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9일에서 30일 양일에 걸쳐 이육사, 박용철, 이양하, 이태준, 계용묵, 박화성, 이들 여섯 문학인을 기리는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가 있었다. 민족문학작가회의와 대산문화재단의 주최로 이루어진 이번 문학제는 심포지엄과 문학의 밤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전체적으로 ‘문학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탄생 100주년 문학인들에 대한 추모보다는 축제의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축제적 분위기는 30일 오후 6시부터 금호 리사이틀 홀에서 진행된 ‘문학의 밤’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문학제는 국악실내악단 ‘신모듬’의 연주, 유가족과 함께 하는 문학토크, 대상작가 6인의 작품 낭송, 이육사 시와 이태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시극 공연, 박화성 소설 「한귀」를 원작으로 한 연극 공연, 이양하의 수필 낭송으로 이루어졌는데, 본 심포지엄보다는 뒷풀이적인 성격의 ‘문학의 밤’ 열기가 더 뜨거웠다. 시인, 소설가는 물론, 유족들, 일반인들까지 참석하여 신명나는 축제 한 마당을 펼쳤던 이번 ‘문학의 밤’은 모든 장르와 다양한 사람들이 뒤섞이는 유토피아적 축제의 성격이 강했다. 문학이 문단이라는 특정한 집단 내에서만 자족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이 아닌 바에야, 이번 문학적 축제야말로 ‘어두운 시대의 빛과 꽃’이라는 제목에 걸맞은, 문학 본래의 성격을 그대로 체현한 장이었던 것 같다.
이번 기념문학제의 표제인 ‘어두운 시대의 빛과 꽃’은 이육사에서 박화성에 이르는 여섯 문인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와 이들 문학의 성격을 암시한다. 그것은 바로 ‘어두운 시대’라는 사회정치적 현실 속에서 이들 여섯 문인들의 문학이 그러한 현실과 어떻게 길항 관계를 유지하면서 ‘빛’과 ‘꽃’이 되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이다. 언뜻 이러한 ‘빛’과 ‘꽃’이라는 타이틀에 가장 적합한 작가로 저항시인의 대명사인 이육사, ‘여성’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작품으로만 평가받던 최초의 여성소설가 박화성을 떠올리겠지만, 한국 근현대문학사에서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가의 하나로 평가받는 이태준, 한국 시론의 전통을 확립한 박용철, 수필 문학의 거목 이양하, 우리에게 ｢백치 아다다｣로 잘 알려진 계용묵 등 이들은 모두 한국문학사에서 그 자체로 빛과 향기를 발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문학제는 나름대로 문학사 내에서 일정 정도의 평가를 받아온 이들 여섯 작가의 문학적 행로와 성과를 확인하고 재조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이 주로 활동했던 1930년대의 문학적 지형도 그리기로 이어지게 되었다.
여섯 작가들의 문학적 경향과 성과에 대한 논의는 장르별로 나누어 총 일곱 주제로 이루어졌다. 첫째날은 최동호(고려대), 정호웅(홍익대) 교수의 총론으로 시작되었다. 최동호는 ｢絶命地와 無名火의 길｣에서 언뜻 서로 다른 문학적 길을 걸어간 것처럼 보이는 이육사와 박용철을 같은 문학적 실천의 자장 안에서 다루고 있다. 즉 이육사의 저항시적 지향과 박용철의 순수시 지향을 하나의 문학사적 의미망에 포괄해보고자 한 것이다. 최동호는 그 근거로 이육사의 금강심을 유가적 정명의 시학과, 박용철의 무명화의 시학을 도가와 연결시킨 뒤, 이를 근거로 이들 모두가 민족적 자기완성을 목표로 했음을 확인하고 있다. 이 글에서 특히 관심이 가는 부분은 박용철의 하우스만 수용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최동호는 박용철이 도가적 발상과 논리를 바탕으로 하우스만을 수용했기 때문에 ‘민족어 완성’의 의지를 표명할 수 있었으며, 바로 이를 바탕으로 이상화로부터 시작된 저항시적 전개가 이육사에 이르러 한 극단에 이르게 되었으며, 박용철에 의해 논리화되는 문학사적 동선을 그리게 된다고 했다. 정호웅은 ｢어둠 속에 익은 세계｣에서 이태준, 박화성, 계용묵, 이양하가 구축한 문학적 세계를 간략하게 정리하면서 100년을 견디는 문학의 위력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했다.
