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서하진_소설가. 1960년생
소설 『착한 가족』 『비밀』 『라벤더 향기』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책 읽어주는 남자』 『사랑하는 방식은 다 다르다』등
제 아내 이야기를 하자면, 글쎄요, 마흔 다섯의 남자에게 아내란 동료, 친구, 내 아이의 엄마…… 점차 사나워지기 시작하는 중년의 아줌마……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십상이죠. 제 주변의 남자들은 아내를 부속품처럼 여기는 것 같더군요. 소홀히 취급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동차에 비하자면 문제가 생겼을 때 엄청난 비용이 드는 부품이 있잖습니까. 교체하기 극히 까다롭고, 아예 버리기를 결심하지 않는 이상 그저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부분, 거의 엔진 비슷한 거라 할 수 있지요. 그렇습니다. 누군가 카스테레오를 훔쳐갔다면 짜증이 나겠지만 음악 없이 차를 타는 방법이 있지요. 배터리를 떼어 가면 다시 장착하고 펑크 난 타이어는 교체하고 새는 오일은 보충하고…… 그렇지만 엔진이 사라진다면 폐차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요. 만약…… 그럴 수 없다면, 포기할 수 없다면 어찌해야하겠습니까? 제 아내로 말하자면 정말이지 잘 달리던,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답고 성능 좋은 차였습니다. 낡을수록 아름다운, 소정가치 높은,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한 차였다고, 저는 믿었습니다. 제 믿음에 대해 단 한 차례도 의심한 적이 없었지요. 웃으시는 군요. 예, 뭐 저도 좀 쑥스럽기는 합니다만, 그렇지만 맹세코 진심입니다. 사실 저는 아내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실제로 그러니까요. 아내도 그랬을까요? 저를 잘 알고 있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제게는 아내가 알지 못했을, 알지 않아야 할 많은 일들이 있었거든요. 제 생각이고 바램입니다. 어쩌면 아내는 제게 일어난 일들, 제가 저질렀던 일들, 그 모든 것들을, 그 너머의 제 숨은 의도까지도 눈치 챘을 수도 있지요. 아내는 영리한 여자이니까요. 그에 대해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습니다. 아내와 나누지 않았던 건 그 얘기 뿐은 아니었습니다. 아내는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입니다. 말을 길게 하지 않는 타입이지요. 그 여자가 아이였을 때부터, 놀이터의 그네를 무서워하던 시절부터 저는 아내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 때도 아내는 조용하고 착한, 부잣집 아이답지 않게 수줍음을 많이 타는 어린애였어요. 또래 여자애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았고 사실 그럴 틈도 없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내의 어머니, 그러니까 제 장모가 욕심이 많은 여자였거든요. 그 집에는 피아노와 바이올린과 플루트와 그림…… 그런 것들을 가르치는 선생들이 쉼 없이 들락거렸지요. 아내의 집은, 사실 굉장했어요. 그 동네에서 가장 큰 집이었고 가장 아름다운 집이었으며 가장 오래된 집이었지요. 집 안에 연못이 있고 파라솔을 몇 개 놓을 만큼 넓은 정원이 있고 심지어 뒤란에는 동굴이 있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그 집 앞에는 언제나 검은 승용차가 두 대쯤 서있었어요. 요즘이야 누구나 차를 지니고 골목마다 차가 빽빽하지만 그 시절에는, 그런 거 모르시죠? 가정환경 조사한다고 애들이 몇인가부터 시계가 몇 개인가까지 답하게 하던 거…… 텔레비전이 있는가로 부의 여부를 가리던 시절이었으니 자동차가 두 대나 있는…… 예, 제 아내는 그런 집에서 자랐어요. 포목을 취급하다 염색공장을 차리고 시대에 흐름에 맞춰 중공업으로 전환하고 건설업으로 확장하고…… 그런 전설의 주인공답게 아내의 할아버지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었지요. 게으름을 죄악이라 생각하는,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간이었던 거죠. 제 장인 역시 그러했습니다. 사실 그건 그 집 사람들 모두의 공통점이었어요. 처형과 처남들…… 누구 하나 엇나가는 이 없는, 예의바르고 도덕적인, 그야말로 완벽한 가족이었지요. 예, 지금 처남은 저와 같은 병원 과장이지요. 사실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아내와의 결혼은 불가능했을 거예요. 온 가족이 저를 무슨 외계인 보듯 할 때도 그 친구만은 제 편이었지요. 