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하진(49)의 소설집 『착한 가족』을 제외하고 중견작가들의 작품 발표가 부진했던 지난해 연말과 올 초의 침체된 분위기를 일신하듯, 2분기에 들어서며 등단 15년 이상 중견작가들의 작품발표가 이어졌다. 지난해 연말 인터넷 연재 당시 뜨거운 호응을 얻었던 공지영(46)의 『도가니』(6월)가 가장 눈에 띈다. 장편소설 『즐거운 나의 집』 등 사적 체험에 근거한 가족소설에 관심을 보여 왔던 작가는 이 작품으로 현실 문제를 고민하는 리얼리스트로의 귀환을 알렸다. 그는 지방의 장애인 학교에서 발생했던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이를 은폐하려는 지역사회 엘리트들의 ‘침묵의 카르텔’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비판하고 있다.
팩션 붐을 반영하는 작품들도 잇달아 나왔다. 『미실』 『논개』 등 고대와 중세여성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던 김별아(40)는 식민지 시기 일본 천황에 대한 폭탄테러를 모의했던 조선인 아나키스트 박열과 그의 일본인 연인 가네코 후미코와의 불꽃같은 사랑을 소재로 한 『열애』(6월)를 발표했다. 그는 『백범』(2008)에 이어 자신의 역사적 시선을 근ㆍ현대로 돌리며 역사소설 작가로서의 역량을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범신(63)의 『고산자』(6월)는 대중에게는 잘 알려져 있으나, 사료 부족으로 생몰 연대조차 알려지지 않은 신화 속의 지도제작자 김정호의 생애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복원했다. 작가는 김정호의 지도 제작을 불온시 하던 지배권력과의 갈등을 주목, 민중적 시각으로 김정호의 생애를 되살려낸다.
늦깎이 작가 이현수(50) 의 두 번째 소설집 『장미나무 식기장』(6월)도 주목할 만한 소설집. 작가는 『신 기생뎐』에서 진가를 보여주었던 능수능란한 방언 활용 능력을 바탕으로 현대화의 내파에 맞닥뜨려져 변화의 기로에 놓인 여성 정체성의 문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 등을 소설로 담아내고 있다. 현길언(69)의 16년 만의 소설집 『나의 집을 떠나며』(7월)는 최근 한국소설의 화두인 ‘가족관계’의 문제를 깊고 넓은 시선으로 천착하고 있다. 그는 ‘사랑과 억압 사이 경계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가족관계의 복잡하고 미묘한 양상을 포착해낸다.
20, 30대 작가들도 새로운 감각을 선보이며 현실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문학적 응전을 시도했다. 신화적인 상상력과 관습파괴적인 문장들이 인상적인 첫 작품집 『달로』(2006)로 일약 한국문단의 ‘무서운 아이’로 떠오른 한유주(27)는 두번째 소설집 『얼음의 책』(6월)에서 좀 더 강력한 언어실험을 시도했다. 그는 이 소설집에서 소설의 장르적 관습인 ‘사건’을 축출한 작품들을 발표하며 “다시,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무겁고 본원적인 질문을 던졌다. 계간 <세계의 문학>에 발표됐던 김이설(34)의 경장편 『나쁜 피』(6월)는 ‘불행한 인간군상’들의 삶을, 인간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듯한 치밀한 심리묘사와 때로 위악적으로까지 비춰지는 섬뜩한 문장들로 소설화했다. 박민규(41)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7월)는 엉뚱하고 황당한 상상력으로 ‘무규칙 이종 소설가’로 불렸던 작가가 ‘연애소설’ 작가로서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 소설. 연애 소설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우리사회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사회소설적 성격도 품고 있다.
시집으로는 지난해 미당문학상 수상자인 송찬호(50)의 9년만의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5월)이 눈에 띈다. 시인은 주객(主客)을 전도시키는 시적 방법론과 천진난만한 언어유희를 통해 현실 이면의 비의를 우화적으로 탐색한다. 유안진(68)의 『알고(考)』(7월)는 민속학을 전공한 학자로서의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의 전통과 민속에 녹아있는 오래된 삶의 지혜를 풀어낸 테마시집. 풍수지리, 금줄, 민속놀이 등 전통의 현대적 의미를 묻는다.
문학과지성사의 ‘문학과지성사 시인선’과 함께 한국현대시의 한 축을 맡아온 창비의 ‘창비시선’이 시선집 『걸었던 자리마다 별이 빛나다』(4월) 3백번 출간을 맞이한 것도 기념비적이다. 실험성, 전위성, 언어 탐구 등 모더니즘의 미학 전통에 대응해 민중적 서정성, 참여적 사실주의 등의 과제와 싸워온 창비의 고집스러움은, 이념 대립의 해체, 민주화의 진전, 세계화의 확산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 리얼리즘 문학에 내성(內省)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통과 역사에 걸맞은 국제적 위상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던 ‘2009 서울국제도서전’은 비교적 흥행에는 성공했으나 한국출판계의 고질적인 내분을 드러나는등 ‘절반의 성공’ 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올해 도서전의 주빈국이었던 일본에서 에쿠니 가오리, 온다 리쿠, 요시다 슈이치 등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스타급 작가들이 방한, 유료 행사로 전환했음에도 불구하고, 11만 명의 관객이 행사장을 찾았다. 그러나 단행본 출판사와 전집ㆍ사전류 출판사 사이의 오래된 갈등으로 민음사, 한길사, 창비 등 국내의 중요한 단행본출판사들이 참가하지 않는 등 오점을 남겼다.
지난해 64만 달러의 선(先)인세를 지급 출판계의 화제가 됐던 『마지막 강의』에서 촉발된 선인세 논란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IQ84』를 통해 재점화 됐다. 한국어판의 선인세는 국내 출판 역사상 최고액인 10억 원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벨문학상의 유력한 후보로 꼽히는 작가의 작품이며, 일본에서도 입도선매될 정도로 열풍이 분 작품이지만 ‘국내작가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에 비해 과다한 선인세를 지급한 것이 아니냐’라는 의견과 ‘세계 문학의 아이콘이 된 작가의 영향력에 걸맞은 선인세’라는 의견이 엇갈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