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최혜실_평론가, 경희대 국문과 교수. 1962년생. 평론집 『한국모더니즘소설연구』 『한국현대소설의 이론』 『디지털 시대의 문화읽기』 『한국근대문학의 몇 가지 주제』 등
70년대 중반에서 83년까지 한국의 대학 인구는 거의 네 배 가량 늘었다. 특히 81년도 졸업정원제는 대학 정원을 230퍼센트 늘리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이후 대학은 양적으로 팽창했고 최근 한 해의 입학 정원이 60만이란 가공할 숫자가 되었다. 최근 출산 인구가 한 해에 42만이란 것을 고려해 볼 때, 2020년 정도면 십여만 명을 외국에서 수입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대학 정원 증가는 대학의 위상을 급속도로 바꾸었다. 지성의 전당, 드높은 엘리트 의식, 교양인의 양성 장소로서 대학이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소수일 필요가 있다. 문화의 향유는 탕진할 수 있는 잉여물이 있을 때 가능하다. 이제 모든 사람이 다 갈 수 있는 대학이 직업의 준비기관으로서 규정되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교수와 학생들은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한 과는 퇴출당해야 마땅하다는 경영논리에 순수학문이 당하고 있는 봉변들을 참담한 표정으로 받아들이는 시대가 되었다.
김신의 『대학별곡』은 대학의 지각변동이 시작되는 지점에 놓여 있었다. 80년도 학생들의 민주화 항쟁 이후 광주의 비극이 있었고 곧 졸업정원제가 단행되었던 것은 단순히 우연의 일치였을까? 83년도 학교에 버젓이 진군해있는 전경들, 낮말도 듣고 밤말도 듣는 짭새들, 캠퍼스는 갑작스럽게 늘어난 학생들로 시장바닥 같았고 과외금지로 대학생들의 아르바이트원은 끊겨 버렸다.
그러나 학생들의 옹골찬 자존심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대학의 설립 근원이요, 학문의 꽃인 철학에 대한 사랑을 지닌 일곱 사내가 벌이는 방황과 우정은 치기어리지만 진지하다. 먼저 주인공인 땐서, 무당 김수택, 추장, 강태두, “아- 스무살”이란 말을 남긴 채 자살한 교주 박찬기, 시인 송기을, 꼼꼼한 모범생인 최병헌, 간질 한우척의 술잔치와 기행, 다툼은 다소 과장되어 있을지라도 그 시대 우리 주변에 있었던 대학생들의 면모 그대로인 것이다.
민주화 운동에 대한 좌절, 광주의 폭력에 대한 분노를 구체적으로 표출하기에 아직 시기상조였다. 한층 조직적이 되고 치열해진 학생운동, 분신, 87년의 시민항쟁의 와중에서 나온 소설들은 그래도 공포와 좌절, 분노의 감정이 한차례 정리된 다음의 일이었다. 『대학별곡』은 당시 젊은이들의 이러한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을 철학적 은유와 등장인물들의 기행으로 표출하고 있다.
주인공이 교정에 들어서서 처음 본 글은 ‘진리’와 ‘봉사’였고 처음 본 건물은 도서관과 교회였다. 소설의 중간에는 도서관 서고에 가득 찬 책들의 양에 멀미하는 주인공의 모습도 나온다. 진리의 전당, 토익과 상식문답에 점령당한 요즈음의 대학에서 한참 낯선 단어가 아닌가! 첫 시간 안성욱 교수의 말 또한 상징적이다. 플라톤이 희랍인이자 자유인으로 태어났고 소크라테스와 동시대에 태어났음을 감사하게 생각했으니 자기의 정신에 합당한 벗을 만나라는 충고…… 그 후 그 치기어린 행동들은 견유파 페레고리노스, 쇼펜하우어, 반 고흐, 프로메테우스, 시지프스 등 위대한 철학자나 지식인의 그것으로 비유된다. 적어도 대학은 일상에의 함몰을 거부하는 시지프스의 전당이며 신에게 반항하는 프로메테우스의 산실이란 당찬 오만이 작품 전편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상으로부터 현실로 돌아오는 것은 졸업할 즈음이면 족하다. 강태두는 배를 타기 위해 해양대학에 편입하고 최병헌은 문화재관리국에 취직한다. 한우척도 무역학과로 전과한다. 적어도 대학은 유예된 시공간이라는 일상으로 추락하기 전, 사유하고 고민하는 장이라는 이 믿음이 1학년부터 직업 준비, 전과 준비를 해도 어려운 요즈음 세대들과는 격세지감이 있다.
남자들의 성장소설이다. 그리고 남자들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처럼 『대학별곡』의 매력은 ‘수컷스러움’에 있다. 주인공은 도서관 앞에서 오체투지한 후 땅에 자신의 남근을 꽂는다. 여기서 대지는 여성으로 나온다. 그 이후 소설에는 술집 과부와 유명자, 옥남이 등장한다. 유명자는 일곱 친구 중 세 명이 돌아가며 쫓아다니는 존재로, 옥남은 주인공이 짝사랑하나 수녀가 되어버린 존재로, 술집 과부는 주인공의 열기를 잠재워주는 존재로 등장한다. 남성이 닿을 수 없는 베아트리체로 여성을 묘사하는 것은 여성을 사회 속에 소통해야 할 존재로 제대로 자리매김 못함을 의미한다. 무당이 천민임을 생각해보라. 남성 성장 소설에서 매음녀는 방황의 과정에서 위로를 주고 힘을 주는 대상으로 자주 활용된다. 한마디로 『대학별곡』은 남자 대학생의 이야기이다. ‘남성 대학별곡’, ‘반쪽 대학별곡’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대 현실에서 리얼리티를 지닌다.
왜 한국에서는 진정한 여성 지식인 소설이 한 편도 없을까? 기껏해야 모녀의 화해나 혹은 천한 대상으로서의 동질성 속에서 연대의식을 느끼는 우정에서 아직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의식, 치기로라도 세상의 고뇌를, 그 시대 가치관의 최고치를 넘겨보는 여성에 대한 소설은 언제쯤 나올 수 있을까?
『대학별곡』은 80년도 학생운동의 패배를, 1백8일간의 휴교를, 그리고 과외금지와 졸업정원제를, 그 참담한 패배를 앓고 있었던 당시 젊은이들의 자부심을 슬쩍 살려주면서 추락하고 있으나 아직도 우골탑이면서 상아탑이었던 당시 대학에 대한 환상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것은 60년대 김승옥의 「환상연습」에 나타난 그 끔찍한 문리대스러움에는 미치지 못했고 70년대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의 일탈의 정도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80년대 초반 당대 대학생활의 분위기를 리얼하게 드러내고 있다. 80년대 중후반부터 나타나는 운동권 학생들의 투쟁과 사랑, 후일담의 ‘대학별곡’의 바로 앞자리에서 그만큼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어찌되었건, 그것이 지니는 ‘당대성’ 때문이다.
그 정점 이후의 ‘대학별곡’들은 대학인이 정치의 폭력 앞에서 어떻게 싸웠는가의 투쟁사로 점철된다. 싸움의 과정에서 당대 대학의 총체성이 드러나지 않음은 물론이다. 이제 투쟁의 원인이 사라진 대학 캠퍼스에서 작가들은 일상인들과 다른 대학생의 정체성을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