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대산문학상 예심 - 시 중견 강세, 소설 소장파 약진과 장편 증가, 9월부터 두 달간 본심 진행, 11월 초 수상작 발표
글 / 한하경_대산문화재단 문화사업팀
제17회 대산문학상 예심 - 시 중견 강세, 소설 소장파 약진과 장편증가,
9월부터 두 달간 본심 진행, 11월 초 5개 부문 수상작 발표
국내 최대 규모의 종합문학상인 대산문학상의 2009년도 예심이 마무리되었다. 지난 6월부터 3달 동안 진행된 예심 결과 시 부문에 10작품, 소설 부문에 8작품이 본심대상작으로 선정되었다(표 참조). 심사 대상 기간은 2008년 8월부터 2009년 7월까지였으며 심사위원은 시 부문 안도현(시인, 우석대 교수), 이원(시인), 이형권(평론가, 충남대 교수), 소설 부문 김영찬(평론가, 계명대 교수), 성석제(소설가), 신수정(평론가, 명지대 교수), 천운영(소설가)이 맡았다. 올 예심 결과를 정리하면 시 부문에서는 중견 시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소설 부문에서는 신진 작가의 약진과 다양한 방식과 주제를 아우른 작품들이 돋보인다 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시 부문에서는 전체 열 작품 중 과반수가 40~50대의 중견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김기택, 나희덕, 백무산, 송찬호, 정희성, 채호기 등 시단을 이끌어 온 저력 있는 시인들의 필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에 신영배, 진은영 등 신진급 시인들의 시집도 포함돼 1970년대 생 시인들의 약진과 더불어 우리 시의 층위가 신진부터 중견까지 한 층 두터워 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장편만을 대상으로 한 소설부문에서는 중견작가들뿐만 아니라 30대 신예들의 약진이 눈에 띄었다. 이는 대중과의 소통을 염두에 둔 작가들의 장편소설 창작 증가와도 부합하는 것으로, 한국소설의 미래에 있어서 매우 고무적인 현상으로 보여 진다. 한편 인터넷 연재를 통한 장편소설 출간 등 보다 다양한 방식의 장편소설 창작이 주목할 만 하였으며, 주제 면에서도 젊은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내는 작품이 돋보였다는 평이다. 본심은 단심제로 운영되는 희곡, 평론, 번역 부문을 포함해 9월부터 두 달 동안 진행되며 수상작은 11월 초에 발표된다.
<심사평>
시 부문
예심위원들은 심사 대상 시집들을 읽어나가면서 우리 시의 층위가 예전에 비해 매우 두터워졌다고 느꼈다. 사회적 상상과 서정적 상상이 여전히 일정한 역할을 유지하는 가운데, 전위적 상상을 기반으로 하는 감각의 확장, 파편적 사유, 자폐적 내면세계에의 몰입, 타자성의 탐구, 형식(형태) 실험 등 우리 시의 개성을 고양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특히 젊은 시인들의 도발적, 전위적 상상이야말로 우리 시의 새로움을 개진(改進)하기 위한 치열한 도전 정신의 결과로 주목받아 마땅할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전위적 상상에 의지한 시편들을 읽으면서 부분적으로는 최소한의 공적 기능이나 소통의 기능마저 포기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의 마음도 떨쳐낼 수 없었다. 어쨌든 요즈음의 우리 시에 전위적 상상이 돌올해진 현상은 1970년대 생 시인들의 약진과 밀접히 관련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선배의 시인들에 비해 사회적, 공동체적 담론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살아왔기 때문에 개체적, 전복적 상상에 익숙한 것이리라. 우리 시의 미래와 관련하여 그들의 시 세계가 어느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많은 시집들 가운데 본심 대상으로 10권 내외를 선정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부담을 덜기 위해 우리는 최대한 공정하고 객관적 심사 기준을 설정하는 데 골몰했다. 그리하여 우리가 심사의 핵심적 기준으로 생각한 것은 시집 전체의 균질적 완성도와 새로움이었다. 또 하나, 예심을 통과한 시집들이 적어도 지난 일 년 동안의 우리 시단 전체를 편향 없이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시집을 시집 자체로 보자는 것, 다시 말해 지난날의 문명(文名)이나 문학 외적인 부분은 고려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는 예심위원들 사이에 전적인 동의가 있었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우리는 김기택의 『껌』 등 10편의 시집을 본심 대상에 올리기로 했다. 덧붙여 김경미, 김경주, 김언, 류인서, 허만하 등의 시집도 마지막 순간까지 내려놓기가 매우 곤혹스러웠음을 밝혀둔다.
최근 우리 소설계를 지배하는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로 들 수 있는 것이 장편에 대한 관심이 고양되고 있다는 점이다. 단편 위주의 순문학중심주의에 고착되지 않고 시대적 흐름을 간파하여 독자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장대한 서사에 대한 요구가 이러한 경향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 아닌가 판단된다. 대산문학상 소설 부문 예심 후보작들 역시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가장 두드러진 경향은 역사나 인물 전기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는 점이었다. 특히 의혈단 사건을 비롯, 우리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나 백범, 박수근, 김정호 등에 대한 소설적 탐구 등이 눈에 띄었다. 한편으로는 중견 작가들뿐만 아니라 등단 십 년 미만의 젊은 작가들 역시 장편에 도전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변화였다. 아무래도 단편에 비해서 긴 호흡과 원숙한 숙련을 요하는 장편소설의 경우 젊은 작가들이 도전하기 쉽지 않은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젊은 작가들이 대거 장편소설 창작에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소설계의 고무적인 현상으로 이해해도 좋을 듯하다. 이들 소설들은 주로 젊은 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이나 도시적인 감수성을 드러내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는 소설독자뿐만 아니라 영화 관중들을 염두에 둔 듯한 작품 스타일로 보인다. 우리 소설이 이미 어느 정도의 영상과의 공존을 염두에 두고 생산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더불어 보편적인 인간사의 문제를 심도 있게 파헤친 소설들 역시 적지 않아 우리 소설계의 깊이와 균형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한편, 전작 장편소설을 생산하기 보다는 연재를 통한 장편소설 생산 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는 판단을 들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주로 종이 매체보다는 인터넷 연재 방식이 보편화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추측도 없지 않았다. 인터넷 연재물을 책으로 엮어 내는 방식이 우리 시대 장편 소설이 독자와 소통하는 방식을 확장시켜나가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장편소설 창작 활성화와 더불어 우리 소설이 또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