총론에 이어 조영복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제 1～3주제는 이육사, 박용철, 이양하에 관한 전면적인 검토로 이루어졌다. 조창환의 ｢이육사 시의 구조와 미학｣은 이육사에 관한 새로운 논의라기보다는 기존의 이육사론을 총괄한 이육사 총론격의 글이다. 그렇다고 기존 논의를 되풀이해서 반복하는 것은 아니다. 이 글에서 주목한 이육사 시의 특징은 바로 ‘상호 대립되는 두 가지 요소들의 충돌’이다. 그에 따르면 이육사는 정형적 형태 구조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서로 대립되는 양극적 이미지의 공존으로 시적 긴장을 유발하여 시의 미적 가치를 추구한다. 아울러 이러한 대립적 이미지의 충돌은 비극성과 낭만성이라는 다소 이질적인 정서의 충돌을 야기시켜 독자들에게 형이상학적 전율을 일으키게 한다고 본다. 따라서 이육사는 단순히 민족 저항시의 맥락에만 닿아 있지만은 않다. 오히려 그는 저항의 정신을 바탕으로 예술성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1930년대 시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이러한 문학사적 관점은 뒤이은 오형엽의 ｢박용철 시론의 현재성｣에서도 이어진다. 이 글에서 오형엽은 1930년대를 ‘전형기’, 즉 프로문학이 퇴조하고 시대의 중심 사상이 모색되는 주조 탐색의 시기로 규정한다. 그는 이 시기에 서구 모더니즘의 수용과 다양한 비평 활동을 통해 현대성에 대한 인식이 이루어졌다고 보고, 그러한 결과 형성된 세 가지 시론의 전개 양상에 주목한다. 그것은 바로 김기림을 중심으로 한 모더니즘 시론, 임화를 중심으로 한 리얼리즘 시론, 박용철을 중심으로 한 낭만주의 시론 혹은 순수 시론이다. 저자는 이 중에서 박용철의 ‘변용의 시론’에서 형성된 유기체적 시론이 이후 한국시사에서 1930년대 후반의 정지용 시론, 1940년대의 조지훈 시론, 1960년대의 김수영 시론, 1980년대 이후의 최동호 시론 등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이룬다고 주장한다.
김윤태의 ｢이양하론｣ 또한 1930년대 중반에 형성된 교양과 취미로서의 수필 문학의 한 가운데서 이양하의 문학사적 위치를 발견한다. 김윤태는 이양하의 수필은 물론 시도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양하의 시에 대해 발표자는 시에 대한 자의식은 엿보이지만 내적 충동의 절박함은 드러나지 않는다고 본다. 따라서 이 글에서도 여전히 강조되는 것은 수필가로서의 이양하다. 1930년대 중반은 수필을 단순히 취미나 교양의 차원이 아니라 문학의 하위 장르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된 시기로서, 이양하는 다른 많은 해외문학파들과 함께 수필의 유행을 주도한 인물이다. 첫날의 주제 발표는 이렇게 문학적 지형도가 지각변동을 일으키던 1930년대 중반에 주목하여 이루어진다. 이러한 1930년대라는 특정 시기에 대한 문학사적 관점은 그 다음날에도 지속된다.
두 번째 날을 연 작가는 바로 이태준이었다. 이병렬의 지적처럼 이태준은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1988년 월납북 작가와 작품에 대한 해금 이후에야 이태준 연구는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벌써 석, 박사 학위논문 111편과 연구 단행본 12권을 포함하여 400여 편이 넘는 연구 성과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국내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작가의 이름을 딴 학회(상허학회)가 있을 만큼 이태준은 많은 국문학 연구자들의 관심과 애정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장영우의 ｢이태준 단편소설의 특질과 의의｣는 ‘한국 근대 단편소설의 완성자’라는 문학사적 평가에 걸맞게 이태준의 단편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글에서 장영우는 각각의 단편 소설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이태준 문학의 중심 토픽들을 추출한 뒤, 그에 관해 의미를 부여하는 식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이병렬의 ｢이태준 문학 연구, 그 성과와 한계｣는 지금까지의 이태준 연구를 정리함으로써 이태준 문학 연구의 성과와 한계를 지적하고 있는데, 이 글은 이러한 연구 테마가 가능할 만큼 이태준 연구가 일정 수준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암시한다. 이 두 편의 글은 이태준 문학에 대한 새로운 문제제기를 시도하지는 않고 있지만 이태준 문학 연구의 현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이태준 문학 연구의 ‘성과와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발표문 뒤에 붙은 ‘이태준 관련 논저 목록’은 이태준이라는 문학적 거봉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의 성과를 넘어서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김경수의 ｢식민지 시대 소설의 아마추어리즘｣은 이번 문학제에서 가장 논쟁적인 토론을 이끌어낸 발표문이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김경수는 계용묵의 단편을 대상으로 식민지 시대 문학적 나르시시즘의 한 국면을 지적한다. 그는 계용묵이 문학적 활동의 전 시기를 거쳐 자신만의 고유한 토픽을 발견하지 못한 채 다른 작가들의 아류로 머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식민지 문학 전반에서 드러나는 아마추어리즘에서 찾고 있다. 