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누군가로부터 대필 제의를 받았다. 직함이 여러 개가 있는, 제법 돈이 많은, 무슨 회장이라 불리는 사람의 자서전이었다. 한 호텔 커피숍에서 그는 자기가 살아왔던 인생 역정을 짤막하게 설명했다. 말하는 중간중간에 자기 얘기를 쓰자면 소설책 열 권으로도 부족할 거라는 말을 양념처럼 집어넣곤 했다. 평균적인 단편소설 원고료로 치자면 적어도 육십 편 이상을 써야만 손에 쥘 수 있는 돈을 대필비로 제시했다.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 딱 감고 문장연습 한다 치고 아무도 모르게 해치우면 될 듯했다. 그런데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은 자서전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두 권 분량으로. 그리고 덧붙이는 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게 한 번 해봐라. 내가 아는 사람이 많아 책 살 사람도 많다. 다른 건 다 이루었다. 나는 꼭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옛날부터.
그는 자신이 살아왔던 이야기를 쉬지도 않고 늘어놓았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의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억울하고 괘씸하고 분하고 화가 났다. 탁자 밑으로 내려뜨린 손은 부르르 떨려오고 입술이 움찔거리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내다가 결국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감히 돈으로 작가가 되려고? 소설이 그렇게 쉬운 줄 알아? 나는 아마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 사람은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나는 뭐가 그렇게 억울하고 괘씸했던 걸까? 나는 왜 소설가가 되려고 했던 걸까? 도대체 소설이란 뭘까? 나는 후에 되묻고 되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얼굴이 홧홧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감정은 괘씸함과 억울함에서 부끄러움으로 변했다. 그때 그 사람에게서 내 속에 숨은 어떤 헛된 욕망 같은 것을 보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하던 질문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잊고 있었다.
그런데 이젠 정색을 하고 물어온다. 자신의 소설이 지향하는 바와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 내 소설의 변별성이 무엇인지, 독자나 평론가의 오독 부분까지, 참 난감한 질문들이었다. 내게 한 질문에 독백으로도 답하지 못했는데 그걸 글로 쓰라고 하니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소설을 쓸 때, 무얼 작정하고 쓴 적은 없었다. 그냥 몸이 가는 대로 눈이 가는 대로 보고 느끼고 썼다. 나는 이제 막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그 무렵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누군가 내게 보내왔던 우려를 중심으로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당신은 어떤 소설을 쓰려고 하는가?
내가 「바늘」이라는 소설로 등단했을 때, 사람들은 문신하는 걸 보았는지 직접 해 보았는지 궁금해했다. 이어서 발표한 「숨」이라는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 또 물었다. 마장동에 가서 조사를 했느냐, 직접 해보기도 했느냐. 어떻게 보지도 않고 쓰겠어요. 내가 대답했다. 그러자 그렇게 쓰다가는 금방 지치고 만단다. 덧붙여 말하기를 소설은 가까운 곳에서 찾아야지 그렇게 멀리서 헤매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건 특이한 소재를 찾아다니는 소재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소재가 떨어지면 그땐 소설을 못 쓰게 된다, 너무 돌아다니지 말고 앉아서 상상하는 법을 배워라, 네 이야기를 써라, 네 가장 가까운 주변을 둘러보아라, 이렇게 충고하는 선배 작가들도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해할 수는 없었다. 지치지 않으려면 모르는 것도 가만히 앉아서 아는 척을 해야 하는지, 무엇이 가깝고 무엇이 먼 이야기인지, 앉아서 상상하는 것이 돌아다니며 상상하는 것보다 과연 우위에 있는 것인지, 경험을 통한 소설 쓰기가 왜 위험한지, 질문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나는 보지 않는 것은 쉽게 믿지 못한다. 음식을 먹을 때에도 젓가락보다 손이 먼저 간다. 손에 잡혀지는 것, 확인되는 것, 만져지고 느껴지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즐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즉물적이라는 걸 알겠다. 몸이 반응해야 믿는다.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단 한 번 봐야 뭐라도 생각이 난다. 보지 않은 것을 쓰려하면 생때를 쓰는 어린애처럼 조급하고 불편하다. 그러니 힘들더라도 발품을 팔아야 한다. 발품을 팔다 보면 내가 미처 보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한 것과 마주하게 된다. 내가 짐작한 것과는 다른 것들이 내 앞에 펼쳐진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동기는 작가들마다 다를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 틈 속에 있을 때 내 상상력은 자유를 얻는다. 그러니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그래서 나는 금방 지치더라도 발품을 팔 것이다. 특수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미처 알고 있지 못한 삶에 관심을 갖고 바라보려 하는 것이다. 예쁘고 좋고 정갈하고 아름답고 정돈되어 있는 삶에서 비루하고 힘겹고 구차한 삶을 본다.
