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타고 인천광역시 중구 선린동의 차이나타운으로 간다. 영화 <파이란>의 무대가 되기도 했던 곳, 도착하기도 전에 배에 실려 넘어왔을 중국 비단 냄새와 향료 냄새가 감돌고, 왁자지껄한 중국말이 귓전을 때린다.
인천광역시는 20세기가 끝나가던 1999년, 오는 2010년까지 인천 송도 앞바다의 매립지 1천3백만 평 위에 ‘송도 미디어밸리’라는 최첨단 정보통신산업 단지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사업은 20세기 마지막 희망이자 21세기 꿈의 시작이라고 지칭된다.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휴렛패커드, 선마이크로시스템 등 50여 외국 기업이 참여한 사업설명회가 성황리에 열렸지만 막대한 자금 문제로 곧 난관에 봉착한다. 그래도 인천은 지금 장밋빛 꿈에 부풀어 있다. 차이나타운으로 가는 길에는 인천본부세관, 인천 출입국관리사무소, 해양수산청 등 주요 기관들이 밀집해 있다. 1884년 화교들이 몰려올 때도 그랬지만 인천국제공항의 개항 등으로 주목받는 인천은 서구 근대 문물을 받아들인 자궁이며 관문이다.
리모델링으로 되살린 관광특구
인천행 1호선 지하철의 마지막 역인 인천역에서 내려 광장으로 나오면 커다란 중국식 대문 ‘파이루(牌樓)’가 보이고 ‘중화(中華)가 2km’라고 씌어진 붉은 기둥이 보인다. 이곳에서부터 차이나타운이 시작된다. 과거 인천역 주변은 석탄공장이었다. 오정희의 단편소설 「중국인 거리」에 묘사된 “겨우내 북풍이 실어나르는 탄가루로 그늘지고, 거무죽죽한 공기 속에 해는 낮달처럼 희미하게 걸려 있었다”는 차이나타운 풍경을 떠올린다. 파이루를 지나면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일렬로 달아놓은 붉은등과 영화 <패왕별희>에서 경극 ‘패왕별희’의 우미인 역을 맡은 ‘데이’, 배우 장국영의 얼굴이다.
느린 걸음으로 차이나타운 속으로 들어간다. 중화루, 자금성 등 화려한 치장을 한 중국음식점들 앞을 지나간다. 내년 10월엔 이곳에서 자장면 축제가 열리고, 춘절 축제도 계획 중이며 ‘중국의 날’ 행사도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한 무리의 남녀 노인들이 조용히 한 반점 안으로 들어간다. 그들의 뒷모습에는 ‘화교(華僑)’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다. 그들이 반점 안으로 들어가고, 필자는 구슬 수십 개가 달린 문발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반점 앞에 앉아 있다.
화교, 그들은 싱가포르, 마르세이유, 샌프란시스코, 요코하마 등에 차이나타운을 세운다. 그 나라의 항구를 거점으로 하여 연안을 거쳐 내륙으로 뻗어 들어가는 방식이다. 지금 이곳에 남아 있는 화교 2, 3세들은 약 5백 명이다.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고 1884년 청국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체결되면서 서로 자주 배가 오가던 산둥(山東)반도 출신들이 몰려왔다. 화교 1세대들은 중국 고유 풍습을 그대로 간직하며 살았지만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면서 대만과 미국 동남아시아 등지로 흩어졌다. 남은 사람들은 요리집과 잡화가게를 차리거나 부두 노동자가 되었다.
지어진 지 백 년이 넘었다는 ‘구 한의원’ 건물 앞에 서서 사진을 찍는다. 아기자기한 중국 인형 가게 앞에서 부모를 따라온 여자애가 유리창 앞에 다가서서 안을 들여다본다. “바다를 한 뼘만치 밀어둔 시의 끝, 해안 동네에 다달아 우리는 짐들과 함께 트럭에서 안아내려졌다”는 「중국인 거리」의 화자 ‘나’ 가 어딘가에서 걸어 나올 것만 같은 순간이다.
관광 특구는 리모델링이란 이름으로 낡고 오래된 목조 건물들 위에 화려한 붉은색 장식을 덧칠해 놓은 것, 그 이상의 무엇을 보기 어렵다. 이곳이 과연 1백20년 역사를 간직한 고도(古都)의 얼굴인가. 이제 인적이 뜸한 골목 속으로 들어간다.
유년이라는 “금이 간 항아리”
휴전 후인 1955년 오정희 가족은 석유회사 인천 출장소 소장으로 취직이 된 가장을 따라 차이나타운으로 이사를 한다. 작가가 2학년부터 6학년, 서울로 전학하기까지 다녔다는 신흥초등학교는 차이나타운 인근 대로변에 있다. 학교 앞길로 목재와 철근을 실은 트럭이 개발 중인 바닷가로 줄지어 달려간다. 학교 주변으로 한국기독교 선교백주년 기념탑과 오래된 성당, 오래된 한의원, 작은 꽃모종을 파는 꽃집과 문방구가 있다.
