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백여 년 전인 1707년 4월 성호 이익(1681～1763)은 관악산을 올랐다. 그는 어릴 때 병약하여 밖으로 나가 스승에게 배우지 못하고 형에게서 글을 배웠다. 과거에 응시하여 벼슬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품고 열심히 공부하였지만, 26세 때 스승이자 형인 이잠(李潛)이 장희빈(張禧嬪)을 두둔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국문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이에 성호는 벼슬길을 단념하고 학문에 정진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하여 산행을 나섰다. 삼각산(三角山)을 둘러보고 내려와 발걸음을 남으로 돌려 관악산에 이르게 된 것이다. 연주대(戀主臺)에 오른 뒤 성호는 이렇게 글을 지었다.
이 해 4월 갑자일(甲子日)에 삼각산에서 길을 돌려 관악산으로 들어갔다. 어른, 아이 몇과 동강(東崗)을 경유하여 불성암(佛成庵)에 도착하였다. 노승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승려가 말하였다.
“산에는 영주대(靈珠臺)가 있는데 실로 가장 높은 봉우리지요. 산의 빼어남이 이곳보다 나은 곳은 없답니다. 다음은 자하동(紫霞洞)인데, 자하동이라고 이름한 곳은 넷이지요. 불성암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곳을 남자하(南紫霞)라 하고, 남쪽에서 서쪽으로 돌아 들어가는 곳이 서자하(西紫霞)인데 모두 일컬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영주대 북쪽이 북자하(北紫霞)인데 자못 깔끔하기는 하지만, 동자하(東紫霞)의 기이한 볼거리보다는 못하지요. 못도 있고 폭포도 있어 영주대에 버금갑니다. 나머지 사찰이나 봉우리 중에도 종종 볼 만한 것이 있습니다.”
내가 이에 느지막이 서쪽 바위에 올라 일몰을 보고 암자에서 잤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북쪽으로 올라갔다. 봉우리로는 용각봉(龍角峯)도 있고 비호봉(飛虎峯)도 있으며, 바위로는 문암(門巖)도 있고 옹암(甕巖)도 있었다. 모두 보고 지나가서 의상봉(義上峯)에 도착하였다. 곧 예전 의상대사(義上大師)가 머물던 곳이다.
관악사(冠岳寺)와 원각사(圓覺寺) 두 절터를 지나 영주대 아래에 이르렀다. 영주암 터에서 쉬었다가 마침내 영주대에 올랐다. 바위를 깎아 돌계단을 만들었는데, 바위틈을 따라 사람이 올라가게 되어 있다. 바위를 잡고 기어 점점 올라가서, 빙 돌아 영주대에 이르렀다. 영주대 꼭대기는 3면이 훤히 바라다 보인다. 서쪽은 깎아지른 절벽이 서 있는데, 절벽에 불상을 새기고 다시 바위로 처마를 만들어 보호하였다. 바위에 의지하여 단을 쌓았는데, 돌을 포개고 흙으로 메워 1백여 사람 정도 앉을 수 있다. 바위 끝에 또 구멍을 파서 등불을 넣어두는 곳으로 만들었다. 도성 안에서도 그 빛이 보이도록 한 것이다. 아마도 개국 초 불교를 숭상할 때 일인 듯하다. 다시 차일봉(遮日峯)을 넘어 북자하를 내려다보고 동자하를 지나 폭포를 보고 돌아왔다.
