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식물이 되고픈 감성으로 일본을 정신 분석하다

- 인간 내면의 공동을 지적이고 감성적 언어로 채우는 호시노 도모유키

글 / 신인섭_건국대학교 일어교육과 교수. 제1회 한일중 동아시아문학포럼 조직위원. 1962년생 저서 『아시아와 디아스포라』(공저) 『동아시아의 문화 표상』(공저), 역서 『소설론』『가와바타 야스나리・산소리』 등

호시노 도모유키의 소설을 읽으면서 20, 30년 전에 유행했던 텍스트의 쾌락이니 ‘열린 텍스트’니 하는 평론 용어를 모처럼만에 소환하는 기회를 누렸다. 바르트가 난해한 텍스트의 해독에서 발생하는 독자와 텍스트의 유희를 통해서 문학의 가능성을 본 것처럼, 호시노 문학은 지적이고도 감성적인 유희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한다. 일본의 현대소설들이 일상적이고 가벼운 소재를 ‘편안하게’ 소비하는 식으로 ‘유통’되는 상황에서, 호시노 도모유키는 그 가벼움에 대한 ‘대안’이라 할 수 있다. 고립무원의 마이너리티 편에 서서 일본의 병리를 정신 분석하는 난해한 소설을 쓰기 때문에, 텍스트의 쾌락을 즐기는 일부의 독자들에게만 ‘그’를 ‘읽을’ 권리가 주어진다. 그리고 번역되어 국내 독자들의 손에 들어오는 소설들이 주로 대중성을 담보한 소설들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그’를 만나기도 쉽지 않다. 필자가 알기로는 『깨어나라고 인어는 노래한다』가 김옥희의 번역으로 출판된 것이 유일하다.

