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문학을 시작하던 20대 문학청년기에 나는 우울한 낭만주의자이며 미숙한 페시미스트였습니다. 많은 낭만주의자가 그렇듯 나는 틀에 얽매이기를 싫어했고 자유롭고자 했습니다. 자유롭다기보다 분방하였고 파괴적이었으며 생각도 행동도 절제되지 않았습니다. 본래 외로움과 가난에서 내 문학이 출발하였지만 내 운명, 내 처지, 내 슬픔을 과장하고 싶어 했습니다. 혼자 있는 것이 좋았고, 남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수월하지 않았고, 자폐적이었으며, 술 마시는 것 외에는 세상일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이런 내 인생이 싫었습니다.

문학동아리를 하나 만들었는데 이름이 <미운오리새끼>였습니다. 자학하는 이름이었습니다. 스스로 못났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잘난 이들에 대해 공격적이었습니다. 기존의 문학써클에서 온순 착실하고 근면 성실하게 문학하는 이들을 보며 저렇게 문학하지 않겠다고 소리쳤습니다. 속으론 백조를 꿈꾸고 있다는 걸 그땐 잘 몰랐습니다. 겉으로는 “그래 우리는 기껏 오리다, 못난 오리. 너희가 볼 땐 미운오리새끼다.” 하고 외치고 다녔습니다. 사르트르, 카프카, 까뮈가 좋았고 고은의 시와 최인훈의 소설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다 80년 광주항쟁을 만났습니다. 봄부터 시위를 준비하는 제자들을 통해 들려오는 소리가 무섭고 음산하고 불안하였는데, 그때 나는 불행하게도 군복을 입고 있었고 M16A1소총을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차출되어 여수 순천의 국도변 고갯길에서 시위대 차량과 대치한 채 총을 들고 서 있어야 했습니다. 그 부끄러움이 나를 리얼리스트로 변하게 했습니다. 낭만주의와 혁명에 대한 열정이 어설프게 동거를 하기 시작한 면도 있었지만, 이 엄청난 현실을 두 눈 뜨고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박처럼 오랫동안 나를 끌고 다녔습니다.

역사와 현실에 대한 들끓는 열정과 시대적 당위와 겨우 모양을 만들어 가던 반체제 논리가 구조적 억압과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과 수시로 충돌하는 와중에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서른두 살 때였습니다. 다시 망연자실하였고. 다시 절망하였고 많이 울었습니다. 딸아이는 낳은 지 넉 달밖에 되지 않았고 아들은 두 살이었습니다. 한 남자로서 한 여자에게 너무 잘못하였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후회도 많았고, 아픔도 많았고, 그리움도 많아서 울면서 시를 썼습니다. 내가 울면서 쓰지 않으면 남들도 울면서 읽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쓴 시를 동인지 《분단시대》에 발표하였습니다. 정보과 형사가 학교에 종종 찾아왔고, 교육청도 찾아가 장학사와 무슨 이야기인가를 주고받고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리고는 장학사에게 불려가 조사를 받았습니다. 「접시꽃당신」,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암병동」, 「병실에서」, 「당신의 무덤가에」, 이 다섯 편의 시 중에 「접시꽃당신」, 「암병동」같은 시 여러 곳에 붉은 줄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시골 학교로 내쫓겼습니다. 어린 자식들하고도 떨어져 있어야 했고, 정신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참 힘들었습니다. 좌천되어 간 시골의 하숙방에 앉아 시를 쓰는 일이 겨우 자신을 지탱하게 하는 유일한 힘이었습니다. 그 시들을 시집으로 내자는 김사인 시인의 제안을 받고 처음에는 거절하였습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이런 개인적인 넋두리 같은 걸 모아 시집을 내느냐고 싫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언제까지 이런 시만 쓸 거냐고 마음을 정리하는 차원에서라도 시집으로 묶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설득에 원고를 넘겨주었습니다. 시집 『접시꽃당신』은 그렇게 해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시집을 내고 난 뒤 갑자기 달라진 독자들의 반응에 당혹스러웠습니다. 시골학교 선생이며 촌스럽기 그지없는 성격 탓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슬픔을 팔아서 장사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조심스러웠습니다. 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동인지 활동으로 시작한 문학운동이 부문 운동과 지역 운동으로 확산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한참이던 때여서 교육 운동, 지역문화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기틀을 다지고 사람을 모으고 한 지 몇 해 되지 않아 감옥으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유치장에 가두어 놓고 당국에서는 협상카드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탈퇴서와 반성문 한 장을 쓰면 풀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그 카드를 받아들고 와서 저에게 내미셨습니다. “너는 다른 사람과 처지가 다르니까 사람들이 이해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새끼들을 책임 질 사람이 있지 않느냐. 에미 없는 어린 자식들을 누구한테 맡길 것이냐. 그러니까 이거 써 주고 나와라.”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틀린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걸 쓸 수는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부자지간의 의를 끊겠다고 하셨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포승줄에 묶여 교도소로 넘어가는 나를 지켜보며 하염없이 우시는 어머니 모습이 차창 밖으로 보였습니다. 작은 막대기 끝으로 감옥의 벽에다 십자가를 새기며 울었습니다. 그 십자가 밑에서 기도를 하며 울었습니다. 거기서 십 센티미터도 안 되는 볼펜심 한 도막을 구해 몰래 시를 썼습니다. 그 시들을 모아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이란 시집을 냈습니다.

십 년을 해직교사로 살았습니다. 시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할 말은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어느 날 대학교수가 된 같은 해직교사 출신 후배 평론가와 술을 마시다가 “나는 본래 낭만주의자였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리얼리스트가 되었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던 후배는 “형은 리얼리스트가 아니라 계몽주의자야. 그것도 애국적 계몽주의자!” 우리는 같이 웃었지만 어딘가 씁쓸하였습니다. “계몽주의자가 왜 나쁘냐? 이 시대는 계몽이 더 필요한 시대다. 계몽주의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술잔이 오가며 그런 이야기들이 이어졌지만 어느새 내가 계몽주의자가 되어 있다는 사실만은 틀림없었습니다.

계몽주의문학은 해직 십 년만에 복직하여 학교로 돌아간 뒤에도 이어졌고, 열심히 살아야 좋은 문학을 만날 수 있으리란 믿음도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파블로 네루다는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라고 말 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 또한 죽은 시인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나는 리얼리스트라고 믿었지만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연수 중에 쓰러지기도 했고 한번 쓰러지곤 난 뒤부터 저항력이 급격히 떨어져 소소한 병도 이겨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내놓고 어디 가서 요양을 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 친구의 말을 듣고 산속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혼자 기거하는 고독하고 적막한 생활이 시작된 건 어느 면에서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외로워서 평화롭고 적막해서 고요한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 고요 속에 몸을 담그고 여러 해를 살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산은 내게 청안한 삶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시집 『해인으로 가는 길』, 산문집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를 선물로 주었고, 특히 『누가 더 놀랐을까』라는 동시집을 선물로 받을 수 있어서 고마웠습니다.

치열하되 거칠지 않고, 진지하되 엄숙주의에 빠지지 않고, 아름답되 나약하지 않고, 진정성을 지니되 너무 훌륭한 말을 늘어놓지 않는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좋은 시 한 편을 써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시를 쓰는 것보다 감동을 주는 좋은 시 한 편을 남기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페시미스트는 혁명을 하고 옵티미스트는 꽃씨를 심는다고 말한 이가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후자에 가깝습니다. 혁명으로 가는 길에서 같은 편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아직 지워지지 않아서 꽃씨를 심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시가 있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시를 쓰며 살아온 삶, 시와 함께 걸어온 인생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