조화롭지 못한 경기였다.
‘다양한 마’를 불러들인 게임을 보여준 것은 한국과 일본이었다. 특히 한국은 시합마다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조금은 별난 시스템 덕에 한국과 일본은 한 대회에서 5번이나 경기를 치러야 했다. ‘월드’라 이름 붙은 경기에서 타국의 미디어로부터도 이 두 나라의 특별한 관계가 입에 오르내리게까지 되었다. 다섯 시합 모두 반드시라고 해도 좋은 만큼 특별한 공기가 구장을 채웠다. 그리고 시합이 거듭될수록 그 공기는 농후해져갔다.
그 원인을 찾는다면 과거의 불행한 관계와 연루된 답에서부터 복잡한 대중심리 분석까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진정 행복한 야구는 서로가 맞물려 어느 쪽으로 구를 지 전혀 알 수 없는 훌륭한 시합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패 대승을 했다 해도 다음 대전을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세 번째 대전의 1회 말에서 한국은 갑자기 도루를 시도했다. 일본야구가 ‘무모하다’고 피하는 플레이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론을 깨뜨리는 계산이 숨어 있었다.
단적으로 드러난 이러한 플레이가 도처에서 예감되는 것이 한국야구이다. 일본야구는 이를 두려워하며 그 와중에 데이터를 수정해 나가야만 했다. 일본이 다른 나라와의 경기에서는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파워와 스피드로 용기를 중시하는 것이 미국야구이고 데이터와 이론과 기본 플레이의 정밀함으로 승부하는 것이 일본야구라면, 근년의 한국야구는 이 두 가지를 한데 섞어 상대나 시합 전개에 따라 구분해 사용하는 크로스오버 스타일의 야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지의 미국신문들은 WBC에서 이 두 팀이 벌인 멋진 시합을 알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취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글 첫머리에 소개한 1985년 가을의 경험, 야구팬이 아닌 몇몇 미국인들로부터 나 또한 “미국과 일본에서 밖에 인기가 없는데 월드시리즈라니!”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와 비슷한 느낌이 4반세기가 지난 이번 WBC에서도 남아 있다. 게다가 미국의 MLB는 월드시리즈의 현행 시스템을 고집하며 바꾸려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때와는 다른 커다란 두개의 차이가 있다. 하나는 패권을 다투는 나라에 일본과 한국이라는 동아시아의 두 강호가 생긴 것이며, 또 하나는 거기에 ‘동아시아 스타일’이라 불러야 할 야구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파워와 기동력, 이론과 기습적 공격을 꼬아 한 가닥의 실로 엮어 발휘하는 한국야구의 힘으로 인해 일본야구 또한 크로스오버 스타일로 전환해 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을 통틀어 나는 ‘동아시아 스타일의 야구’라 부르고 싶다.
메이저리그는 이미 다국적이다. 메이저리그 팬은 이미 미국인이 아닌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내셔널리즘에 호소하는 대회만으로는 치를 수 없게 된 것이 WBC란 실상일 것이다. 한편 미합중국 출신 이외의 메이저리거는 그 상업성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의구심 또한 야구팬으로서는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야구의 기원에 거슬러 올라가 다시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20세기 초두에 미국은 이 게임을 미국의 국기로서 정하려고 노력했던 역사가 있다. 1839년 쿠퍼스타운에서 애브너 더블데이라는 군인이 자신이 소년시절에 즐기던 것이 야구의 시초라는 날조된 신화를 만들었다.
실제로는 1846년 6월 근대 룰에 의한 첫 시합이 있었다. 그리고 불과 한 달 후에 신문기자였던 젊은 월트 휘트먼이 뉴욕 공터에서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모습을 보고 다음과 같은 사설을 썼다.
“이 볼 놀이에는 빛이 있다.”
다양한 민족이 모여 하나를 이루고 사는 ‘미국’에 어울리는 경기로 칭송되었던 것이다. 거기에 이미 다민족국가의 내셔널리즘이라는 분명한 모순이 내포되어 있었다.
더욱 공정하고 엄격한 사람들에 의해 이 구기가 18세기의 영국 아이들에게 Base-Ball이란 이름으로 사랑받았던 것이 증명되고 있다. 그 놀이방법이 쓰인 유희 책은 1744년 초판의 『작고 사랑스러운 포켓 북』으로, 볼을 쳐서 루를 도는 게임의 우의가 4행시로 정리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브리턴인들은 부를 찾아
대해원을 건너간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기쁨에 어찌할 바 모르며
또 다시 돌아오나니
이러한 게임이 21세기에 이르러 런던올림픽을 계기로 올림픽에서 제외되는 것은 얄궂고도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세계전략을 생각해야할 MLB가 올림픽에서 제외된 것을 계기로 WBC라는 대회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생각할 가능성이 마련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장 유효한 방법은 지금같이 메이저리거가 조정이 어렵고 집결도 하지 않는 3월 개최가 아닌, 모든 나라가 같은 조건에서 가장 좋은 상태로 일정을 맞출 수 있는 월드시리즈 개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는 한국과 일본이 그 실력을 배경으로 미국에 제시해도 좋을 제안일 것이다. 야구가 진정한 “월드스포츠”가 되기 위한 도정에 동아시아 야구가 그 열쇠를 쥐고 있다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