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조구호_번역가, 증산도사상연구소 번역실 연구위원. 1961년생. 역서 『백년의 고독』 『사랑의 모험』 『항해지도』 등
인류 탄생 이래 ‘최선의 교육학’을 모색하는 작업이 온갖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건만, 모든 이가 동의하는 속시원한 해결책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스페인 최고의 철학자이자 문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미겔 데 우나무노 또한 『사랑과 교육』이라는 소설을 통해 이에 대한 해답 한 가지를 제시하려 시도하고 있다.
실증주의적 세계관에 빠진 인물(‘인류의 최종 목표는 과학이다’, ‘수학과 역사는 두 가지 기본 축이다’고 주장하는) 아비토 카라스칼은 교육을 통해 천재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으로 완벽한 준비를 통해 아들을 낳아 과학적인 실험의 대상으로 삼는다. 하지만 아들 아폴로도로는 성장해 가면서 삶의 주체성을 인식하게 됨으로써 아버지, 스승 풀헨시오와 번번이 충돌을 일으키는 등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번민을 거듭하다가 이성에 대한 사랑마저 실패로 끝나자 결국 자살하고 만다.
작가는 순전히 과학적인 교육만을 통해서도 천재를 양산해 낼 수 있다고 믿는 실증주의자들의 교육관, 즉 ‘사랑 없는 교육’이 지닌 문제에 관한 철학적 메시지를 소설 형식을 빌려 전하고 있다. 따라서, 『사랑과 교육』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고도의 상상력, 실험적 양식, 정치한 은유 같은, 순수 문학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작가의 철학적 관점이 반영된 작중 인물의 내면을 그리는 데 유용한 언어적 유희와 관념적인 서술, 사변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진 내적 독백 같은 것이다.
이렇듯 한국의 독자들에게 생소하다면 생소할 수 있는 소위 ‘철학책 같은 소설’을 제대로 번역하는 문제는 그리 녹녹하지 않았을 테다. 하지만 번역자는 다양한 철학적 관점들, 그 관점들을 정의하는 용어들, 의식의 흐름을 통해 표출되는 내적 독백들, 특정 사안을 전개시키는 특유의 논리 등을 심도 있게 관찰해 정성 들여 선별하고 깔끔하게 다듬어 놓았다. 물론, 번역의 편의를 추구하고, 독자를 배려하기 위해서인 듯 몇 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기도 하다. ‘원문과 번역문 사이의 차이는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번역자 각자의 견해에 따라 밑도 끝도 없는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점은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문장을 다듬는 과정에서 지루할 정도로 긴 원문을 읽기 편하게 적당히 잘라 놓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나무노 특유의 사변적 정신세계와 비비꼬는 듯한 논리 전개법을 ‘단순화’시킴으로써 원문이 지니고 있는 맛이 상당 부분 사라져 버렸다. 이와 유사한 문제가 또 발생하고 있는데, 몇 가지 철학 용어의 경우 번역자의 자의적 해석이 가미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학교에선 아이에게 신이 자신의 모습을 본떠 인간을 만들었다는 동형동성설 따위를 가르칠 텐데……’라는 문장에서 ‘신이 자신의 모습을 본떠 인간을 만들었다’는 말은 역자가 ‘동형동성설’에 관해 무지하리라 예상되는 일부 독자들의 사전 찾는 번거로움을 해소시켜 주기 위해 잠시 작가의 역할을 맡겠다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문장에 끼어들게 된 경우다. 물론, 이 문장에서 독자가 ‘번역자의 친절’을 알아채기도 어렵고, 또 각주를 통해 해설한다는 것은 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성상 애써 피하고 싶은 문제로, 거의 모든 번역자들이 자주 맞닥뜨리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몇 가지 점들이 책의 가치나 번역의 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소위 ‘은행예금식 교육’을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한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와 마찬가지로, 더 아름답고, 더 평등하고, 각자의 개성이 존중받는, 더 인간적인 세상을 꿈꾸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책이다. 역자가 번역 후기에 밝힌 바처럼,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참교육’ 문제는 평균 교육 수준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자타가 공인하지만 정작 창의력이나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 등은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인간, 세칭 ‘무늬만 천재’인 인간을 양산해 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네 생명의 친구들과 진정한 인간을 만들어 보렴. 사랑! 사랑으로! 교육학이 아닌 사랑으로. 천재! 천재는 태어나는 거지, 만들어지는 것이 아냐.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경건한 포옹에서 태어나는 거야. 순수한 사랑에서 태어나는 거야. 나는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어. 천재는 가장 무의식적인 충동에서 태어나는 법이야. 정신을 잃을 정도로 깊이 사랑에 빠져 있을 때만 천재를 잉태할 수 있는 법이야. (중략) 자식을 만들 때 계산을 하는 사람은 천재를 가질 수 없어.”(18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