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1. 작가를 추모하는 일과 작품을 기리는 일에 대하여

작가를 떠난 작품의 운명…….

언제부턴가, 故 최명희 선생과 작품 『혼불』을 생각하다 보면 생각이 그쪽으로 향하게 된다. 작품은 발표되는 그 순간, 즉 작가의 손을 떠난 그 순간부터, 문학시장에 내던져진다. 그 이후 그 작품의 성가가 높아지거나 추락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작가도 모르고. 출판사도 모르고 독자들도 알 수 없는 어떤 소용돌이 속에 놓여진다.

종이배를 띄워본 적이 있는가, 어떤 것은 쉽게 물살을 타고 굽이치는 대로 흘러 내려가는가 하면, 영 본류에 합류하지 못하고 애를 쓰다가 바깥 소용돌이에 휘말려 결국 좌초해 가라앉고 마는 것들도 부지기수이다. 무엇이, 도대체 어떤 힘이 저 종이배들의 운명을 갈라놓는가, 어린 시절 내내 나는 그게 궁금했고 가슴 아팠다. 종이배는 스스로 제 운명의 주인인가, 종이배를 접은 손길이나 저 물살의 흐름은 종이배의 운명에 대해 또 무엇인가…….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혼불』의 작가 최명희가 남긴 미완의 장편으로 『제망매가』라는 작품이 있다. 매듭지어지지 않았으니 작품의 대강을 요약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 제목이 동명의 향가 ‘祭亡妹歌’로부터 유래했으리라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 가지에서 나왔는데 너는 이제 어디로 흘러가고 나는 남아 울부짖는가’라는, 그 순연한 태초의 슬픔과 그 슬픔의 끝에서 일어나는 강렬한 의문……. 나는 이 작품이 마무리되었다면, 틀림없이 그 책의 어느 한 구절에 분명 내가 위에 적은 것과 비슷한 의문에 대해 훨씬 더 유려한 문장과 깊은 성찰로 풀어낸 고인의 견해를 엿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곤 한다. 그게 애통하다.

어느새 12년이 되었다, 최명희 선생이 잎 진 낙엽처럼 훨훨 우리 곁을 떠난 지……. 그 사이 누구에게나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있었고, 나 역시 『혼불』을 떠올리다가 어느 때는 아예 잊은 듯이 지내기도 하였다. 그런 사이, 『혼불』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흘러내렸다.

이런 경우라면 고작 12년이다. 『혼불』은 한국소설사의 도도한 흐름의 하나가 되었을까. 12년은 대답하기 아직 곤란한 시간이다. 그런 사이, 『혼불』은 출판사를 바꾸어 재출간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고, 전주에는 최명희문학관, 남원에 혼불문학관이 세워졌는가 하면 그를 기려 제정된 ‘최명희청년문학상’은 손홍규와 김경주, 백상웅과 같은 걸출한 신인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즉, 그를 추모하는 마음과 그 마음을 문학적 재생산으로 이끄는 일들이 그동안 진행된 것이다.

사실 지금부터가 시작인 셈이다. 결국 독자 혹은 문학관 관람객, 청년문학상의 응모자들의 열의가 모여 『혼불』과 ‘최명희’는 다시 평가되고 거듭나게 될 것이다.

2. ‘살아있는 문학공간’으로 혼불을 거듭 살린다, 전주 최명희문학관

2006년 4월에 개관을 한 전주 ‘최명희문학관’은 명칭에서 보여지듯, 주로 작가 최명희에 초점을 맞춰 조성된 문학관이다. 최명희 작가가 전주에서 나고 크고 묻힌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소방도로가 나는 바람에 헐려버린 생가 터로부터 100여 미터 상거, 최명희문학관은 경기전(慶基殿) 동문 앞에 자리잡고 있다. 작가는 『혼불』 이전에 쓰인 「만종(晩鐘)」이란 단편을 통해, 사전어(辭典語)가 가진 한계에 대한 깨달음을 드러낸 바 있는데, 그 작품의 공간적 배경이 바로 문학관 앞에 자리잡고 있는 경기전이었음을 상기하면, 문학관이 자리잡은 전주 한옥마을 일대가 전부 생전의 작가 최명희가 부지런히 발품을 팔고 다녔던 곳이라는 짐작이 되고 그것이 또 남다른 감회를 불러일으키는 곳.

최명희문학관은 주 전시공간인 ‘독락재(獨樂齋)’와 문학활동 공간인 ‘비시동락지실(非時同樂之室)’로 이루어져 있다.

▲ 최명희문학관 내부 광경.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작가의 방에 들어온 것 같다

‘독락재’는 옛 선비들이 꿈꾸었던 가장 이상적인 경지였던, 학문을 익힘에 있어 혼자 스스로도 즐기는 마음을 담은 옥호(屋號)로 일평생을 문학으로 시종하였던 작가의 생애를 기리기 위한 이름이다. 필자 생각에 여기서 가장 눈여겨 볼 전시물은 작가가 생전에 지인들에게 보냈던 서찰들이라 할 수 있다. 문학관 개관 이후 지인들이 자발적으로 기증한 것들인데, 이렇게 여기 모인 서간들은 한 개인이 작가가 되기까지 겪어야 했던 삶과 문학의 고민들을 묵묵히 증언해준다. 전시된 엽서나 일기류, 또 연구실장인 최기우 작가가 공들여 수집한 콩트나 수필 등을 읽다 보면 죽은 작가 최명희가 10대 소녀, 20대 문청으로, 고민 많은 30대 신진 소설가의 얼굴로 다시 되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비시동락지실’은 때를 가리지 않고 함께 즐기는 곳이라는 뜻으로, ‘살아있는 문학관’을 표방하는 최명희문학관의 정체성을 보다 뚜렷이 보여주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관 조성에서부터 현재 운영에 이르기까지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혼불기념사업회’의 문학관 운영 방침은 초지일관, ‘문학관이 사당(祠堂)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많은 문학관, 기념관이 갖고 있는 태생적인 병폐, 즉 고인 혼자 잘 나서 모든 걸 다 이룬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 폐단을 미리 경계한 것인데, 최명희의 문학 정신이 더 오래, 더 크게 빛나는 길은 문학관이 전주의 문학 활동에 기여하고, 생산의 촉매 기지가 되어야 한다고 문학관 관계자들은 굳게 믿고 있다. 이와 같은 운영 방침이 문학인들은 물론 전주 시민들의 큰 호응을 받아 거의 날마다 이 공간에서 문화 행사, 집담회, 교육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전주의 ‘문화 사랑방’ 역할을 자임한 것에 대해, 또 시민들이 이와 같이 반응을 보이는 것을 직접 목격하는 것, 여러 사람의 ‘마음의 불’이 함께 휘황하게 빛나는 것을 보는 것이 최명희문학관 관람의 가장 큰 보람이라고 할 것이다. (중략)

* 본 원고의 전문은 <대산문화> 2009 가을호를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