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의 창립자이며 대산문화재단을 설립한 대산(大山) 신용호 선생의 평전이 최근 출간되어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때마침 같은 시기에 그 분의 유족들이 사상 최고액의 상속세를 신고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신고액은 1천3백38억 원으로 그 전까지 최고 납부액인 1천60억 원을 크게 웃돌았으며 상속재산인 3천억 원에 대한 과세액으로 높은 세율이어서 더욱 화제가 되었다. 과거에 수십조대의 엄청난 재산을 남기고 타계했던 S그룹이 고작 70여억 원, H그룹이 또한 3백억 원의 상속세를 납부한데 비하여 교보생명의 상속세 신고는 누가 보더라도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대산의 유족들이 신고한 상속세 내역에는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쉽게 말하면 법대로 하면 그렇게 신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법대로’라는 말이 주는 함축이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그러면 그 분보다 월등하게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던 다른 재벌들의 후손이 납부한 상속세는 ‘법대로’ 안되었다는 말인가. 본인은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그들도 분명 ‘법대로’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법을 적용하더라도 이리저리 감세 요령을 부리면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는 것이 현행 세법 체계이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대산의 유가족들은 그런 요령을 빤히 알면서도 곧이곧대로 현행법에 충실하게 신고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결정을 하기까지 여러 가지로 고심했겠지만 결국 고인의 뜻을 받들어, 지금까지 50년 가까이 교보생명을 이끌어 온 그 분의 경영철학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그와 같은 납세 신고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평전을 보면 사상 최대의 상속세를 신고하게 된 내력을 일목요연하게 알게 된다.
평전 제목은 ‘대산 신용호’로 되어 있고 부제로 ‘맨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고’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말은 그 분이 남긴 수많은 어록 가운데 초창기 어려웠던 시절부터 자주 거론하였고 대성한 이후에도 임직원들에게 수없이 되풀이하였던 문구이며 그 분의 일생을 상징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지난 4월, 검찰 조사를 받던 P모 지사가 한강에 투신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가 남긴 일기장에 “교보생명에 근무할 때 신용호 창립자로부터 ‘사업을 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차례 한강다리 난간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공직을 맡고 보니 그 말씀이 실감난다”는 요지의 글이 실려 있었다는 보도를 보았다(P 지사는 교보생명에 사원으로 입사하여 임원까지 지낸 바 있다).
대산은 그만큼 50년 가까운 기간에 교보생명을 키우고 가꾸는 일에 전념해 왔지만 그가 겪고 당했던 고난의 역경은 ‘맨손가락……’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평전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쉽게 느끼게 된다.
전남 영암에서 태어난 그 분은 일곱 살 때 폐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가 학교 문턱도 가보지 못했다. 여섯 형제 가운데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형님이 있는 것을 보면 학교를 가지 못한 이유가 결코 가세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가 병상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적령기를 넘어 학교 생활을 할 수 없었고 동생의 교과서를 빌어 독학으로 중학 과정을 마치게 되었으며 열아홉의 나이에 혼자 중국으로 건너가 10년 동안 모험적인 삶을 살다가 또 다시 무일푼으로 귀국하였고 1950년도 하반기에 교보생명의 전신인 대한교육보험을 창립하게 된다.
창립 당시에 그가 독창적으로 개발한 ‘교육보험’이 보험의 불모지나 마찬가지였던 시절이어서 성공할 확률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문자 그대로 “맨손으로 생나무를 뚫는다”는 비장한 각오와 결의로 험난한 가시밭길을 헤쳐나오는 데 성공한다.
사업 초기에 잠을 쫓기 위해 일부러 군불을 때지 않아 꽁꽁 어는 추위 속에서 덜덜 떨며 서류를 뒤적이던 일, 사업 부진으로 수렁에 빠졌을 때 주윗분들의 외면과 직원들마저 하나둘씩 떠나는 사태가 벌어졌던 일, 77세에 암 선고를 받고도 굴하지 않고 끈질긴 인내와 초인적인 노력으로 이를 극복했던 일, 사업에 성공하고서도 정치자금 등 부정한 돈거래를 일체 거부하고 투명경영, 정도경영으로 ‘법대로’의 경영에 모범을 보였던 일 등, 그의 독특한 고난 극복의 역사는 오늘날 여러 대학에서 강의 자료로 많이 쓰이고 있다. 그 분의 별세 후 1년도 안되어 이 책이 출간되게 된 것은 칼럼니스트인 이규태 선생의 대표 집필, 그리고 기업문화팀 서종원 팀장의 편집과 재구성을 위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무학에서 무일푼으로 오늘의 교보생명이라는 거목을 키워낸 작은 거인 대산 신용호의 평전은 우리나라 기업인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입지전적 인물을 생생하게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어른들뿐 아니라 우리의 젊은이와 어린이들에게도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