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새는 동안 간수는 뉴스 채널을 보다가 유치장 밖 인기척에 잽싸게 다큐 채널로 돌려놓기를 반복했다. 사기로 들어온 스님과 꽃뱀에 물린 작장인, 촛불집회장에서 실려 온 중년 남성은 그 지루한 반복에도 고개한번 들지 않았다.

뉴스 채널에서 다큐 채널로, 다큐 채널에서 다시 뉴스 채널로……. 나는 그 지루한 반복을 놓치지 않고 반응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드는지, 나는 그렇게 만들어진 걸까?

밤새 마른기침을 해대던 노파는 아침에 도시락 두 개나 먹어놓고 마른기침과 배고프다는 소리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곧 반복이 될 것이다. 무엇이 또 만들어질까?






옛날 연속극

텔레비전 위

기절하는 선인장을 올려놓았네

옛날 연속극이 나오잖아

저 늙은 염소의 털을 염색하면

선인장 가시를 염색하면

가슴 털을 염색하면

거시기 털은 염색할 수 있나요

하얘져가는데

꽃물이 들까요, 얼마인가요

색소가 번지는 화면처럼

아주 절망적인 색으로

저기 저 그림

산위에 구름대신 떠있는 커다란 입술

저런 그림도 있는데

염색쯤이야, 해줄 수 있죠

여기, 목욕탕 이발소야

입속이 까만

흑인 심령술사가 파닥거리고 있어

기름쟁이처럼

내 손바닥 위에서

염소가 라면 봉지도 씹어 먹어

저 염소 좀 봐

혓바닥에 피어 싱을 했어

저 텔레비전

혹시 살아 있는 척 하는 거 아냐

실은 나도 살아 있는 척 하는 것 아냐





꽃 배달

좋아했다는 이유로 평생 화를 내도 참아내더군요.

좋아했다는 이유로 가시 돋친 주둥이로 얼마나 많은 곳을 지독하게 찔렀는지 모릅니다.

오후 햇살이 꽃집 지붕을 넘어갈 때 어김없이 줬던 통박은 분무기로 뿌려준 물까지 바싹 말려놨을 것입니다.

어느 날 영안실로 그녀를 보내려 몸을 다듬다가 괜히 눈물이 났습니다.

그녀의 뿌리가 잘려나갔다는 것을 보고 새삼스럽게 내게도 뿌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가 내 속에 들어오고 나가는 일들이 하도 많아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늘 살아있는 줄만 알았습니다.

내게 오기 전에 이미 죽어있었는데도,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 물관을 막고 숨관을 조여 살아있는 척 했던 건 아닐까요.

영안실 한쪽 죽음 언저리에 세워두고 살아 있는 척 하게 했다는 것은,

뿌리 없는 눈물에 꽃잎은 얼마나 더 바싹바싹 타들어 갔을까요.

어디 제 목숨 다 살다 죽는 자 있으면 거친 숨소리라도 잠시 빌려와 숨 한번 크게 쉬게 해주고 싶습니다.





가짜 문

유리문을 얼굴로 밀고 들어와 사우나 실에 널어놓은 빨래,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저 빨래, 노숙자다. 몸의 얼룩 마음의 얼룩 쉰내 풍겼다. 쉰내를 풍기며 기록은 뜨겁게 마른다. 선명하다.

사우나 문을 활짝 열어놓고 공기를 몰아내고 사람들을 좇아낸 커다란 등짝, 그 등짝에 장미가 뜨겁게 피었다. 무얼 희롱하려 피었는지, 나는 협잡 당한다. 저 장미에 맺힌 이슬은 그래도 영롱하다.

사우나 황토벽에 가짜로 만들어 놓은 문밖으로 영혼을 내보냈는데, 몸이 뭘 기록 하고 싶은지 수분을 밀어낸다. 인피지가 되었다. 문고리 없는 문밖을 서성이던 영혼이 다시는 들어오지 못할 것을 새겨 넣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