명산을 유람하고 쓴 글치고 이보다 짧은 것은 많지 않다. 산중에서 느낀 회포조차 말하지 않고 있었던 사실만 적었다. 뼈만 앙상한 글이다. 이러한 글의 연원은 미수(眉叟) 허목(許穆)에게 있다. 고학(古學)을 지향한 미수의 글은 그 글씨만큼이나 바짝 말라 있다. 성호는 관악산을 오르면서 허목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분명 미수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의 형 섬계(剡溪) 이잠(李潛)이 장희빈을 두둔한 것은 남인(南人)으로서의 정치색을 드러낸 것이거니와, 성호는 퇴계(退溪)와 미수로 이어지는 남인의 학문을 정통으로 계승한 사람이다. 미수는 여든 셋에 연주대에 올랐는데, 발걸음이 나는 듯하여 사람들이 신선처럼 바라보았다고 한다. 성호가 관악산을 오른 것은 미수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관악산을 내려온 성호는 안동으로 향하여 퇴계의 넋과 자취가 서린 도산서원(陶山書院)과 청량산(淸凉山)을 찾았다. 학통을 거슬러 여행을 한 것이다. 훗날 성호의 학문을 계승한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 역시 관악산에 올라 다시 직접 만나지 못한 스승의 마음을 찾고자 하였다. 미수가 여든 셋에 오른 그 산을, 번암은 예순 일곱의 나이에 오르면서 자신도 옛 스승처럼 그 나이에 관악산을 다시 오를 것을 염원하였지만, 그러나 하늘은 번암에게 그때까지 수명을 연장시켜주지는 않았다.
다시 성호가 갔던 산길을 올라보자. 성호가 하루를 유숙한 불성암은, 안양쪽에 있는 삼성산(三聖山)에서 연주대로 가는 주능선인 학바위 능선 아래쪽에 있는 팔봉능선 아래에 있다. 과천 제2종합청사 옆, 공업진흥청 옆길로 2시간 남짓 땀을 흘리면서 올라가야 하는 곳이다. 옛 지도에도 비슷한 위치에 표시되어 있다. 이로 보아 아마도 성호는 신림동이나 안양 쪽에서 관악산을 오른 듯하다. 성호는 용각봉(龍角峯), 비호봉(飛虎峯), 문암(門巖), 옹암(甕巖), 의상봉(義上峯), 관악사(冠岳寺), 원각사(圓覺寺)를 경유하여 연주암에 이르렀다. 연주대 아래 연주암 터라 하는 것이 오늘날 거창하게 세워놓은 연주암이리라. 그리고 이곳에서 다시 한번 땀을 흘려 연주대에 이르렀다. 성호가 기록해 둔 있는 연주대의 모습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성호가 경유하였던 용각봉이나 비호봉, 문암, 옹암, 의상봉이 지금의 어느 곳을 가리키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삼성산에서 관악산으로 뻗어가는 능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관악사와 원각사도 지금 남아 있지 않아 그 위치를 말하기는 쉽지 않다. 19세기 후반 『과천읍지(果川邑誌)』에는 과천 관아 북쪽 10리, 관악산 북록에 관음사가 있고 원각사는 과천 서쪽 10리에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14세기를 전후한 어느 시기 변계량(卞季良)이 관악사에 올라 지은 시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실려 있다. 그리고 같은 관악사에서 지은 글로, 관악산에 대한 최초의 기문인 성간(成侃)의 「유북암기(遊北岩記)」를 수록하였다. 성간은 더위를 피하여 관악사로 갔다. 당시 길이 없어 아무도 가지 못하던 북쪽 바위에 올랐는데 바위가 건물의 천장처럼 되어 있고 그 아래는 천 길 절벽이었다고 한다. 북암은 곧 연주대로 추정되고 관악사는 오늘날의 연주암일 가능성이 높다. 성간의 아우 성현(成俔)은 「관악산에 올라 영주임에서(登冠岳山到靈珠菴)」라는 장편의 시를 지었다. 그에 따르면 산마루 바위틈에 암자가 허공에 걸린 듯 붙어 있는데 화려하게 단청이 되어 있고 그 가운데 불상처럼 생긴 석상을 안치해 두었다고 하였다. 영주암은 오늘날 연주대의 암자로 추정된다. 원래 연주대에 있던 관악사를 양녕대군이 오늘날 연주암 위치로 옮겼다는 설도 있으나, 기록에서 확인되지는 않는다.
