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 교회 다니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번갈아가며 끊임없이 나를 교회로 나오라고 한다. 나는 왠지 구원받아야 할 것 같단다. 두세 번 따라간 적이 있다. 예배라는 것을 하고 교회 식당에서 밥까지 얻어먹었다. 예배당에 모여든 사람들은 찬송가를 부르며 목사의 설교에 열광했고 신들린 듯 팔을 뻗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시종일관 미소를 유지하며 성경말씀이라는 것에 자신의 삶을 연관 시키며 말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나를 가르쳤다. 그들은 나에게 따뜻한 미소로 한 결 같이 자신들은 행복하다고 했다. 나는 얼마 안 가서 그들의 일관된 미소에, 행복에 질리고 말았다. 나는 그들처럼 행복할 수도, 매사에 감사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게 내 삶의 필연성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절망의 힘으로 살아 있고 그들은 희망의 힘으로 살아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그 집단과 나는 서로 교차될 수 없는 평행선이다. 그러므로 영원히 남으로서 가능하다.
요즘 시청 근처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점심시간이 되면 사람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몰려나온다. 엄청난 인파다. 사람들은 흩어져있는 식당으로 식성에 따라 몰려 들어간다. 들어가서 함께 먹고 다시금 회사로 같이 몰려간다. 간혹 식당에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이 있는데 유심히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주위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것을 민망해하는 것 같다. 서둘러 먹고 자리를 뜬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은근히 측은해한다. 그러면서 그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한다. 사람들은 몇 시간 후 퇴근하고 집으로 흩어져 다시금 가족공동체와 합류할 것이다. 한국의 어느 일터나 다 비슷한 광경일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똑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왠지 집단과 무리에는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래서 회사나 단체에 속하기가 꺼려진다. 얽히고설킨 관계 속이 답답하고, 그런 곳에서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반복되는 일상성이 체질에 맞지 않는다. 사랑, 희망을 방패로 앞세우고 모순의 정당성을 암묵적으로 완성시켜 가는 종교집단도 거북스럽다. 뭔가를 뒤집어 쓴 채 몰려가 관념 속에 함몰되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 또한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에 반하 듯 각 개인들은 서로 손잡고 떨어지면 안 되기라도 한 듯 단단하게 뭉쳐있다. 구원, 친절, 유대, 혈연, 사랑, 희망이 그들을 뭉치게 하는 원동력일까. 나는 이 단어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단어 속에 내포된 깊이 모를 허영과 허망, 따뜻한 강제성이 나를 진저리치게 만든다. 단체나 무리 안에는 언제나 관계가 있다. 관계 속에 얽히고설켜 가까워지면서 기대게 되고 선을 넘기도 한다. 어느 순간 아주 사소한 일에도 의지하게 되고 상처 받는 자신을 발견한다. 관계가 사라지거나 틀어지면 불안해하고 다시금 기댈 수 있는 또 다른 관계를 찾아 헤맨다. 나는 그런 식으로 유랑하는 사태를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되도록 혼자 돌아다닌다. 그게 편하고 결과적으로 서로에게 득이 되는 길이다.
쑥스럽지만 연극 연출도 한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연극작업을 하다보면 집단을 구성해야 되니 말이다. 집단으로 들어가 관계의 끈들을 붙잡고 작품을 무대 위로 온전히 이끌어내야 한다. 무수한 관계의 갈고리가 가슴을 휘갈기고 지나간다. 심연에 묻혀있던 삭은 감정들이 식도를 치받고 올라오기도 하고 관계의 압박에 숨도 턱하니 막히기도 한다. 작업이 끝나고 나서 밀려오는 허망감 역시 견디기 버겁다. 얼마나 더 갈고 부딪혀야 관계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을까. 세상의 기반이 공동체인 듯한데 내 바람은 애초에 불가능한 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이 관계들을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먹고 살아내려면 적응해야 하는 것인가.
요즘 나름 최선의 방법으로 각 관계에 적당한 거리를 두려고 하고 있다. 인내심, 그리고 침묵이 요구된다. 잘 되지도 않고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다. 살아 내는 거, 참 쉽지 않다. 오늘도 관계의 아수라 한 복판에 서서 이런 해답 없는 생각만 되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