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사진 / 고운기_시인.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1961년생
시집『자전거 타고 노래부르기』저서『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삼국유사』등
조선왕조가 남긴 유적인 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사람들을 설레게 했다. 이 왕조의 왕릉이 이렇듯 잘 전승되었다는 데 새삼스러워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작 무덤 잘 써서 잘 된 나라는 신라이다. 무슨 풍수지리를 말하는 게 아니다. 신라 사람들은 풍수지리에 괘념하지 않았었다. 사실 풍수지리라고 해봐야 무덤이 말을 하고, 죽은 이가 살아 나와 도와주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신라의 무덤에서는 소리가 울리고, 사람이 걸어 나오고, 엄청난 보물을 내주기도 했다. 아마도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가 미추왕릉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다. 미추왕은 신라 제13대 왕이다. 김 씨 성을 가진 첫 번째 왕이기도 하다. 이 왕이 살아서 세운 공은 『삼국사기』에서건 『삼국유사』에서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는 죽어서 더 엄청난 일을 했다.
▲ 경주는 사람이 사는 곳이자 죽은 왕이 함께 머무는 곳이다. 왕궁 바로 옆에 왕릉을 두고 그 옆은 백성이 사는 마을이다.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보았기에 언제든 죽은 이도 사는 이와 함게 어울릴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경주 월성과 계림 그리고 대능원의 일부)
미추왕 다음인 제14대 유례왕(儒禮王) 때였다. 이서국(伊西國) 사람들이 금성으로 쳐들어왔다. 이서국은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를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던 나라였다. 신라 쪽에서 힘을 다해 막았으나 버티지 못하였는데, 갑자기 기이한 병사들이 달려와 도와주었다. 그들은 모두 귀에 대나무 잎사귀를 꽂고, 신라군과 힘을 합하여 적을 쳐부쉈다. 군사들이 물러간 다음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으나, 다만 대나무 잎사귀가 미추왕의 능 앞에 쌓여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왕의 음덕이 공을 이루었음을 알았다. 이런 기이한 일을 적은 끝에 일연은 미추왕릉을 죽현릉(竹現陵)이라 부른다고 부기해 놓았다. 제목 또한 ‘미추왕 죽엽군’이다. 지금은 이름도 가물가물한 이서국한테 그렇게 혼쭐나는 나라가 신라였다는 사실이 뜻밖이지만, 후손의 위기를 가만 두고 보지 못해, 대나무 잎사귀 꽂아 출병시킬 군사를 죽은 왕이 제 무덤에 마련해 놓았다는 이야기는 못내 신기하기까지 하다. 사실 그렇다면 군사는 귀신이 아니라 모종의 실체일 터이다.
삶과 죽음이 하나 된 곳 미추왕릉의 이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죽은 김유신이 제 무덤에서 뛰쳐나와 미추왕릉을 찾아가기도 했다. 죽엽군 이후 한참 뒤인 제37대 혜공왕 때였다. 서력 779년 4월,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김유신의 무덤에서 일더니, 거기서 장군과 같은 모습을 한 사람이 말을 타고 나타났다. 뒤따라 갑옷에다 무기를 든 40여 명이 좇아 나와 죽현릉으로 들어갔다. 얼마 있다 능 안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한바탕 무덤 안을 소란하게 했다. 실인즉, 김유신의 후손이 가혹한 벌을 받아 이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었고, 이제 다시는 이 나라를 위해 일할 마음이 없어 떠나려 한다는 것이었다. 왕은 대답했다.
“오직 내가 그대와 더불어 이 나라를 지키지 아니하면 백성들은 어디로 가란 말이오? 그대는 다시 이전처럼 힘을 다해 주시오.”
여기서도 미추왕은 혁혁한 공을 세운다. 후손이 당하는 고통에 단단히 ‘삐진’ 김유신의 혼령을 달래기로는 이 왕밖에 없었다. 779년이라면 미추왕이 죽은 지 500여 년이 지난 다음이다. 미추왕 살아서 그다지 공이 없더라도, 이만하면 성군의 반열에 두어도 좋으리라. 삶과 죽음이 통합된, 풍수지리는 여기에 갖다 댈 수 없을 기묘한 이야기이다.
