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가족관계를 묻는 것일까. 가족이, 그 사람의 됨됨이를 결정하는 척도라도 된단 말인가. 아니면 그저 친근함의 표현인가. 오늘, 직장의 한 동료가 가족관계를 물어왔다. 화제를 돌리려 던진 자연스런 질문이었으나, 내게는 너무나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며칠을 미루다가 형님 산소의 마른 근조화환과 나머지 옷가지를 태우고 출근하였기에 나의 대답은 더욱 곤궁할 수밖에 없었다. 양친이 모두 살아 계시다는 말로 대신했지만 옥상으로 올라가 첫 담배를 태우는 동안은 잠시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했다. 혼례를 올리지 않았기에 자식을 남기지 못하신 형님의 장례식. 조촐한 가족장은 형제들의 의견이었고 매장을 선택한 것은 어머니의 강권이었다. 허나 질문을 받고 보니 외부에 알리지 않은 것이 잘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공부를 한답시고 몇 번의 생활터전을 옮겼지만 나는 늘 팔남매의 일곱 번째였다. 아니, 어머니가 열 명의 자식을 낳으셨으니 나는 십남매의 여덟 번째라고 말했어야 옮았다. 그랬다면 형님의 빈자리를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더욱이 화장을 하지 않았으니 어머니는 또 얼마나 오래 그 산소를 다니며 눈물을 흘리실 것인가. 어머니와 무덤, 죽은 이를 가족에 포함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줄담배를 피게 했다. 살아있는 자, 아니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의 정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러나 수업 종이 울렸다. 그리고 옥상난간에 쌓인 꽁초들을 보았다. 죽은 여동생이 태어난 그날, 어머니는 박스를 줍지 않았다. 가물거리는 여동생의 이름으로 어머니는 형님의 콧잔등에 송글송글 맺히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눈물을 찍어냈다. 비좁은 방안, 계절을 잊은 선풍기는 느리게 고개를 가로저었고 자주 정신을 놓던 늙으신 아버지까지, 맑은 정신으로 깨어 형님을 내려다보고 계셨다. 아기 같은 여린 숨결로도 형님의 몸은 땀에 절고 그 축축한 몸에 눈물 보태시던 어머니. 죽은 자식의 이름으로 죽어가는 자식의 소생을 비는 그 참혹한 풍경을 견디려 나는 자주, 자그마한 북창으로 눈을 돌렸다. 어두운 방안에서 듣는 때늦은 매미소리가 곡소리 같았다. ‘어머니는 왜 여동생의 기일(忌日)을 기억하지 못할까!' ‘아버지는 정말, 당신과 형님의 자리가 바뀌길 바라는 것일까.' 시의 주술성을 믿는 나는 ‘아버지와 형님의 자리를 바꾸는 시를 써보리라', 불효막심한 상상으로 그 자리를 벗어나려했지만 그때마다 선풍기보다 느린 형님의 고갯짓이 나를 주저앉혔었다. 나는 몇 번이고 가출을 했다 돌아오는 상상을 했다. 죽은 자식들을 추억하는 어머니와 힘겹게 그 이야기를 듣는 형님. 선풍기의 바람이 그 이해할 수 없는 공기를 온방에 퍼뜨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허나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것이 형님이 부모에게 한 마지막 인사였음을. 양철지붕을 죽비처럼 내려치던 도토리들이 아르바이트 같은 직장 학원에 늦었다는 것을 알려와 도망치듯 집을 나왔을 뿐, 창문을 가렸던 것이 어머니가 쌓아놓은 파지였음을 나는 알지 못했다. 다음 날, 형님은 부모 앞에서 숨을 놓는 불효만은 면했다. 형님의 임종은 나 혼자 지켰다. 한 생명이 그렇게 쉽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은 공포였다. 그러나 왜 그날의 기억은 임종의 그 순간보다 더욱 또렷한 공포로 다가오는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추억이 있기 때문인가! 나는 알 수 없다. 그날 두 병의 양주와 형님이 풀어놓았던 세월을, 여전히 해독할 수 없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나와 형제들은 형님을 잊으리라는 것을, 어린 시절 보낸 두 자식과 사십여 년을 함께한 자식은 다르리라는 것을, 짐작할 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식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경험을 하신 어머니. 그 어머니는 여전히 박스를 주우신다. 파지를 팔아 담배 값을 주던 대상이 형님에서 나로 변했지만 나는 더 이상 어머니의 박스 줍기를 말리지 않는다. 막내아들의 담배 값이나 50cc 오토바이 기름 채워주시는 것을 큰 기쁨으로 아시는 까닭이다. 그리하여 오늘부터 나는 칠남매의 여섯 번째다. 나는 살아있는 형제들 중 여섯 번째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 그것은 언제나 자식들이었기 때문에. 죽은 이는 한집에 살지 않기 때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