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대에게 가는 여정도 / 따뜻하리라 / 잠든 꽃의 눈과 귀는 / 이루지 못한 꿈에 쌓이고 / 이별이여, 축제의 표적이여. / 애절한 꽃가루 만발하게 / 우리를 온통 적셔주리라. (「축제의 꽃」 중, 시집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시인 마종기. 그에게서 젖은 바람 냄새가 났다. 그것은 무척 낯선 것이었다. 번화한 도시의 한복판에서는 좀처럼 마주칠 수 없는 그런 낯설음. 언젠가 벌판에 외롭게 서 있는 한 그루 나무에게서 그런 이미지를 느낀 적이 있다.
시인이 돌아왔다. 몇 년 전 평론가 이광호는 이렇게 말했다. 육순을 한참 넘긴 몸으로 그는 어디서 온 것일까? 내가 알기로 시인 마종기는 의사로서, 그것도 머나먼 미국 땅에서 생의 모든 시간을 보냈다. 이제 흰 가운을 벗고 갑자기 피었다 지는 목련처럼 미미한 은퇴를 한 그를 만나러 가는 시간 내내, 그의 시편들과 그를 떠올렸다. 시집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를 시작해 오랜 시간 동안 그의 시를 접해 온 나는 처음 그를 만난다는 사실에 묘한 흥분이 일었다. 나에겐 까마득한 선배가 되는 시인이고 이름만으로도 경외심을 일으키던 시인이었지만, 여지껏 시 말고는 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나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상적 시각으로는 엘리트의 길을 걸어온 그가 시에서는 왜 그렇게 황량하고 위태로운 몸짓으로 서 있는지 늘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었다. 나는 나만의 일방적인 상상으로 그를 그려보았다. 그의 시, 그림 그리기 속의 “빈 들판같이 살기로 했다”는 구절을 읊조리면서.
강남역 부근, 번화한 거리 한편의 베이커리에서 그를 만났다. 내가 바라보는 도시의 마른 풍경 속에서 그는 그렇게 낯선 바람 냄새를 풍기며 들어왔다. 수수한 점퍼차림에 담긴 표정은 부드럽고 정갈했다. 그러나 간간이 비치는 미소 속에서 유랑의 흔적을 나는 쉽사리 발견할 수 있었다. 인사말로, 고국의 모든 도시는 너무 변해버렸노라고, 갑자기 불시착한 어느 별처럼 낯설다고 그가 말했던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던가. 내가 상상한 모습은 그렇게 천천히 지워지기 시작했다.
“가끔, 왜 시인이 미국에서 사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참 난처해져요. 내가 고국을 떠나게 된 이유는 몇몇 친구들만 알지요.” 그 몇 마디를 하며 커피 잔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60년대 초 군의관으로 재직하던 도중, 박정희 군사정권의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에 대한 반대 서명을 한 이유로 고문을 받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떠나게 된 미국에서의 힘든 여정, 그 충격으로 석 달 뒤에 세상을 버리신 부친의 유고 소식에도 돌아올 수 없었던 일들, 그리고 멀어져버린 수많은 것들에 대한 그리움까지의 내용이 이어지는 동안 읽어 온 그의 모든 시가 선명해졌다. 그래서 그는 “…… 자주 보는 꿈속의 나비 / 우리가 허송한 시간의 날개로 / 바다를 건너는 나비, / 나는 매일 쉬지 않고 날았다. / 절망하지 않고 사는 표정 / 절망하지 않고 들리는 음악 // 그래서 절망하지 않는 몸으로……”(「나비의 꿈」 중) 이렇게 노래했었구나. 나는 내 편견과 어떤 고정화된 상상으로부터 생각들을 끄집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부터 똑바로 그의 표정과 눈빛을 응시할 수 있었다. 그 눈빛의 그늘 밑에서 잠깐 편안해졌다.
그는 유랑자였다. 바람으로, 얼음으로, 때로는 한 마리 새와 나비가 되어, 때로는 흐르는 물줄기가 되어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를 찾아 끝없이 떠도는 유랑자였다. 어느 자그맣고 조용한 남쪽 어느 포구에서 만나고픈 그 따뜻한 것들. 그때까지 바람인 듯 한줄기 투명한 빛인 듯 헤매고 부딪치고 늙으면서.
그러므로 그의 시는 얼마나 고단한 시간을 끌고 온 것인지 추측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 땅에 살았다면 시를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그의 고백에 표정 뒤로 숨겨진 지친 바람의 말들이 우수수 쏟아지고 있었다.
가물가물 흔들리는 희미한 불빛처럼 그의 내면을 밝히던 시는, 고국을 향해 혹은 자신의 존재를 향해 외치는 안타까운 흔적이었던 것이다. 아득하고 황량한 생의 벌판을 떠돌 때, 그 아슬아슬한 불빛마저 없었다면 얼마나 깜깜했을지 얼마나 더 막막했을지 가히 짐작이 간다. 한 톨의 불빛으로 눈앞을 밝히고 서늘한 가슴을 데우며 그는 한발한발 길을 더듬었던 것이다. 가끔씩 고국에서 친구들이 시를 보내달라는 그 한마디가 너무나 큰 고마움으로 여겨졌다는 그. 나는 그에게 단 한 번도 그의 시가 따뜻하다는, 평화로운 서정성에 대해 얘기하는 평자들의 말에 동의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너무도 서늘한, 따뜻함마저 서늘한 막막한 벌판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가득했노라고. 그 이미지가 영 틀리지 않았던 것 같다고. 그는 자신의 시를 이해한 방식에 미소로 답해 주었다.
