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학생 Foreign Student』(1998)으로 미국문단의 주목을 한몸에 받으며 등단한 수잔 초이(Susan Choi, 1967～ )는 또래인 이창래(Lee Chang Rae, 1965～ )나 노라 옥자 켈러(Nora Okja Keller) 등과 함께 유망한 제 2세대 한국계 미국작가이다. 이곳 독자에게는 최재서(崔載瑞, 1908～1964)의 손녀로 더 많이 기억되는 그녀는 현재 뉴욕에 거주하면서『뉴요커 The New Yorker』의 ‘전문작가 staff writer’로 활동하고 있다. 러시아 유태인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스스로를 유태계로 생각하는 듯한데, 그런 그녀가 나머지 반쪽인 한국계라는 사실을 얼마나 의식하고 있는지는 확언하기 힘들다. 하지만 수잔 초이 자신의 민족적․인종적 의식 자체가 중요하달 수는 없을 것 같다. 미국의 다인종․다민족 현실을 떠나서도 세계화 시대가 하나의 엄연한 대세를 이룬 지금 혈연이나 인종의 관점으로 작가를 판단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반면에 한국의 독자 입장에서 수잔 초이 같은 작가에 관심을 갖는 동기는 역시 그녀가 한국계이기 때문임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이나 러시아, 미국 등에 거주하는 교포 작가들에 대한 우리의 애정은 당연한데, 그중에서도 수잔 초이는 우리의 각별한 시선을 끄는 바가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그녀의 작품 세계가 이민문학의 ‘전형적인’ 주제인 정체성 문제에서 멀찌감치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같은 벗어남이 뿌리의 존재에 대한 망각을 뜻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외국인 학생』에서 훌륭하게 형상화했듯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보편적인 물음을 1950년대에 각각 한국인과 미국인으로서 실존적․역사적 아픔과 상처를 안고 있는 안 창과 캐서린이 어렵사리 모색하는 사랑을 통해 삶 자체에 대한 개인의 참여의식으로 전화(轉化)시킨다는 점에서 뿌리에 대한 작가의 탐구가 민족주의․인종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함께 심화되는 것이다. 안 창이 온몸으로 증언하는 한국동란의 참상과 캐서린이 휩쓸린 미국 남부 테네시 주의 공허한 중산계급적 삶이 교직되는 이 작품에 감상적인 또는 설익은 민족․인종의식이 들어설 여지가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수잔 초이는 『외국인 학생』에 이어 작년에 두 번째 장편 『미국 여자 American Woman』를 펴냈다, 1974년에 일어난 샌프란시스코 신문재벌의 딸인 패티 허스트(Patty Hearst) 납치 사건을 소재로 삼은 이 작품도 전작(前作)과는 또 다른 맥락에서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납치자들의 혁명적 이념에 동조하게 되는 허스트(작중 이름은 Pauline)와 그런 그녀의 ‘동기’를 파고드는 제니 시마다(Jenny Shimada)라는 일본계 미국 여성 및 그 주변의 혁명분자들을 통해 1970년대 미국 급진주의의 정치적 이념과 도덕적 신념의 어둡고도 파괴적인 심연을 ― 한 서평자의 표현을 빌리면, 시적 고고학자(poetic archaeologist)의 손길로 ― 탐사하는 이 작품은 80년 5월 광주의 처참한 비극으로 변혁의 80년대를 시작하여 민주주의의 험난한 도정에 있는 우리에게도 착잡한 상념을 안겨준다. 단순히 한국계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이 아니라 거기서 드러난, 60～70년대 미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열망에 대한 심층적 분석이기에 이곳 독자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한국 민주주의의 끈질긴 싸움마저 연상하게 된다는 말이다.
한국계 미국작가들의 작품을 동포의 애정으로써 읽고 또 주위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일은 한국의 독자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구화시대의 절박한 문제를 대국적으로 다루는 수잔 초이의 (앞으로의) 작업에 큰 기대를 거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한국인이거나 동포의 애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