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들 중에서도 고참 교장이었다. 그가 가장 비열했다. 그를 어이, 문군, 이라고 부르고, 업자를 바꿔야겠다고 으름장을 논 다음, 거, 엽총이 하나 있는데, 공기총 말이야, 하고 반말로 뇌물 상납을 강요했던 자가 표변하여, 그를 문 선생이라고 부르고, 교장이 그를 돕는 것이 아니라 그가 교장을 돕는다고 입이 거랭이만하게 찢어져서 말했다. 그가 웃는 일은 드문 일이었다. 그는 아랫사람들 앞에서는 절대로 웃지 않았다. 그의 원래 검은 얼굴은 항상 찡그린 우거지상이었다. 그가 말을 할 때는 그의 입에서 침이 튀고 목에 핏대가 섰다. 그는 조용조용 말할 줄을 몰랐다. 그는 항상 고함을 질렀다. 교장이 되기 전에도 그랬다. 태생이었다.
- 서정인 『베네치아에서 만난 사람』
창틀에 동그라니 올라앉은 그는, 등을 한껏 꼬부리고 무릎을 세운 자세 때문에 어린아이처럼, 혹은 늙은 꼽추처럼 보인다. 어쩌면 표면장력으로 동그랗게 오므리는 한 방울의 수은을 연상시켜 그 자세의 중량으로 도르르 미끄러져 내리지나 않을까 하는 아찔한 의구심을 갖게도 한다. 그러나 창에는 철창이 둘려 있기 때문에 나는 마치 렌즈의 핀을 맞출 때처럼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냉정한 눈으로 그를 살필 수 있다.
그의 살갗 밑을 흐르는 혈액 속에는 표면장력이 있어 그는 늘 그렇게 자신의 표면적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염원으로 잔뜩 웅크린 채 조심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미안합니다, 아주 죄송스럽군요, 하는 듯한 웃음을 언제든 필요할 때 즉시 내보낼 수 있도록 입 안쪽 어디쯤에 고여두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 오정희 「불의 강」
그러자 내가 내팽개쳐버린 그 별들은 어느새 내 얼굴로 가득히 내려와서는, 저마다 추하고 흉한 여드름으로 끝없이 돋아나고 곪아터지기를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그 더럽고 고약하기 그지없는 별들의 누런 시체들을 날마다 손가락으로 눌러 짜내면서, 나는 내 어린 시절의 유치한 신앙과 할머니의 ‘별 이야기’를 생각하며 코웃음을 쳤다. 누런 콧물이 늘상 딜릉거리던 자리엔 차차 거뭇거뭇 수염뿌리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사타구니 사이로는 몰라보게 통통히 여문 옥수수가 수염까지 멋들어지게 드리웠다. 그것들은 내가 어른이 되었음을 증명해 주는 가장 확실한 신분증이었고, 어린 시절의 별 대신에 그 신분증을 훈장처럼 붙인 채 나는 은하수보다도 더 휘황하고 눈부시게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 속을 정신없이 방황하기 시작했다.
- 임철우 『그 섬에 가고 싶다』
편집자 주_동덕여대 조병무 교수는 한국 소설에서 등장하는 각종 대상과 행위 묘사를 ‘사랑과 성’, ‘인물’, ‘무대·장소’, ‘직업·집회’, ‘자연·서정’ 등 유형별로 분류해 총 6권의 『소설 묘사 사전』을 펴냈다. 위 인용문은 이 책에서 발췌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