그쯤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던 장소의 어수선함을 피하여 조용한 커피숍을 찾아 나섰다. 골목을 들어서자 5월의 햇살은 그의 반백의 머리칼 위에서 유난히 반짝였다. 휘청거리며 다가서는 바람의 뒤편에서 나는 한 생을 연주한 그 검거나 흰 음표들의 나부낌 속에서 투명한 꽃잎 같은 매혹을 발견했다. 어떤 극단의 매혹. 아직 끝나지 않은 생의 감각들을 맛보며 연주되는 황홀한 꿈과 쓸쓸한 안식 같은 이분법적 빛깔들이 그의 온몸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가 노래한 시편들의 무수한 꽃들의 축제에 초대된 애절한 향기처럼.
자리를 잡고 나는 곧바로 꽃에 대해 물었다. 수없이 많은 시 속에 등장하는 꽃의 이미지와 그 꽃을 흔들어대던 바람의 말들에 대해. 그는 꽃의 화려함과 빛깔보다는 꽃이라는 것들이 가진 원형질과 내적 본질의 의미를 강조했다. “내게 꽃은 어떤 꽃이냐 하는 그런 건 의미가 없어요. 다만 그 꽃을 통한 어떤 구도의 순간을 노래하는 거지요. 그리고 바람은 꽃에게 이르는 여정이구요.” 그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하나의 꽃을 피우기 위한 시간과 모든 걸 쏟아 붓는 그 열정과 간절한 염원성, 그리고 그 만개한 순간의 노래와 그 찰나적인 소멸의 아픔을 응시하는 경건한 순례이다. 그러므로 시들어 고개 숙인 꽃마저도 따뜻한 안식이 된다. 그러한 꽃에 대한 그리운 꿈꾸기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그의 눈이 반짝인다. 그것이 그의 생의 여정이다.
그림을 그리다 지우기를 반복하는 그의 여정.
이제는 습관처럼 되어버린 유랑의 삶이 그의 전부인 듯 보였다. 그의 정신은 끊임없이 세상의 구석자리만을 찾아다닌다. 땅 끝의 포구나 도시의 유곽에서 보일 듯한 그의 꿈은 그러나 그리운 나라의 하늘빛을 그리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때까지는 영 떠다니는 노래일 뿐, 어디에도 뿌리내릴 수 없는 아득한 바람의 일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순한 바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애써 목청을 돋우며 간절한 가락을 토해내기도 했다. 여전히 그는 유랑자였다. 한쪽 어깨가 출렁 가라앉았다.
“……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 가까운 친구는 병이 들었고 / 일요일에는 낙엽이 날렸다. / 낙엽은 나무의 눈물 / 쌓인 눈물을 다 씻어낸 뒤에 / 당신에게 들어가 열매가 되었다.……”(「목련, 혹은 미미한 은퇴」 중) 어느새 유랑의 자취가 되어버린 삶의 시간들은 너무나 오래되었고, 의사생활을 은퇴한 그는 무척 이 땅에 들어와 살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몇 가지 이유로 일 년 중에 육 개월만을 이곳에서 생활하기로 했다는 그는 무척 아쉬움을 남는다는 듯 자꾸만 자신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곤 탁자에 놓인 아이스티를 길게 들이켰다.
그러나 귀국 시기엔 연세대학교 의대에서 의학과 문학에 대한 주제로 강의를 한다며 다른 열정을 드러냈다. 많은 관심을 드러내는 학생들로 인해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며 환하게 웃었다. 물론 의사이면서 문학가인 인물들에 대한 얘기도 하지만, 몸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의학과 존재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문학은 너무 공통점이 많다는 말들과 함께 자신의 다른 방향성에 대한 의욕과 관심에 대한 생각들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야 고국에서 찾은 삶의 흔적 만들기의 출발점 선 것이다.
그렇다면 이후의 그림은 어떤 꽃이 피는 풍경이 될지 궁금해진다.
시인 마종기. 그는 이제 정말 돌아온 것일까? 오랫동안 집으로의 회귀를 갈망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니 유랑의 세월은 정말 끝낼 것인지. 아니다. 물론 일 년의 반을 서울 생활로 결정했다지만, 영 아닐 것이라고 단정해 말하고 싶다. 평론가 이광호의 말대로 이것은 사실적 생애와는 다른 것이다. 어쩌면 그런 현실적인 것과는 전혀 다른 꿈을 꿀 것이다. 그는 이제부터 정말 시인의 유랑이 시작될 것이다. 새로운 유랑.
그는 집으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그의 집은 행복한 상징이고, 그러나 그 상징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아득함 때문이다. 새들의 꿈에서 나무냄새가 나듯이 그의 꿈에서 땅의 냄새가 나고 땅의 귀가 되어 완전한 소리를 듣고, 완전한 자연을 이룰 때 당도하는 집. 그러므로 그는 끊임없이 자신이 자연주의자라고 항변한다. 그 항변에 나도 동의한다. 그러므로 안식할 꽃을 찾아 끊임없이 헤맬 것이다. 그러면서 완전하게 늙어버린 후, 이루지 못한 꿈에 도달하기까지. 그리하여 이별과 축제의 표적이 되어 깊이 잠들 때까지.
그는 젖은 표정을 털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와 악수를 나누는 손이 따뜻하게 젖어 있다. 다시 반백의 머리칼 위로 햇살이 쏟아진다. 나는 그의 아득한 길과 붉거나 혹은 희거나 검거나 푸르게 만발할 꽃의 빛깔과 향기에 대한 그림들을 감상해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