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잉전(陳映眞 : 1937~ )의 소설 『충효공원』 속 사건이나 인물은 우리에게 조금도 낯설지가 않다. 그것은 타이완의 지난 역사가 우리와 비슷했기 때문이고, 또 작가가 타이완 사회의 변천과 고뇌를 적확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천잉전은 1959년 처녀작 「포장마차(麵攤)」를 발표한 이래 단편소설 32편과 중편소설 4편, 모두 36편의 소설을 썼는데, 작가의 길로 들어선 지 50년이라는 시간을 놓고 보면 결코 작품 수가 많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창작 연도별로 그의 소설을 보면 지난 40여 년 간 타이완의 사회상과 변화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전후 힘의 논리와 정치적 억압의 시대, 비약적인 경제발전과 그 이면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공동의 목적과 가치가 사라진 90년대 타이완의 방황, 타이완 독립이 화두가 된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소설은 시대와 함께 했다. 천잉전은 격동기마다 현실로부터 도피하지 않았으며, 시대와의 불화로 7년간이나 감옥살이를 하기도 하였다. 그는 타이완 사회의 변화와 변해버린 사람들의 살풍경을 냉정하고 날카롭게 그려내면서도, 질곡의 역사 속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의 막막한 표랑을 강한 연민으로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충효공원』에는 3편의 중편 「귀향(歸鄕)」, 「밤안개(夜霧)」, 「충효공원(忠孝公園)」이 실려 있다. 작가는 이 3편의 소설에서 옛 일들을, 고통의 역사를 냉정하게 그리고 애틋하게 불러낸다.
1895년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중국 대륙과 단절되기 시작한 타이완의 역사는 1949년 국민당 정부가 중국 공산당에 패배하고 타이완으로 철수하면서 더욱 고착화되었다. 기왕의 타이완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풍토성과 대륙과의 단절로 이루어진 특수한 사회 분위기는 타이완 나름대로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기에 이르렀고, 타이완의 독립을 지지하는 이들은 이 점을 근거로 타이완 문화의 독립성과 중국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면서 그들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천잉전은 타이완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이들과는 달리 조국의 통일에 대해 단호하고 일관된 태도를 취해 왔다. 그는 소설 「귀향」에서 중국 대륙으로 끌려가 내전에 참전했다 40여 년 간 대륙에서 살아야 했던 타이완 출신 노병의 향수를 통해 하나의 민족이라는 동질성에 접근하고 있다.
「밤안개 夜霧」는 1970년대 말에서 1990년대 타이완의 격변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가는 과거 국민당의 정보부에서 일했던 주인공 리칭하오가 두려움과 피해의식으로 미쳐가면서 두서없이 써 놓은 기록을 통해 타이완 정국의 변화와 이로 인해 희생당하는 한 개인의 방황과 고통을 심층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과거 상부에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감옥에 처넣으라고 했던 사람들을 모두 석방 시키고 있다. 결국 나는 ‘나쁜 놈’, ‘국민당 프락치’라는 꼬리표가 일생 동안 따라 다니게 되었고, 윗사람들은 ‘깨어있는’ ‘민주적인’ 훌륭한 인물이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미친 자의 기록은 바로 왜곡된 시대와 권력을 철저하게 해체하려한 작가의 양심이 아니었을까.
한편 타이완의 독립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과거 일제식민 역사를 미화하고 심지어 찬양하는 이들도 있다. 천잉전은 이러한 논리가 발붙일 수 있는 것은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가 철저히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타이완 사회에서 생겨나는 기형적인 가치관과 역사관의 수정은 과거의 역사를 철저하게 규명하고 반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작가는「충효공원(忠孝公園)」에서 두 주인공 ― 중국 대륙 만주에서 일본 헌병에서 국민당의 특무요원으로, 인민군 포로가 되자 가차 없이 동료를 팔아넘기고 타이완으로 탈출하여 정보부에서 일하다 은퇴한 마정타오, 일본 정부의 배상을 받기위해 낡은 일본 군복을 입고 일본 군가를 부르며 자신이 영광스러운 일본 군인이었음을 증명해 보이려는 린뱌오 노인 ― 에게 싸늘한 냉소를 보이면서 역사를 철저히 반성하지 못한 대가가 어떠한 것인지를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이 세 편의 소설에서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 더욱 직접적이고 날카로워져 과거 간간이 보이던 낭만적인 색채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엄숙한 정서는 이 소설이 쓰여 질 당시 타이완 사회에 거세게 불어 닥쳤던 중국에 대한 배타적인 분위기가 현실로부터 비켜서지 않고 카랑카랑하게 살아온 그의 의식을 더욱 날 서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민한 시각, 의식형태 그리고 확고한 역사관을 바탕으로 전후 타이완 사회를 해석하고 있는 그의 소설은 독자들에게 다양한 사고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아울러 사회적 문제의식을 일깨운다. 이것은 동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중요한 임무가 아닐까. 그의 소설은 유사한 역사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한국 독자에게도 좋은 반면교사의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한다.
* 『충효공원』은 재단의 외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아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로 발간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