내가 쓰고 있는 삶의 단면들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그만그만한 경제력을 가진 환경 속에 자라고 교육받는 동안 작가들의 시야가 너무 좁아져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반성해야 하지 않겠는가. 왜 자신이 알지 못하는 영역은 멀고 자신이 알고 있는 영역은 가깝다고 생각하는가.
본다는 것. 그것은 소설의 디테일과 현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오랜 응시가 포함되어 있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 오래 바라보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소머리국밥은 쉽게 먹으면서 소머리를 가르는 것을 상상하면 눈살을 찌푸린다. 어떤 사람은 닭 잡는 걸 본 후로는 다시는 닭고기를 못 먹는단다. 죽어가던 닭이 자꾸만 생각나서. 닭은 먹고 싶지만 닭 목을 치고 털을 뜯어내고 배를 가르는 과정은 외면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식탁 위에 오른 음식 속에는 그 모든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밤낮없이 알전구 불빛을 받으며 자지도 못하고 살던 비좁은 닭장 시절이 있고, 목이 잘린 후 뜨거운 물을 뒤집어써가며 털이 뽑히는 도축의 시간이 있다. 그것이 특이하다면 그 음식을 아무 생각 없이 먹는 사람들이 더 특이하다.
나는 여자다. 그래서 작가 앞에 여성이라는 말머리가 붙는다. 여성작가. 여성작가의 시대가 있었다, 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여성작가의 소설에 신물이 났다고도 한다. 새로울 것이 없기 때문이란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로움을 원한다. 여성작가에 대한 기대와 실망은 규정에서부터 온다. 독자에 의해, 평론가들에 의해, 작가 스스로에 의해 내려진 규정들. 그것은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여성작가가 아니라 그냥 작가였으면 좋겠다. 글 속에서 여자의 냄새가 맡아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냄새가 맡아지는 소설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내가 애초부터 갖고 있던 반성이자 전략이었다.
내가 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두고 사람들은 말한다. 여성작가가 쓴 새로운 여성이라고. 새롭다는 이유는 추하고 공격적이고 불구고 육식성이라는 것. 그것이 왜 새로운가. 이전의 여성 주인공들은 소극적이고 아름답고 초식성이기 때문이란다. 그것은 편견이다. 여성에 대한 편견이고 아름다움에 대한 편견이고 식성에 대한 편견이다. 그러니 그 여성들은 새로운 여성이 아니라 편견에서 빗겨선 여성일 뿐이다
나는 요즘 한 조선족 여인과 보따리상 이야기를 쓰고 있다. 조선족 여자를 떠올리면 흔히들 식당에서 일하는 아줌마를 생각한다. 낯선 말투와 가난하고 피로한 삶, 불법체류 등이 곧바로 떠오른다.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소무역을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밀수입과 억척스러움이 생각난다. 나 또한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리하여 무작정 중국으로 가는 배를 탔다. 조선족 자치구에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나는 부끄러웠다. 나 또한 얼마나 편협하고 편견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는지 새삼 느꼈다. 다섯 번째 배를 탔을 때 내 어깨에는 다른 보따리상들과 비슷한 무게의 짐이 들려 있었다. 소설을 쓴다면 자신들과 똑같이 한번 해봐야지 않겠느냐고 억지로 내게 짐을 들린 한 보따리상 때문이었다. 그들과 함께 곡류를 포장하고 장뇌삼을 숨기면서 진땀이 흘렀다. 세관을 통과하는 한 시간여 동안 나는 십 년은 늙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이렇게까지 해서 소설을 써야하나 의심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내 짐을 싸준 보따리상의 눈을 보았다. 소설책은 평생 딱 두 권을 읽었다는 그 남자가 내 소설을 읽었을 때, 이건 생판 거짓말이라고 한다면 나는 어쩔 것인가. 겁이 더럭 났다. 편견을 버리는 것, 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것,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지 보고 느끼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다.
연길에서 만난 한 여자애가 그랬다. ‘작가’라고 하면 어떤 성과를 이룬 대가를 의미하는 것이다. 가(家)에는 이미 그런 뜻이 내포되어 있다. 스스로 작가라고 소개하는 것은 그러므로 자신을 추켜세우는 것이다. 자신을 소개할 때에는 작가라고 하지 않고 그저 글쓰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겸손한 소개법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작가들은 스스로 작가라고 하면서 특별한 일을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고상하게 앉아서 글을 쓰겠지.
자신의 사고를 타인의 삶을 글로 표현하는데 조금 더 글재주가 있는 사람일뿐이다. 소머리 가르는 사람처럼, 문신을 하는 사람처럼, 비계를 타는 사람처럼, 용접공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쓰자면 장편소설감이라는 많은 사람들의 비루한 이야기들을 대신 써준다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내가 가진 기술이라고는 그것뿐이니까. 그러니 내 소설은 미완이고 현재진행형이다. 나는 다만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내 소설은 그러니까 육식과 초식, 미와 추, 공격과 방어의 경계선에 서 있다. 그리고 나는 그 경계선에서 끊임없이 걷는다. 그러다보면 나중에나중에 그 여자애가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