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요셉 보이스 전을 보려고 집을 나와 효자동 길을 걷고 다시 삼청동 쪽으로 넘어와 화랑이 늘어선 거리를 걷는다. 이 즈음 언제나처럼 세상이 이상해서 죽을 지경인 채. 그래 이게 인생이란 말인가 하는 느낌에 휩싸인다. 어딘가 세상 밖에서 세상 안을 기웃거리는 느낌이다.

요셉 보이스라던가 앤디 워홀이라던가 내게로 다가오는 느낌은 매우 독특한 것이다. 요셉 보이스는 그저 한두 번 흘깃 그의 작품을 어딘가 책에서 본 적이 있는 듯도 하고 아니면 전혀 처음 듣는 이름인 듯도 한데 이름 그 자체에서 소개된 그대로 현대의 신화적인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런 이름들이 있다. 유시 비올링이라던가 데오도라 키스, 벵갈로프 등의 이름들.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그러나 이름만 듣고도 알 수 있을 듯한 그런 이름들. 보이스의 작품들은 자서전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갖가지 개인적인 상징들로 가득하다고 한다. 그의 작품들이 자전적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 우선 끌어당긴다. 자전적인 의미라는 것이 언제나 나를 제일 끌어당긴다. 거기에는 비밀스레 엿볼 무엇이 있는 듯 느껴진다. 또한 나 자신의 심중을 토로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집을 나올 때 라디오에서 <생에 대한 갈망>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 제목만으로도 내게 위로가 되었는데 생에 대해서 갈망한다고 저렇게 말하고 있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안도에서였다. 내 마음 속 얘기란 바로 저렇게 생에 대한 갈망의 얘기들이지만 어쩐지 그런 것은 입 밖에 내어 얘기할 수 없는 듯이 느껴진다.

신문 기사에 의하면 요셉 보이스는 세계2차대전 때 독일 공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사고로 러시아 크림반도 근처에 불시착, 사경을 헤맨다. 그를 구조한 타타르 유목민들은 화상과 골절로 만신창이가 된 그의 온몸에 지방덩어리를 바르고 펠트천으로 체온을 유지시키고 우유와 치즈로 80일 만에 그를 살려낸다. 이 기적적인 생존이 뒷날 신화화되고 그의 예술 작업의 지속적인 모티브가 된다. 그는 자신이 신병(神病)을 앓고 그 병의 치유를 통해 병든 공동체 전체의 회복을 원했던 20세기 무당이다, 라고 어느 미술사학자는 말하고 있었다.

설레임을 갖고 전시장에 들어갔으나 작품 수가 적었고 전시장이 소란스러워서인지 어떤 특별한 공감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대가들의 작업에서 늘 느끼듯 몹시 자유로운 자기만의 질서를 보았는데 그것이 내게 선망으로 다가왔다. 마음 속 갈망은 더한 채 어두워진 은행나무 거리를 걷노라니 먼 옛날 파리에서 돌아올 무렵이 떠오른다.

아주 낯선 파리 외곽의 창고들이 서 있는 먼 곳까지 가서 배편으로 짐을 부친 후 어느 카페에 앉아 수첩을 꺼내어 적었다. 이 날의 초라함을 잊지 말고 불어를 배우고 요가를 하여 몸을 건강하게 만든 후 다시 파리에 꼭 올 것을 다짐하는 글이었다.

채원, 오늘의 너 자신을 돌아다 보아라 하는 구절로 시작된 그 수첩, 겉장이 하늘색이고 몇 사람의 주소와 전화번호, 음악 몇 곡도 적혀 있는 그리고 연필로 희미하게 나뭇가지 선도 그려져 있는 - 떠나기 전날, 눈이 조금씩 오고 있고 나는 열이 심하고 기관지가 아프다. 모든 것이 구겨지는 느낌, 외국의 느낌은 모든 것이 구겨지는 느낌이다. 한 번 저항해 보지 못하고 순종하는 자세로 - 이런 낙서도 적혀 있는 오래된 수첩을 우연히 발견하던 날은 견딜 수 없도록 가슴이 아팠으나 그러나 이제는 다소 무덤덤하게 떠올린다. 가슴 아플 자격조차 주지 않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나를 나로부터 떼어낼 수 있어 다소 넉넉해진 것인지.

어리석었던 실수투성이 날들. 예술이라는 것은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갖고 있는 것으로 그냥 되는 것인 줄 잘못 알고 있은 나날들. 글도 그림도 글쟁이, 환쟁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선 쟁이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이 즈음에야 뒤늦게 깨닫는다. 그러나 맞는 말일까?

내가 내 힘을 한 번 다 끌어내보지 못한다면 이 세상은 너무 이상할 것 같다. 또한 내가 이 세상에서 이거다, 하는 절대적인 그 무엇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이 세상은 정말 너무 이상할 것 같다. 적어도 절대적인 그 무엇을 찾아보려고 내가 내 힘을 다 소진하지 못한다면……

‘병든 공동체 전체의 회복’이라는 그 기사 속 구절이 이 저녁 어쩐지 나를 회복시켜 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