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정말로 힘들었던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그것은 열 달의 임신기간도, 출산의 고통도 아니었다. 새벽 수유 때문에 밤잠을 설쳐야 했던 것도, 걸음마와 함께 시작된 크고 작은 사건의 뒤치다꺼리도 아니었다. 목욕탕 한 번 마음 놓고 다녀오질 못했던 감금 아닌 감금신세도 지금 와서 생각하면 오히려 견딜 만 했고 일년 내내 같은 머리 모양으로 견뎌야 했던 스트레스 따위는 차라리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이가 생각이란 것을 하고 말을 하게 되면서부터 느끼게 된 존재감에 비한다면. 물론 임신사실을 알고 태동을 느꼈을 때부터 존재감은 있었다. 하지만 그 때의 존재감은 내게도 곧 꼬물거리는 아기가 생길 것이라는 다분히 환상적이고 동화적인 성질 이상은 아니었다. 게다가 나로부터 비롯되고 내게 종속된 그 존재는 나에게 부수적인 존재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아이를 가지긴 했지만 나는 여전히 너무도 나 자신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자랄수록 나의 힘으로는 막아볼 도리가 없는 균열들이 나의 세계에 생겨나기 시작했고 나는 나 이외의 다른 존재가 거울처럼 나를 되비추는 이상한 경험의 나날을 견뎌야 했다. 이웃의 다른 엄마들은 말을 하면서부터 슬슬 키우는 재미가 난다고들 했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누워 있을 때가 마음 편했다. 그 시기의 아이는 아플 때를 제외하고는 상당 부분 비현실적이어서 대부분의 행동들이 귀엽거나 신기하거나 무의미하거나 그 어느 한 쪽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말을 배우고 의견을 말하기 시작하면서 아이는 더 이상 내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물론 아직은 어린 아이에 불과했지만 중요한 것은 내 인식의 변화였다. 나의 현실에 균열을 가하는 어엿한 하나의 존재로서 아이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세계 안에서 아이는 보란 듯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갔다. 불쑥불쑥 드러나는 그 세계에는 나처럼 자신을 당연시 하는 또 하나의 나가 있고 그 또 다른 나의 세계에서 지금의 나는 타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이는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시시각각 알려오기 시작했다. 물론 아이의 재롱에 흠뻑 빠져 깔깔거리는 순간도 많았다. 그럴 때면 우리 둘 사이의 모자관계가 그렇게도 자연스러울 수 없었다. 동그랗고 까만 눈을 통해 그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 가능할 것도 같았다. 가르치고 가르친다면 내 세계의 규칙대로 생활할 것이며 내 세계의 일원으로 자라나 내 세계의 한 모범으로서 독립하게 될 것이라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다. 그럴 때만큼은 아이에게 일치감을 느꼈고 아이는 내 세계의 작고 앙증맞은 구성원이었다. 그러나 상상은 상상일 뿐. 누군가를 나의 남으로 만든 적은 있어도 누군가의 남으로서 살아본 적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 시간 속에서 낳은 아이가 이렇게도 나를 타자로 만든 줄은……. 하지만 아이는 이 같은 나의 혼란과는 아무 상관없이 자라 언젠가 내 시간 밖으로 빠져 나갈 것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독립된 시간과 기억을 가지게 될 것이다. 자신만이 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주문에 이미 걸린 채로. 그 아이의 시간 안에서 난 어린 시절 내가 친구와 주고받던 대화 속의 내 부모님처럼 3인칭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내가 죽고 난 뒤 나는 아이의 낡은 앨범 속 무표정하거나 바보처럼 웃는 얼굴로 조금씩 빛이 바래가겠지. 나의 부모가 내게 그러했던 것처럼, 나의 부모의 부모가 나의 부모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고 아이는 다시 자신의 세계 안에 또 다른 1인칭의 세계를 가지게 되겠지. 그 때 그 아이가 느끼게 될 혼란만이 지금의 내게 유일한 위로가 된다면 난 정말 이상한 어머니일까. 도대체 이 익숙하고 낯선 돌림노래의 멜로디란.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데 너무 너무 익숙한. 아침에 눈 뜨면 ‘엄마’ 하고 어김없이 시작되는 그 첫 구절은 도대체 누가 맨 처음 부르기 시작한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