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 글’이 엄청나게 돌아다니는 세상이다. 적어도 인터넷에서는 그렇다. 그것들 중 상당수는 행복과 관련된 것들인데, 그런 글들을 읽으며 기분 좋은 하루를 여는 사람들 또한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좋은 기운이 세상의 도처로 전파되는 것이야 말 할 나위 없이 좋은 일임에 틀림이 없을 테니 세상에 대해 다시 한 번 희망을 가져 봐도 될 듯 하다. 그 어떤 것을 통해서라도 그들은 행복해질 권리가 있고, 그 날 분량의 행복을 부러 찾아내야 할 만큼 일상 또한 고되고 지루하니 행복이 전파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지 않은가. 하지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제공하기 위해 작성되었을 ‘퍼온 글’을 볼 때마다 클릭하기가 머뭇거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10대 자녀가 반항을 하면 그건 아이가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고 집에 잘 있다는 것이고 / 지불해야 할 세금이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직장이 있다는 것이고 (중략) 정부에 대한 불평불만의 소리가 많이 들리면 그건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고 / 주차장 맨 끝 먼 곳에 겨우 자리가 하나 있다면 그건 내가 걸을 수 있는 데다 차도 있다는 것이고 / 교회에서 뒷자리 아줌마의 엉터리 성가가 영 거슬린다면 그건 내가 들을 수 있다는 것이고 / 온 몸이 뻐근하고 피로하다면 그건 내가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고 / 이른 새벽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깼다면 그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고 그리고……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어느 게시판에서 발견한 글이다. 물론 누군가가 다른 곳에서 퍼온 글이라고 한다. 퍽퍽한 일상이지만 소소한 행복들에 감사하며 살아가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고, 이 글을 옮긴 사람 역시 그에 수긍하고 있다는 것 같다. 별 생각 없이 스쳐 보내곤 했던 것들도 마음을 열고 들여다보면 본연의 미덕이 있게 마련이니 이를 잘 살펴 기쁨으로 삼자는 것은 발상 자체로만 보면 매우 근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동기의 선함과는 별개로 상황의 적절성 여부와 관련하여 행복감 혹은 행복을 찾는 지혜를 제공하고 있는 위의 발췌문이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다시 한 번 재고될 필요가 있다.
10대 자녀가 반항을 하는 것은 아이가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고 집에 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여전히 대화와 이해가 부족하다는 얘기고, 저러다가 얼마 안 가서 아이가 집을 뛰쳐나갈 가능성도 농후하다는 얘기다. 지불해야 할 세금이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직장이 있다는 것이기는 하지만, 자발적 실업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원하는 시기에 직장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사회여야 함에도 직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대단한 수혜로 느껴지는 사회라는 것을 말한다.
그것뿐인가. 정부에 대한 불평, 불만의 소리가 많이 들리면 그건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여전히 정부가 불평과 불만을 들어야 할 정도로 부실한 국정운영을 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전히 건강하지 않은 정부의 방만한 행정에 대해 계속해서 개혁을 요구할 궁리를 할 일이지, 당연히 주어져야 할 언론의 자유를 행복해 할 일이 아니다. 주차장 맨 끝 먼 곳에 겨우 자리가 하나 있다면 그건 내가 차도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 할 것이 아니고, 충분히 공들여 주차난을 해소해야 함에도 그리 하지 않는 정책결정자들의 무관심과 무능을 탓해야 할 일이다. 교회에서 뒷자리 아줌마의 엉터리 성가가 영 거슬린다면 내가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하기보다는 내 성격이 좀 더 관대하지 못함을 반성해야 할 일이다. 아줌마는 종교 활동을 하기 위해 교회를 찾은 것이지 노래솜씨를 겨루기 위해 교회를 찾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온몸이 뻐근하고 피로하다면 그건 내가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고, 이른 새벽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깼다면 그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적정 수준 이상의 노동을 강요당하는 상황에서까지 행복감을 찾아내야 하는 것은 온당치 않고 또한 아침도 아닌 이른 새벽에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깨야하는 일상도 정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정상량 이상으로 많은 일을 하고, 정상적이지 않은 일과에 따라가고 있는 것에 대해서까지 만족의 이유를 찾으려는 노력은 한편으로 무모해보이기까지 한다.
당연한 권리를 특별한 혜택으로 둔갑시키고, 독자의 사회 참여 의지를 미약하게나마 둔화시킬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위 글은 그 순수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많은 비판거리를 안고 있다. 물론 위 글은 일상에서 마주치게 되는 무수한 글들 중 하나일 뿐이고 장엄한 이데올로기적 담론에 휘말려 질타를 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 다만 무의식 중에 독자들의 현실 인식을 오도할 수 있는 성격의 글들이 인터넷상에서 무차별적으로 유포되기도 하고, 자가 번식되기도 하는 현실은 바람직하지 않으니 이를 조금씩이라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선해보자는 것이다. 개인 생활만 하기에도 분주하여 이면의 불온한 의식을 미처 알아볼 새도 없이 저런 글들을 어디론가 열심히 퍼 나르고 있을 순박한 사람들을 이제는 더 이상 사회지배논리를 위해 희생시키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가급적 많은 사람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최루의 메커니즘이 인터넷을 지배하지 않도록 감시와 경계의 더듬이를 바짝 세우고 있을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