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내가 80년대 후반 스웨덴의 스톡홀름대학교에서 한국학을 공부했을 때 제대로 번역되고 소개된 한국 작가의 책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 매우 실망했었다. 나와 같이 공부했던 다른 학생들도 이에 대해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스웨덴어 번역판은 아예 기대할 수가 없었고 좋은 영어판 번역조차도 찾기가 어려웠다. 이런 면에서 중국학이나 일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본책이나 중국책은 영어 번역판은 물론이고 스웨덴어 번역판들도 이미 여러 권이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 나는 한국학과에서 공부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따라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아주 많긴 했지만 아직 한국어 원문으로 된 문학책들을 쉽게 읽어낼 수 읽는 실력은 되지 못하였다.

그 당시 한국문학의 해외소개 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에서 번역되고 출간된 책들을 외국의 대학교에 기증하는 일이 많이 있었는데, 스톡홀름대학교 도서관에도 이런 식으로 한국에서 보내준 한국 소설책들이 몇 권 있었다. 나는 여러 번 도서관에서 한국 소설책들을 대출하여 읽어보려 했지만 번역을 비롯한 여러가지 부족함으로 인해 그 책들 중 어떤 책도 내게 문학적인 흥분을 일으키지 못했고 그래서 몇 번 읽기를 시도하다 중단하고 말았다.

그러던 중 내게 작은 관심을 일으킨 일이 생겼다. 나는 그 당시 스웨덴의 여느 다른 대학생들처럼 주말마다 스톡홀름의 헌책방을 드나들곤 했었는데, 어느 날 진보적인 작은 출판사에서 나온, 영어판을 스웨덴어로 옮긴 김지하의 시집을 발견했다. 그 시집은 한국 상황을 자세히 묘사하면서 내게 큰 공감이 되어 다가왔다. 나는 처음으로 내게 충분한 문학적인 흥분을 일으킨 한국문학을 만나게 된 것이다.

내 개인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70년대부터의 한국문학 해외소개 사업이 그 동안 왜 큰 성과가 없었는지에 대한 단서를 여기서 찾을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제일 중요한 문제는 그 동안 이 사업의 주 관심사가 문학보다 한국의 국제 이미지 제고에 있었다는 점이다. 문학을 소개하는 것보다 외국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한국”을 알리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런 사업도 필요할지 모르지만 진지한 문학을 전달하기에는 방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 때 내가 김지하의 시에 흥분을 느꼈던 이유는 한국이라는 나라와 그 나라의 문화를 구체적으로 표현했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해외 선전용적인 번역물이 전달하지 못했던 진지한 문학의 언어적인 교묘함, 그 표현력과 재치, 그리고 그 작가의 인간적인 열정 때문이었다.

물론 요즘의 상황은 80년대 후반의 상황과는 아주 다르다. 지금은 번역원이나 대산문화재단과 같은 기관 덕분에 좋은 번역물이 많이 나와 있고 따라서 한국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읽을 수 있는 책들과 자료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충분히 있다. 그런데 이러한 좋은 번역물을 소수의 한국학 하는 사람 이외에 다른 계층들에는 잘 알리지 못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따라서 번역하는 일을 지원함과 동시에 홍보 사업도 병행해야 하는데 다른 나라에서 그런 사업을 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이런 문제에 대하여 한국문학을 번역하는 외국인으로서 몇 가지 생각이 있다.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문학에는 국적이 없다는 점이고 문학이 국적이 없기 때문에 국경 없는 독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업의 주 대상이 국적에 상관없이 세계 여러나라의 독자층에 보편적 공감을 줄 수 있는 개개 작가들의 구체적인 작품이 아니고 한국적인 특징만을 강조하는, 파악하기 어려운 국적을 붙인 “한국문학”이라면 큰 성과를 기대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이런 “한국문학”을 소개하는 세미나에 참가했을 때 한국문학의 특징이 무엇인가, 이런 특수한 한국적 문학 성격을 번역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한국문학이 훌륭한데 왜 해외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가와 같은 이야기를 몇 시간 동안 듣고 나더니 옆에 앉아 있던 한국학과 관계없는 참석자가 한국 사람들은 “한국”적인 것에 왜 이렇게 집착하느냐고 내게 물어보았다. 몇 명 안 되는 한국학 관계자들과 한국 교포들에게는 그런 한국적인 면이 흥미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현지 관계자들이나 보통의 세미나 참석자들한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문학에는 대변인이 필요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폴란드의 작가 곰브로비치가 망명 생활을 하면서 썼던 “일기”에서 폴란드의 “훌륭한” 문화를 대변하는 조국의 민족주의적인 지식인을 비판하면서 “그런 연설을 듣는 외국인들한테는 훌륭한 폴란드 문화에 대한 좋은 인상보다는 지겹게 자랑하기만 하는 폴란드 지식인들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이 더 깊게 박힐 것이다”라고 쓴 적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문학 세미나에 참가했던 현지 외국인에게는 한국문학에 대한 좋은 인상보다 “한국”적인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한국 대변인에 대한 당혹한 인상이 더 깊을 수 있다. 그래서 대학 중심으로 이런 한국문학 대변인을 모아 한국적인 특징을 학문적으로 토론하는 것보다 출판․문학계 중심으로 간단하면서도 생생하게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고 작품의 의의 해석을 세미나 참가자에게 맡기면 더 많은 관심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이 이제 국제화되고 지나친 민족주의와 권위주의의 틀을 벗어나면서 이런 사업의 방식도 많이 바뀌고 있고 따라서 앞으로 좋은 성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직은 한국적인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요즘 자주 세계화의 시대라고 한다. “세계화”란 말은 원래 국적이나 국경 같은 것이 더 이상 별 의미가 없다는 개념인데 한국에서 문학의 세계화는 “한국”이라는 국적이 붙은 문학이 세계무대에 등장하다는 의미로 바뀌었다. 그런데 세계화는 일방적인 과정이 아니고 국경을 초월하는 다변적인 협력으로 이루어진다. 가끔 해외에서의 한국문학에 대한 무관심을 슬퍼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에는 다른 나라의 문학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클까? 프랑스나 러시아와 같은 문화 강대국 이외 다른 작은 나라의 작가들은 보통 특정국가의 작가로서 해외에 알려지는 게 아니라 국적이나 국경을 초월해서 개인 작가로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세계적인 작가가 됨으로써 비로소 한국에도 소개된다. 한국에도 그럴 만한 작가가 얼마든지 많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이라는 국적에 대한 집착만 버리면 이러한 작가들의 해외 소개가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