솔직히 저는 그 친구와 그다지 친하지 않았어요. 워낙 달랐으니까요. 그 애는 모범생이었고 수재였고 엄청난 부자의 아들이었고 저는 모든 면에서 그와는 딴판이었으니까요. 가난하고 비뚤어지고 적당히 싸움질 하고…… 그런 저를 그 친구가 왜 좋아했는가, 그건 그저 호기심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교모를 쓰지 않고, 머리를 자르지 않고, 공부를 하지 않고, 매를 맞아도 선생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고, 보충 시간에 담 타넘고…… 그런 일들이 과외와 과외의 사이 잠깐 숨을 고르며 정원 연못의 잉어에게 먹이를 던져주는 게 놀이의 전부였던 친구에게는 흥분거리였을 수도 있지요. 어쨌거나 저는 그 친구를 부러워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늘 따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때문일까요? 종일 책상을 지키고 있기는 했지만 그 친구는 좀 지겨워하는 표정이었어요. 눈에 불을 켜고, 단 일점에 목을 매는 아이들과는 달랐지요. 그런데도 늘 일등을 놓치지 않는 게 약간 신기했달까…… 부러워할 여지가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본래 그랬거든요. 일찍 철든 아이가 그렇듯 제 처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요. 예, 제 부모님은, 아내의 부모와는 정 반대라고 생각하시면 되는, 그런 사람들이었지요. 제 아버지는 시인이었는데요…… 퀭한 눈을 가진, 러닝셔츠를 입은 마른 시인, 김수영이던가요? 그이처럼 생긴, 그 사람처럼 까칠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지요. 물론 시는 전혀 달랐어요. 아버지는 연애시의 대가였습니다. 사랑에 관한 시만을 썼지요. 아무도 읽지 않을 듯한 너절한 표지의 시집들이 그나마 아버지의 술이 되고 담배가 되고 우리들에게는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밥이 되었으니…… 생각하면 신기한 일입니다. 아버지는 정말이지 게으른 인간이었어요. 아침에 눈 뜨고 저녁에 잠들 때까지 손끝하나 까딱하지 않았어요. 이따금 누군가 성질을 건드릴 때면 재떨이를 던지거나 요강을 발로 차거나…… 그런 일 외에는. 스스로를 타고난 천재라고 생각하고 천재는 당연히 게으르고 괴팍하고 그리고 먹고 사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야한다고 여겼지요. 특이한 건 제 어머니였어요. 어머니는 그런 사람을 남편으로 둔 보통의 여자들과는 전혀 달랐어요. 똑같이 게을렀거든요. 그러니…… 어땠겠습니까. 집은 늘 더럽고 냄새나고…… 우리 형제들도 그러했지요. 저와 동생들은 당연히 밖으로 돌았습니다. 어두워질 때까지, 모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골목이 텅 비면 우리 셋은 어느 집 대문 앞에 오두마니 앉아 밤을 맞곤 했지요. 여름날에는 그러다 한데서 잠든 적도 제법 있었어요. 어머니나 아버지가 우리를 찾아 나선 일은, 글쎄요, 기억에 없군요. 그 두 사람이 긴긴 시간 좁은 집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궁금하신가요?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싸우거나, 엉키거나…… 둘 중 하나지요. 시시한 말다툼으로 시작해서 악다구니를 쓰다가 누군가 먼저 던지기 시작합니다. 베게나, 책 따위, 깨지지 않을 것들을. 그게 누군가에게 가닿고 그러면 육탄전이 시작되는 거죠…… 싸움의 끝은 늘 같았어요. 그렇습니다, 두 사람은 싸우고 나면 언제나 문을 닫아걸고 그리고 엉켜들었어요. 그러면 이제까지와는 좀 다른 신음소리가 흘러나오는 거였지요. 어머니가 아버지를 떠나지 않았던 건, 틀림없이 그 때문일 거라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깡마른 몸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남근을 가진 사람이었거든요. 그러니…… 환경이 그러하니 저와 형제들은 부부란 단지 육체와 육체가 부딪히는 상대일 뿐이라 생각했지요. 그런 생활에서 얻어진 아버지의 시가 그처럼 에로틱했던 건 당연했지요. 다만 아버지의 시는 꿈처럼 나른한 묘사 일색이었어요. 영혼과 영혼이 부딪히고 불꽃이 튀고 그리고 인물들은 언제나 황홀경에 빠져 파멸해가는…… 이따금 우리 형제들은 얘기했지요. 아버지가 소설을 썼다면 좋았을 거라고. 아버지의 인물들은 우리들이 돌려 읽었던 시시한 책자의 그 누구보다 멋지고 음탕하고 그리고 야비했거든요. 아버지의 시에 남루하고 추한 일상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던 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어요. 그로서는 견디는 한 방식이었을 테지만 어린 우리들이 그 경지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지요.