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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환
글 / 염승숙_소설가. 1982년생
소설 『채플린, 채플린』 등
관리소에 들어가자 두 명의 심사단이 책상을 붙여 앉아 있었다. 둘 모두 흰 가운을 입었는데, 한 명은 P, 또 한 명은 L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곧이어 그들과 나 사이의 공중에 하얀 터치스크린이 떠올랐다. 의사 둘이 동시에 나와 관련된 차트를 한 장씩 훑어보기 시작했다. 나는 긴장이 되었지만 티내지 않으려 애썼다.
“아직 충분히 건강하신데요.”
P가 말했다.
“충분히,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이웃인 Y로부터 인터뷰에 응하는 연습을 수차례 받았던 터라, 나는 망설임 없이 그러나 조심스레 대답했다.
“조금 더, 아내와 아이를 생각하셔야지요.”
이번엔 L이 말했다. 될 수만 있다면, 이들은 좀체 허가를 내주지 않으려 할 거라고 Y는 조언했었지. 이미 수차례, 이곳을 다녀갔던 Y였다. 그가 다시 내 이웃으로 돌아올 때마다 나는 반가웠지만 다녀올 때마다 축 늘어진 Y의 어깨를 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결심만 되어 있다면 문제 될 건 없을지도 몰라요”라고 Y는 내게 말해주곤 했다. “뻔한 말이지만, 언제 어디서든 중요한 건 스스로의 의지니까요.” 어젯밤에도 늦은 시간까지 나는 그와 대화했다. 나는 차가운 맥주를 홀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Y가 고쳐준 휠체어에서 내려야 할 때가 점차 다가온다고, 나는 생각했다. 괜스레 엉덩이가 시큰거리는 기분이었다. 지금쯤 Y는 나보다 더 긴장해서는, 푸르죽죽한 얼굴로 성급하게 텔레비전의 채널을 돌리고 있을 테지. 그와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남겨질 가족에게 좀 더 시간을 주시죠” 하고, L이 재차 말했다. 내가 망설이고 있다고, 그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담담히 대답에 응했다.
“이제 휴식 할 때가 되었다고, 모두에게 양해를 구했어요. 결코 쉽게 내린 결정이 아닙니다. 나는 지금껏 몇 번이나 장기를 개량했죠. 그건 결코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어요. 힘겹지도 않았고요. 그저 옷이 낡았다고 느낄 때 새것으로 갈아입으면 되는, 그런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하고 P가 말허리를 잘랐다. “산다는 건 힘겨운 게 아니죠.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새 인생을 살 수 있어요. 어려울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건 절대로, 망설일 것이 못 되죠.” L도 끼어들었다. P와 L의 어조는 무미건조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더도 덜도 없이 ‘그냥 사는 거예요. 우리 모두 그저 살아갈 뿐이죠. 대체 뭐가 불만인데요?’라고 묻는 꼴이었다. 예상하고 왔는데도, 대화를 나눌수록 나는 조금씩 상심했다.
“힘겹지 않다는 게 힘겹다고 말하면……, 이해하시겠습니까?”
보지 않아도, 이런 내 말에 아내는 고개를 돌린 채로 입술을 깨물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말해야 했다.
“사는 게 고통스럽지 않다는 사실이 내겐 고통스럽다고 말한다면 말입니다, 받아들여주시겠습니까?”
P는 대꾸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L은 심드렁한 얼굴로 손에 쥔 볼펜을 두어 바퀴 쯤 돌려댔다.
“매일 아침 닦아내는 창틀의 먼지처럼, 이 우주에 얹힌 채로 살아왔어요. 어느 순간부터 말예요. 아주, 아주 오래도록 말입니다. 하루 또 하루, 매일 제공받는 시간의 할당량을 그저 소비할 뿐인 삶은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깨닫기까지, 물론 또 오랜 시간을 내버려야만 했죠. 나는 생산의 주체는 되지 못하면서, 언제까지고 소비만 하고 있단 말예요. 앞으로도 줄곧 그럴 테고요. 그건, 건강한 삶이 아닙니다.”
대답하며, 나는 여러 번 숨을 참았고, 휠체어에서 조금씩 몸을 움직였다. 아내와 딸아이가 나를 부축해 주려 했지만 나는 손사래를 쳤다.
“우울증 치료를…… 하신 적이 있군요?”
P가 자료를 찾아 터치스크린에 뜬 내 차트를 뒤적였다.
“네.” 나는 순순히 대꾸했다. 그것은 대화의 요점이 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우주의 노동력과 생산량은 현재 최상의 상태예요. 식량을 비롯한 에너지와 온갖 환경 자원도 부족함이 없죠. 출생과 사망 등의 인구율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인생을 즐기시면 어떨까요?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제게 필요한 건 시간 따위가 아니에요.”
P의 말에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당황한 아내가 내 손을 찾아 그러쥐었다. L이 나직하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저 숨일 뿐이었는데 어쩐지 내게는, 그것이 어릴 적 자주 듣던 휘파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조금 침착해져서 “이곳에선 아무도, 휘파람을 불지 않지요……” 하고 중얼거렸다. P든 L이든, 내 말에 귀 기울인 이는 없는 것 같았다. 다만 딸아이만이 “아빠”라고 말하곤 조심스럽게 내 어깨를 쥐었다 놓았다.