▲ 문무왕은 죽으면 바닷가에 무덤을 만들어 달라했다. 여러가지 논란이 있지만 경주시 양북면의 이 바위가 삼국사기에 묘사된 '동해 어구의 큰 돌'일 것이다. 삼국유사 현장답사를 시작하던 20여 년 전, 바닷가에서 민박을 하고 나온 새벽에 이렇듯 황홀한 일출을 만났다.(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대왕암의 일출)
상상력의 무한한 범위 사실 왕릉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삼국유사』의 이야기는 저 평민의 세계로까지 무덤을 이어놓고 있다. 주인공은 경주 망덕사의 승려 선율(善律). 그는 시주 받아 『육백반야경』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공덕을 다 이루지 못했는데, 갑자기 저승에 불려가게 되었다. 저승지기가 좋은 뜻이 남았으므로 다시 세상으로 보내주겠다 하여 선율은 살아났다. 다시 살아난 것도 기이하지만, 살아나는 풍경이 재미있다. “그 때는 선율이 죽은 지 벌써 10여 일이 지나, 남산의 동쪽 기슭에 장례를 치른 다음이었다. 무덤 안에서 3일간 외쳤는데, 목동이 이를 듣고 본디 지내던 절에 와서 알렸다. 그 절 승려가 가서 무덤을 헤치고 꺼내자, 앞서 있었던 일을 모두 설명했다.” 무덤 안에서 3일을 외치는 자의 심정이 어땠을까. 나는 살아 있다 믿었던 것일까, 죽어 헛것을 본다고 생각한 것이었을까. 그런데 이 모든 일이 가능했던 때가 신라였다. 신라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한 상상력의 무한한 범위였다. 선율이 돌아오는 사이에 더 기막힌 일이 있었다. 이 일이 있어 무덤 이야기는 뜻을 가진다. 저승의 한 모퉁이에서 한 여자가 나타나 서럽게 울며 말했다.
“저 또한 신라 사람입니다. 부모가 절의 논을 몰래 가로채는 바람에 잡혀와 오래도록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스님께서 고향에 돌아가시거든 제 부모에게 빨리 그 논을 돌려주라고 일러 주소서.” 저승을 벗어나 돌아오는 선율의 후들거리는 발걸음을 더 흔드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저승지기 마음이 바뀌기 전에 돌아가기도 바쁜 판에, 지금 누가 누구의 부탁을 들어줄 처지란 말인가. 그러나 여자의 집이 어딘가 물어 꼼꼼히 기억하고 돌아오는 선율이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불교를 포교하기 위한 예화라고 말해도 좋다. 다른 땅도 아니고 절의 논을 가로채선 천벌을 받는다는 교훈쯤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교훈에서 그치지 않는다. 아무리 교훈이라 할지라도 이야기하는 방법과 품에 따라 그 격은 달라지는 법이다. 적어도 신라 사람의 상상력 속에는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변환기(變換機)가 달려 있었다.
문무왕과 대왕암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무덤이 후손을 도운 가장 극적인 이야기는 문무왕에게서 나온다. 문무왕은 아버지 김춘추를 도와 삼국통일의 위업을 완성한 이였다. 김유신의 누이동생 문희가 낳은 아들이다. 그러나 나이 겨우 50대, 왕이 된 지 20년 만에 세상을 떴다. 문무왕의 업적은 살아서도 위대하지만 죽어서는 더욱 빛난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지의법사와 나눈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짐은 죽은 뒤에 나라를 지키는 큰 용이 되겠소. 그래서 불법을 높이 받들고 나라를 지키겠소.”
“용은 짐승인데 어찌 하시렵니까?”
“나는 세상의 영화를 싫어한 지 오래 되었소. 만약 추악한 업보 때문에 짐승으로 태어나더라도 짐이 평소에 가진 생각과 맞는다오.”
불가(佛家)에서 내세는 짐승으로 태어나는 것을 지극히 꺼린다.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해서이다. 왕의 무덤을 유언에 따라 동해 바다 큰 바위에 만들었다는 기록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같다. 거기에 덧붙여 『삼국사기』는 ‘서역의 법식에 따라 불로 태워 장사 지냈다’는 기록을 덧붙이고 있다. 문무왕의 생각이나 장례절차가 불교식인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런데 문무왕은 불가가 꺼리는 짐승 환생마저 마다하지 않고 있다. 왕은 왜 자신의 마지막 길을 이렇게 택했을까? ‘불법을 높이 받들고 나라를 지키겠다는 것’인데, 무덤 쓰는 일을 후손의 길흉과 연결시킨 보다 적극적인 경우를 우리는 여기서 본다. 그리고 문무왕은 죽은 뒤 다시 나타났다. 아들 신문왕이 아버지의 대상(大喪)을 치르기 직전, 바닷가 왕릉에서 아버지의 심부름 나온 작은 용을 통해서였다. 신문왕은 거기서 만파식적을 받았다. 살아서만 아니라 죽어서까지 후손을 도운 신라의 왕들, 그 방법이 참으로 즉응적(卽應的)이어서 흥미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