그것은 현실을 괄호친 채 언어로 구축되는 가상의 세계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현실도피적 심리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계용묵 문학만의 한계라기보다는 1930년대 문학의 특징적 국면의 하나로까지 논의를 확장한다. 이 글이 논쟁적인 이유는 그것이 기념문학제의 대상 작가를 비판적으로 다루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1930년대 문학에 대한 문학사적 관점의 차이 때문이다. 토론을 맡은 이경훈(연세대 교수)은 계용묵 소설에서 자주 엿보이는 세태풍속적이고 박물지적 모습을 적극적으로 평가하자고 제안하는데, 이는 소설적 성과가 불투명한 작가를 문학사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의 관점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김경수가 계용묵 소설에 대해 패러다임적 위상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문학사적으로 평가해줄 수 없다고 보는 반면, 이경훈은 비록 문학사적으로는 평가받지 못하는 작가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작가들의 작품 또한 그 당시의 풍속을 알려주는 박물지로서의 역할만큼은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결국 최근의 문학 연구의 경향에 대한 견해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풍속사에 종속된 문학 연구냐 아니면 풍속을 통한 문학 연구 범위의 확장이냐는 문제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김경수의 발표가 흥미로웠던 것은 특히 지정된 토론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계용묵 소설을 옹호했던 민충환(부천대 교수)의 논쟁적 질문들 때문이었다. 민충환은 계용묵 작품 전집 출간 담당자로서, 이러한 전집 출간을 계기로 계용묵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미현의 ｢박화성 소설 속의 ‘Shadow Feminism’｣은 박화성 소설의 중심테마인 민족, 계급, 성의 문제가 어떻게 서로 겹쳐지면서도 서로 배제적인 모순과 균열의 관계망을 맺고 있는가에 주목하였다. 제목에서 보이는 ‘Shadow Feminism’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여성작가 박화성의 균열적인 모습을 잘 드러내준다. 즉 소위 남성적인 테마를 다룸으로써 여성작가로서는 거의 처음으로 작품으로만 평가받던 박화성이 같은 이유로 ‘여성 호르몬이 결핍된 남성성의 작가’라는 비난을 받았다는 사실은, 여성작가 박화성이 처한 균열적 상황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박화성은 1932년 ������동아일보������에 여성작가로는 최초로 장편소설 ������백화������를 연재하면서 작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았는데, 이 때문에 박화성은 남성적인 작가로 규정되기도 했지만 여성작가로서는 거의 최초로 그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한다. 김미현은 박화성의 이러한 균열적이고 양가적인 모습을 박화성 소설의 중층적인 면모에 접근함으로써 드러내는데, 특히 동시대 다른 작가들과의 비교를 통해 문학사적 평가까지 시도하고 있다.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박화성을 통해 여성문학이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박화성은 여성문학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발표자는 박화성 이후에야 비로소 최정희, 이선희, 장덕조, 강경애, 백신애 등의 여성작가들이 등장했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1930년대 여성문학이 꽃을 피웠다는 점에서, 박화성은 문학사적으로, 특히 여성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작가라고 본다. 토론자는 ‘Shadow’라는 용어의 가치 평가와 관련하여 여성작가로서의 박화성의 위상에 대해 질문한다. 즉 남성적 관념의 세계에 투항함으로써 비로소 여성작가로 인정받았던 박화성이 과연 여성문학적 관점에서 얼마만큼 평가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이 함의하는 것은 아마도 남성 중심적 문단 내에서 성립된 여성문학의 한계에 대한 지적이자 그러한 한계를 뚫고 나갈 새로운 평가의 기준에 대한 요구일 것이다.
최동호는 총론에서 1904년에 ‘경부철도’가 완공되어 새로운 교통론적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한 원년이 된 것처럼, 2004년에는 고속철도가 완공됨으로써 새로운 차원에서 신물류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의 전환의 소용돌이에 탄생한 이들 여섯 작가들이 이러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었는가는 단지 문학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삶 전반의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1930년대에 이루어낸 이들의 문학적 성과는 1930년대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오늘날 2004년을 사는 우리의 삶과 연관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0세기를 지나 21세기로 들어선 시점에서 100년 전에 탄생한 작가들에 대한 논의가 유의미한 것은 바로 그들의 문학과 삶이 오늘의 우리를 되비쳐주는 거울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