▲호시노 도모유키

작년 이 무렵 대산문화재단에서 주관한 제1회 한일중 동아시아 문학포럼이 열렸을 당시, 필자의 통역으로 한국의 작가 임철우와 호시노 도모유키가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일본 사무국 운영 책임을 맡은 후지이 히사코가 두 작가의 회견을 갈망하여 필자에게 그 중개를 요청해서 만들어진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호시노는 ‘자신은 식물 주변에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져서 심지어 식물이 되고 싶어진다’고 말했다. 호시노 문학에서 식물이 되고 싶다는 말은 메타포가 아니라 감각이고 감성이다. 이는 문학적 언어가 아닌 다른 영역의 말로는 설명될 수 없는 바로 호시노 문학의 독창적 세계이다. 그리고 이것은 독자들을 낯설게 하고 역설적으로 엑스터시를 맛보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일본의 전통적인 리얼리즘에서 크게 벗어나 동물적인 인간관계를 부정하고 식물적인 관계항을 구축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포럼 발제에서 작가가 말한 것처럼, 196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출생한 그는 세 살이 조금 안된 시점에서 일본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미국 국적을 자동으로 취득하였지만 영어를 말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그는 이 경험이 언어의 내셔널리즘과 국가 장치에 대해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회고한다. 집, 고향, 국가와 동일성을 획득하는 자아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던 호시노는 대학을 마치고 잠시 신문기자 생활을 하다가 돌연 멕시코로 향한다. 멕시코의 폭력적 기억으로서의 역사성과 현재가 뒤엉킨 복잡한 혼혈성을 통해서 그는 새로운 관계적 방식을 본다. 그의 문학에서 볼 수 있는 국가 장치와 관련된 정치적인 소재, 일본 사회와 그 속의 개인들에게 짐 지워진 병리에 대한 치열한 대항 방법도 함께 체득된다.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마술적 사실주의(Magischer Realismus)가 그의 문학 세계에서 보이는 것도 이때의 영향일 것이다.
호시노는 마술적 사실주의와 나카가미 겐지의 영향을 담은 『최후의 한숨』(1997년)으로 ‘문예상’을 받으면서 등단하였다. “아직 읽은 적도 없는 작가가 죽었다. 그 작가의 죽음을 마쿠스는 멕시코에서 알았다”로 시작되는 이 데뷔작은 나카가미의 문학세계와 멕시코가 이 작가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선포한다. 스토리를 파악하기 힘든 이 소설은 익숙지 않은 언어를 접할 때 느끼는, 의미로부터 해방된 문장을 통해 무한한 상상력을 끌어내게 한다. 읽어 가면 갈수록 의미가 점점 희박해지면서 마치 중력에서 이탈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한편 제도에 대한 회의는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측면에서 일본을 정신 분석적으로 파헤치는 방법으로 전개된다. ‘미시마 유키오 상’을 수상한 『깨어나라고 인어는 노래한다』(2000년)도 독자들의 단순한 이해를 거부하기는 마찬가지다. 두 명의 서술자가 등장하여 현실인지 기억 속인지 모를 공동체가 형성되는가 싶더니 알쏭달쏭한 서술이 이어져, 한참을 읽어야 어느 정도 이 세계의 시스템을 파악할 수 있다. 가쿠타 미쓰요가 평한 것처럼 호시노의 소설을 읽는 행위는 “혼자서 이국을 여행하는” 느낌을 준다. 난생 처음 발을 디뎌보는 미지를 탐색하는 것처럼 처음에는 그들의 언어가 낯설어 전후 사정이 파악되지 않고 불안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낮선 언어가 난무하는 세계에서 ‘내용’을 장악하지 못하는 여행자의 난처함에 처하게 된 독자는 감각이 예민할 대로 예민해져서 온 몸으로 그 세계를 느끼려고 한다. 그 독서 행위 속에서 일단 기왕의 관습, 관념으로부터 무장 해제된 독자들은 날카로워진 오감을 통해서 마이너리티들의 삶을 전하는 생경하면서도 강력한 언어의 바다에 빠지게 된다. 1997년에 일어난 일본계 브라질인 에르크라노 살해 사건을 계기로 작가는 일본 사회의 다문화 부적응이 초래하는 공동체의 위기, 첨예화되는 원리주의에 대해 경고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한다.
여기서 필자는 역시 작년 문학포럼 기간 중에 건국대학교 아시아・디아스포라연구소에서 열린 임철우・시마다 마시히코와의 대담에서, 임철우가 일본소설의 가벼움에 대한 동기가 석연치 않다고 지적한 것을 떠올린다. 임철우는 한국 소설의 정치성과 일본 소설의 비정치성의 차이를 지적한 것인데, 시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예를 들어서 그의 판타지의 세계가 현실의 부조리를 산뜻하게 포장하여 독자들의 감각을 마비시킨다고 설명하였다. 그에 대한 대답을 호시노라면 동물적 리얼리즘의 세계에서 일탈한, 식물적인 문학어로 그려낸 환상적 리얼리즘을 대안으로 제시했을 법하다. 이런 점에서 호시노 문학은 가벼운 일상성을 토양으로 삼는 일본문학의 풍토에서 볼 때 특이한 존재이다.
호시노가 식물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것이 동물적인 생식과 그로 인해 성, 가족, 국가로 이어지는 제도의 부조리에 대한 ‘대안적 유토피아’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호시노는 동물적 본능에 의한 생식을 거부하고, 부모라는 입장에 ‘서 보지 않은 자’에게만 보이는 세계, 즉 마이너리티의 입장에 서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세계를 문학으로 표현한다. 이 사상을 궁극적으로 밀고 나갔을 때 『알카로이드 러버스』(2005년) 같은 소설이 탄생한다. 이 작품의 모티브에 대해서 호시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원예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제멋대로 자라 무성한 식물에 파묻혀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식물에=인용자) 에워싸여 있으면 자신이 그 일부가 된 느낌이 든다. 점점 피부가 녹색이 되고 발에서 수염뿌리가 자라 땅으로 뻗어가서 음식을 먹지 않아도 광합성이 될 듯 하고 바람에 민감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 기분 좋다. 이것이 이 소설을 쓰는 모티베이션이었다.(｢호시노 도모유키 자신에 의한 전 저작 해제｣, 『분게이(文芸)』(2006, 봄호)
이런 감성을 토대로 ‘아쿠타가와 상’ 후보작에 올랐던 『식물 진찰실』(2007년)이 나왔지만 아쉽게도 수상의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여기서 호시노는 중견작가의 책임을 다하고 싶다면서 앞으로, 신인작가에게 주는 이 상의 수상 후보가 되는 것을 스스로 사양한다. 두고두고 이 작가에게 이 상을 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될 거라는 말도 나온다.
한편 노마 문예 신인상을 수상한 『판타지스타』(2003년)에서 정치적인 주제를 전면에 내세운 호시노는 이어서 천황을 소재로 한 『론리 하트 킬러』(2004년)를 발표하였다. 작가의 해설처럼 자위대에서 충격적인 자살을 감행했던 미시마 유키오를 다분히 의식하고 있고, 박유하의 지적처럼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1914년)과도 그 맥이 닿는 소설이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이 소설은 “자기 아이덴티티의 기반을 자신에게 둘 수 없는 사람이 늘어나는 현재, 내면에는 커다란 공동(空洞)이 입을 벌리고 있다. 그 공동을 보지 않은 채 맨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적극적으로는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 공기와 같은 천황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과 실은 닮은 꼴”(앞의 자작 해설)이라는 문제의식을 내포한다.
인간 내면의 커다란 공동을 호시노 도모유키 문학이 앞으로 어떻게 채워나갈 지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번역이라는 문학행위를 통해서 호시노 문학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친숙해질 때가 오기를 기대한다. 그밖에 이 작가의 주요 작품으로 『놀려대기』(1999년), 『독신온천』(2002년), 『재일 오로시아인의 비극』(2005년), 『무지개와 클로에의 이야기』(2006년), 『우리들의 새끼 고양이』(2007년), 『무간도』(2007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