차이나타운은 붉은등과 어지러운 한자가 엑조틱한 풍경을 자아낸다. 자장면을 먹으러 온 사람들이 연신 차에서 내리고 탄다. 그들을 외면한 채 어깨를 잔뜩 숙인 노인이 어긋나 있는 문을 어렵사리 닫고 오래된 일본식 집 안으로 들어간다. 「중국인 거리」에 등장하는 창백한 얼굴의 중국인 남자, 그도 이제 나이가 든 것이다. 어긋난 문은 저절로 다시 열리고 뚫어져라 어둠 속을 응시하며 담배를 피우는 창백한 얼굴의 중국인 남자가 보인다. 그도 “됫박머리”를 한 채 차이나타운을 배회하던 여자애를 기억할까. 자신이 여자애에게 종이꾸러미를 주었고 그 여자애는 종이꾸러미를 “금이 가서 쓰지 않는 빈 항아리” 속에 넣었고 “초조(初潮)”를 경험했으며 위태롭게 유년의 강을 건넜다는 것을 알까.
최근에 작가는 장편소설 『목련꽃 피는 날』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 소설의 화자는 오십 세가 넘은 소설가다. 화자인 ‘나’는 “옛집은 죽을 때나 가보는 거”라는 남편의 말을 곱씹으며 50년 만에 어린 시절을 보낸 중국인 거리, 차이나타운을 보러 인천에 간다. 그리고 화자는 거기서 본 것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개항 이래 백 년의 세월을 견딘 집들, 비숍 여사의 기록에 의하면 수려한 관아와 길드, 번창하는 상점 거리, 이국풍의 아름답고 화려한 집들은 지나간 시대의 흐린 잔영처럼 퇴락한 모습으로 서 있다. 우리가 자랄 때까지도 이곳은 청관이라 불렸었다. 언덕의 경사면을 따라 양쪽으로 즐비하던 누각이 달린 이층집들은 몇 채 남아 있지 않았다. 붉은 벽돌 건물이나 시멘트 건물들이 무슨 공사라거나 연락 사무소 따위의 간판을 달고 이물스럽게 끼어 있었고 헐린 채 공터로 남아 있는 곳도 많았다. 남아 있는 집들도 곧 무너질 듯 위태롭게 내벽을 드러내면서 널린 빨래, 우유팩이나 페트병, 터진 봉지에서 비어져 나온 음식 찌끼들로 폐가처럼 보이는 그곳에 아직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오래된 골목에서 만난 숙연한 삶
먼저 왼편 언덕길로 올라가 가능하면 화려한 붉은색이 보이지 않는 쪽으로 접어든다. 양지바른 곳에 만두며 과자를 파는 잡화가게가 있고 그 앞에 가만히 누워 있는 개가 보인다. 그에 비하면 비좁은 골목길의 이끝에서 저끝으로 내달리는 “고양이의 검고 긴 몸뚱아리”는 「중국인 거리」에 등장했던 고양이들과 똑같이 아주 매끈하다. 오래된 집들은 굳게 문이 닫혀 있고, 양동이에 든 밥그릇이나 세숫대야에 담긴 양말짝들만 문 앞에 놓여 있다. 왼쪽 골목의 언덕은 자유공원으로 이어진다. 자유공원 입구에서 모자를 팔고 있는 남자의 얼굴이 따끔한 햇빛에 자주 일그러진다. 공장 굴뚝에 둘러싸인 바다는 서쪽에 있기나 한 건지 잘 보이지 않고 그저 불투명한 회색이다. 자유공원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도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다.
자유공원에서 내려와 오른쪽 골목들로 접어든다. 오래된 목조 가옥들이 훨씬 더 많다. 골목을 내려가다가 집과 집들 사이의 한가운데에 버려진 오래된 우물을 발견한다. 우물은 지금이라도 물을 길어 올릴 수 있을 것처럼 형태가 그대로다. 그러나 우물은 두꺼운 나무 뚜껑으로 봉해져 있다.
차이나타운 곳곳엔 뼈대만 세워놓고 채 짓지 못한 건물들이 많다. 그 건물들 앞에 쌓여 있는 쓰레기들이 오히려 차이나타운의 현실이다. 『목련꽃 피는 날』에서 간호사인 ‘나’의 딸은 근무 중에 전화를 걸어 담담하게 말한다. “창밖을 내다보고 있어요. 쓰레기를 태우네요. 날이 밝아오고 있어요. 하늘이 새파래요. 맨 붉은 십자가뿐이야.” 우리의 일상은 사실 이런 모습이다. 관광특구인 차이나타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좁고 가파른 골목길로 걸어 올라간다. 골목길은 너무 좁아서 혼자 지나가기에도 벅차다. 그 골목길 끝에서 짧은 치마를 입고 됫박머리를 한 여자애들 둘이 뛰어내려온다. 「중국인 거리」에 등장하는 ‘나’와 부모로부터 버림받는 친구 ‘치옥’이다. “난 양갈보가 될 꺼야.” 치옥의 말에 ‘나’는 까르르 웃으며 말한다. 나는 의붓자식이야. 나는 중국 남자의 애를 낳을 거야. 엄마처럼 여덟 명의 아이를 낳고 할머니처럼 죽을 거야. 여자애들은 빨래판처럼 마른 몸으로 두 팔을 치켜든 채 내 옆을 바싹 지나 차이나타운 한가운데로 뛰어 내려간다. 나는 그 애들 뒤를 따라가다가 애들을 놓친다. “인생이란” 뭡니까? 유년이란 뭡니까. 계속되는 작가의 장편 『목련꽃 피는 날』에 그 대답이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