“아마도 여러모로 많이 불편하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걱정 안하셔도 돼요. 새로 개발된 척추가 있습니다. 지난주에 들어온 프로그램인데, 벌써 만 명 넘는 분들이 만족하셨습니다. 부작용도 없고, 시술 기간도 짧습니다. 이번 한번만 더, 받아 보시죠. 걷게 되실 거라고 장담합니다.”
P가 건조한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척추만 갈아 끼우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어떻게 말해야 할까 나는 잠시 고민했다. Y와 함께 꽤 여러 번 가상 인터뷰 연습을 했는데도, 대답이 바로 바로 나와 주질 않았다. 나는 P의 오른쪽 뺨에 자잘하게 달라붙은 점 몇 개를 눈으로 훑으며 잠시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 침묵을 견딜 수 없어, Y는 집으로 돌아오곤 했던 것이 아닐까. 집을 나서며 마주친, Y의 초조한 눈빛이 떠올랐다.
“걷지 못해서가 아니에요”라고,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러나 어떤 간절함으로, “걷지 못해서가 절대로, 아니란 말입니다”라고도, 힘주어 덧붙였다.
“내게는 보다 진실한, 휴식이 필요할 때예요.”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건, 오직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거죠. 이유 없이, 스스로 알아채는 거예요. 내 몸이 그리고 내 영혼이 그렇게 말해요. 쉬어야 한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니 나는, 그곳으로 꼭 돌아가야 한다고 말예요. 거기엔 아무런 조건도, 해명도 필요 없어요. 그냥, 그냥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 뿐예요.”
나는 씁쓸히 웃었고, P는 어쩐지 조금 풀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더없이 사무적일 뿐인 “알겠습니다”라는 그의 말이 그러나, 촉촉하게 느껴졌다. 시원한 물뿌리개 아래 서 있는 화초처럼 가슴이 뛰는 걸, 나는 느꼈다. 울며 나를 붙들던, 서운함에 물 한 모금 넘기지 않았던 아내의 심장은 지금, 어떻게 뛰고 있을까. 새삼 고맙고, 미안하고, 면목이 없어 손바닥 가득 땀이 뱄다.
버튼이 장착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보……, 잘 가요.”
“아빠, 안녕.”
아내는 미소를 지었지만, 딸아이는 울듯 말듯 얼굴이 일그러졌다. 한 손에 하나씩 아내와 딸아이의 손을 꼭 모아 쥐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응, 그렇고말고.”
긴 포옹이 끝나고 아내와 딸아이가 내 곁에서 조금 떨어졌다. “여보, Y에게 내 대신 인사를 좀 전해줘요”라는 말을 끝으로 나는 천천히 호흡을 했다. 이제 짧고도 긴, 이별이 시작될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갈 수 없을지 모른다고, 살며, 아니 어쩌면 나는 매 순간, 그렇게 생각해왔는지 모른다.
“너무 짧은 여행은 아니었으면 좋겠어.”
나는 부러 밝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내와 딸아이가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얼굴이 조금 전 딸아이의 표정 같을까봐, 나는 입매를 끌어당겨 보였다.
‘잘 있어.’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다만 몇 번이고, 나는 호흡했다. 그리고 천천히, 두 팔을 접고 두 다리를 모았다. 고개도 가슴께에 깊이 파묻었다. 끝내 내 몸은 아주 작게, 웅크려졌다. 마침내 왼발의 복사뼈에 붙은 붉은색 버튼을 누르자 서서히 내 몸피가 줄어들었다. 흙을 빚듯 단단히, 그러나 종이를 접듯 가벼이, 나는 스스로 한 발의 탄환이 되었다.
이 긴 긴 우주에서 발사되면 나는 이제 지구로 날아갈 것이다.
“늘 그래온 것처럼, 우주의 무덤은 지구이니까” 하고, 나는 탄환이 된 채로 중얼거렸다. 이유를 모른 채로, 나는 불쑥 무엇인가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언어는 점차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지워졌다.
삐― 브르다르, 삐― 브르다르.(여보, 나 이제 갈게. 여보, 나 이제 갈게.)
침묵하고 싶었으나 소리는 계속해서 몸 안 어딘가를 비집고 흘러나왔다. 내 의지가 아닌 채로 나는 자꾸만 말했다.
삐비오― 소를레, 삐비오― 소를레.(건강해라, 내 딸. 건강해라, 내 딸.)
어딘가 비좁은 상자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이별의 순간엔 누구나 이렇듯 작아지는 것이었던가. 나는 홀로, 거듭 인사했다. 내가 숨 쉬어온 한 세계와의 결별을, 나조차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언어가 이토록 보잘 것 없다는 걸 진작 알았더라면, 그렇다면 나는 좀 더 상처받거나 상처주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감상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나는 마음먹었다. 그러고는 탄환이야말로, 내가 이 우주적 생애에서 마지막으로 가장 좋아한 물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탕!
나는 회전하며 우주를 날아갈 것이다. 그 회전력에 의해 안정된 비행자세로 목표물에 닿을 것이다. 탄피 속의 화약이 완전 연소되어 최대속도가 얻어지듯 공중비행 속에서 나는, 점차 불타 사라지면서도 제 속도를 잃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툭, 지구의 대지 위에 씨앗으로 박히면, 멀지 않아 나는 꽃으로 피어난다 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선택한 죽음이자 생의 완성.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제 곧, 나는 발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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