성호는 연주대 서쪽에 있는 차일암 위 능선에 올라 북자하동을 내려다보고 다시 동자하동으로 내려왔다. 북자하동은 서울대학교에서 신림동으로 이어지는 계곡으로, 윤두수(尹斗壽)와 그 손자 윤신지(尹新之)가 초가집을 짓고 산수를 사랑하면서 살던 곳이다. 또 자하(紫霞)라는 호를 차지하였던 신위(申緯) 집안의 전장도 그곳에 있었다. 남자하동은 삼성산(三聖山) 아래 오늘날 안양쪽 계곡을 이르는데, 채제공의 족조(族祖)인 채유후(蔡裕後)가 집을 짓고 살았다. 동자하동은 오늘날 과천 쪽이리라. 폭포와 못을 보았다고 하였는데, 오늘날 관악산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은 과천 쪽의 계곡뿐이니, 아마도 이곳을 가리키는 듯하다.
영주대(靈珠臺)는 염주대(念主臺)라고도 하였는데 조선 후기에 와서야 연주대라는 명칭이 일반화되었다. 채제공의 글에 따르면, 차일암은 양녕대군(讓寧大君)의 이야기가 서려 있는 곳이다. 양녕대군은 아우 충녕대군(忠寧大君)에게 왕위를 물려주어 성군 세종이 되도록 한 인물이다. 동궁의 자리를 양보한 양녕대군은 관악산에 올라와 살았다. 그러나 늘 대궐이 그리워 바위 위에서 북쪽을 바라보았다. 햇살이 뜨거워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어 바위 귀퉁이에 구멍을 파고 장막을 쳤다. 그래서 차일암이 되었고 임금을 그리워한다는 뜻에서 연주대(戀主臺)가 되었다. 바위 귀퉁이에 차일의 기둥을 박았던 구멍도 18세기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연주대의 전설이 이와 다르게 설명된 데도 있다. 노론의 적통을 이은 홍직필(洪直弼)은 19세기 중엽 관악산에 올라 연주대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고려의 유신(遺臣)으로 남았던 남을진(南乙珍), 조견(趙狷), 서견(徐甄) 세 현자가 세상을 피하여 스스로를 바르게 하기 위하여 머리를 깎고 산으로 들어와 관악산(삼성산)에 삼막사(三幕寺)를 짓고 개성의 곡령(鵠嶺)을 바라보면서 대성통곡하였기에 연주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후대 불가(佛家)의 말을 빌려 삼막사를 삼막사(三藐寺)로, 연주대를 영주대(影炷臺)로 바꾸었다고 하였다. ‘삼막(三藐)’은 ‘삼막삼보리(三藐三菩提)’의 줄임말로, 미혹(迷惑)에서 벗어나 일체의 법을 깨닫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영주(影炷)는 성호가 등불을 넣어두던 곳이라 설명한 것과 어느 정도 합치한다. 다만 삼성산의 세 성자(三聖)가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홍직필은 남을진, 조견, 서견이라 하였지만, 1899년경에 편찬된 『시흥읍지(始興邑誌)』에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무학(無學), 나옹(懶翁) 등의 승려를 가리키는 것이라 하였다.
조선 시대 관악산은 소금강(小金剛)으로 일컬어지던 아름다운 곳이었고, 산천의 제사를 올리던 신성한 공간이었다. 인적이 드물었기에 죄를 짓고 도망쳐 들어간 도적들이 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주말이면 지금의 관악산(冠岳山)은 사람들의 물결로 가득 찬다. 사람들의 행렬만 관악산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관악산 북쪽은 서울대학교가 파먹었고 남쪽은 제2정부청사가 산자락을 잘랐다. 그 나머지는 군부대가 들어서 철통 같이 경비하고 있고, 그렇지 않으면 신작로가 닦여 휑하니 팔다리가 잘렸다. 하기야 어느 산인들 이런 상처를 안고 있지 않으랴. 그 옛날 연주대에서 북쪽을 바라본 이가 누구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연주대가 도성을 그리워한 데서 유래한 명칭임은 것은 분명하다. 옛사람은 연주대에서 도성을 그리워하면서 세상의 먼지를 관악산으로 옮기지 않았지만, 현대인은 도성을 잊기 위해 관악산 연주대를 오르면서, 도성의 온갖 잡것들을 실어다 나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