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저런 아비에게서 난 아들이 저처럼 되다니…… 기적이 아닌가. 기적, 맞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도 이처럼 청결한 방에서,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제 모습이 몹시 어색해요. 제가 이리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어린 날의 저를 생각하면 기껏 뒷골목의 양아치가 되어야 마땅하지요. 싸움질로 날을 새고 어느 더러운 길에서 개처럼 죽어가는…… 그런 인생이 제게는 어울리는 것이라 생각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모든 일은 아내로부터 비롯되었지요. 변해야겠다 마음먹은 것, 변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 변화에 대한 그 격렬하던 욕망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을 옥죄는 느낌이 듭니다. 등이 뻣뻣해지고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지요. 제 아내가 저를 닦달하였거나 제게 무언가 압력을 가했거나,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아내는 오래토록 제 존재를 인식조차 하지 못했고 하지 않았으니까요. 이따금 친구를 따라 그의 집에 가곤 했지만 아내의 모습을 보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예, 처음에는 저도 그랬지요. 어쩌다 계단을 오른 중에, 혹은 이층의 복도를 지날 때 아내를 본 적이 있었어도 아내와 저는 인사를 나누는 법이 없었습니다. 아내는 고개를 숙인 채 제 옆을 지나갔어요. 밋밋한 가슴과 깡마른 다리, 긴 머리카락에 가려진 옆얼굴, 그 시기의 아내에게 저는 그다지 흥미를 느낄 이유가 없었지요. 제 놀던 동네에는 그보다 훨씬 감각적인 여자애들이 넘쳤거든요. 다만 아내에게 특별한 점이 있었다면 그건 향기였습니다. 아내에게는 희미하지만 분명히 구분되는 향이 있었어요. 처음부터 그걸 알았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날, 그 특별한 날 저는 특별한 이유 없이 그 집엘 갔습니다. 여름이었지요. 담을 둘러 붉은 장미가, 셀 수 없이 많은 장미가 불붙은 듯 피어있던 걸 기억합니다. 아름드리나무의 그늘로도 가려지지 않은 햇빛이 마당 가득, 눈이 부셨지요. 잔디밭을 지나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현관에 이르렀을 때 제 등줄기로 땀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제 몸에서 나는 냄새가 제 코를 찔렀어요. 마실 걸 좀 가져오겠다, 하고 방을 나간 친구가 한참을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지요. 조용한 집안의 공기가 여느 때 없이 갑갑하게 느껴져서 저는 그만 돌아갈 생각으로 방을 나왔습니다. 복도를 지나는데 어느 어름에서 조용조용 말소리가 들렸어요. 무심코 저는 소리 나는 쪽으로 갔습니다. 한 뼘 쯤 열린 방문이 있었어요. 책을 읽는 듯, 노래를 부르는 듯 조용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그 방. 침대가 보였지요. 하얀 이불자락이 보였습니다. 거기에 누워있는 누군가의 흰 발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침대 옆 의자에 앉은 여자가 있었어요. 목소리의 주인공, 아내였지요. 그 여자는 책을 읽어주고 있었습니다. 천천히, 또박또박, 가만가만 노래 부르듯이. 그리고 이따금 눈을 들어서 누운 이를 보고 그리고 다시 책을 읽었어요. 그 음성이…….정말이지 듣기 좋았습니다. 온몸이 나른해지는 기분이었지요. 오후의 햇살이 창으로 비껴들어서 그 여자는 흡사 빛 가운데 동그마니 떠있는 듯 보였습니다. 치자 향 같은 걸 맡은 건 그 때였습니다. 향기에 홀린 듯 저는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었지요.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누군가 제 어깨를 툭, 쳤습니다. 친구였지요. 저는 화들짝 놀라 뒷걸음을 쳤고 서슬에 아내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쳐다보았지요. 그 눈이……그처럼 맑은 눈을 저는 지금껏 어디서도, 그 누구에게서도 보지 못했습니다. 어딘가 다른 세상에서, 막 이곳으로 발을 디딘 듯 약간의 호기심이 담긴 검은 눈동자가 저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친구가 팔을 잡아 끌 때까지 저는 바보처럼 멍청히 서 있었습니다. (중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