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연을 쫒는 아이>를 처음 본 것은 지난여름 로마에서였다. 한 잡지사에 유럽의 도시에 관한 사진과 칼럼 몇 개를 주기로 약속하고 약간의 경비를 받아 유럽을 돌다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이었다. 나는 모텔을 잡고 그날 밤까지 넘겨주어야 할 원고를 다듬고 있었다. 으레 찾아오는 여행 끝물의 피로감 때문인지 원고 속도가 유난히 나가지 않는 상황을 견디는 중이었다. 그날은 습도가 유난히 심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더위를 워낙 못 견디는 체질에 습도까지 심해 죽을 맛이었다. 에어컨을 꺼 버리고 창문을 열어 놓고 식은 맥주를 몇 캔 째 훌쩍훌쩍 마시면서 자판을 계속 두드렸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고르는 언어들마다 불필요하고 까마득한 이미지에 급하게 닿아버린 듯 했다. 나는 계속 단어의 심중(深重)을 놓치고 있었다. 두어 시간을 그렇게 진땀을 빼곤 하다가 결국 나는 그 날의 마감을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런 날씨 속에서는 한 줄도 나가기 힘들다는 판단이 서자 잡지사 쪽에 며칠 여유를 사정하려고 메일함을 열었다. 주간지인 잡지사 쪽 상황을 고려할 때 아침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원고를 보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그런 배려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마감의 공포감보다 머릿속까지 들어와서 울렁거리는 습도가 몸으로 짜증을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대개 마감의 압박이 밀려올 경우, 오히려 그 강박과 긴장을 즐기다 보면 글이 더러 불쑥 흘러온 경우도 경험해 보았고 그래도 글이 안 나가서 짜증까지 동반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생기면 십중팔구 자신의 상황이나 환경을 탓하기 보다는 근간의 자신과 나누는 내적 밀담이 약한 탓으로 돌려버리고 반성의 다짐으로 다시 고쳐 앉곤 했지만 그날은 예외였다. 나는 망한 놈 같았다.
‘아... 몰라!’
그때 나는 우연히 노트북에 여행 오기 전 미리 다운 받아온 몇 개의 영화가 생각났다. 영화 <연을 쫒는 아이>를 만난 것은 순전히 그 덕이었다.
* 종이비행기 - 아미르 유년은 혼자 조용히 종이비행기를 접었던 방식으로 이해하고 혼자 접어놓은 종이비행기를 거꾸로 접선을 따라 다시 종이로 돌아오게 하는 방식으로 하나씩 이해를 포기했다. 종이비행기를 처음 접어 보았을 때를 기억해, 라고 말하는 방식보다 종이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색연필로 비행기 몸통에 처음 동그란 비행기 창문을 그려 넣어 주던 내 눈을 생각해, 라고 말하는 방식이 좋다. 나는 선회하는 방식으로 늘 유년을 이해하지만 유년은 늘 돌아오지 않는 비행사의 ‘지금쯤의 고공’을 떠올리게 한다. 유년에 대해 내가 손가락을 세면서 떠올린 첫 번째 것은, 수 없이 접었던 그 종이비행기의 행방들, 내가 손가락을 세면서 떠올린 두 번째 것은, 내가 이륙시키기전 종이비행기에 실어준 무수한 사람들의 이름과 짐의 목록들, 내가 가지고 있는 손가락을 모두 펴고도 셀 수 없는 것은 종이비행기가 추락한 장소에 가서 나는 한 번도 실제로 죽지 못했다는 사실, 종이비행기에 탑승한 것은 언제나 인류가 아니라 어떤 상상의 내부였으니까. 유년은 조금씩 상상의 내부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기체를 형성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