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리다 크리스티나 헤레라    © 운영자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에 의하면, 신화는 진실이자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한 성스럽고 상징적인 이야기이다. 신화에서 신과 비범한 존재들간의 상호 작용은 빼놓을 수 없는 구조이며, 그 주된 의도는 의미있는 실재를 구축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자명하게 드러나며, 하나의 의미를 부여하는 “다른 영역”(otherhood)을 구축한다.
신화는 전체 문화와 유기적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의미를 포함하는 동시에 의미를 부여한다. 현상학적, 해석학적 관점에서 볼 때, 신화는 살아있는 현상이다. 신화는 세상에 존재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신화”(myth)라는 단어의 그리스어 어원은 눈을 반쯤 감고 입으로 중얼거리는 것을 의미한다. 신화는 사실을 보여주지만, 이는 아주 미묘하게 표현된다. 신화는 사실이지만, 안개처럼 흐릿한 동시에 매우 분명하게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김열규는 『한국 신화학의 현황』이라는 흥미로운 글을 썼다. 이 저자에게 있어 한국 신화학의 시작은 매우 중요하고 낭만적인 순간이었다. 일부 신화들은 역사의 잃어버린 부분을 재건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사람들은 그 속에서 이상 특히 애국심을 추구했다. 그에 의하면, ‘인류학적 관점에서 볼 때, 학자들은 퉁구스, 프로토시베리아, 중국, 만주, 일본의 신화학에 대한 비교연구에 관심을 보였다. 제주도에서 발견된 샤머니즘 신화는 동아시아 태평양 연안 지역의 신화학에 대한 비교 연구 가능성을 시사’해준다.
한국 신화의 주제는 주로 우주 창조, 인류 또는 그 외 다른 생명의 출현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국가나 가족의 시조에 대한 것으로, 특히 국가 시조에 관한 주제가 많다. 김흥규는 영웅 설화 구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샤머니즘적 시조인 주몽, 달해, 금계, 작제건 등 시조에 대한 신화는 ‘영웅의 일생’이라는 서사 구조를 가진다.” 조동일, 김열규 교수에 따르면, 이 신화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귀족 가문 출신 ▲특이한 탄생 ▲초자연적인 힘 ▲기아와 불공평한 대우 ▲구원자의 도움 ▲위기 극복 ▲승리와 영광 획득. 이러한 구조는 위기의 심각함에 앞서 극복의 가능성을 강조하며, 현재의 성취를 중시하는 낙관적인 세계관을 보여준다. 이러한 유형의 서사 구조는 조선왕조 후기에 나타난 영웅소설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제부터 고구려 시조 신화와 제주도 전설, 두 가지 이야기를 살펴 보겠다.
고구려 건국 신화에 의하면, 주몽은 해모수의 아들이며 해모수는 천신(天神)의 아들이다. 어느 날 해모수는 강가에서 놀고 있는 수신(水神)의 세 딸을 발견하고는 책략을 부려 이들을 유인한다. 장녀인 유화가 그 책략에 꾀여 천신의 아들의 유혹에 넘어간다.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된 수신은 화를 내고 유화를 추방시킨다. 부여의 왕인 금와가 유화를 발견하고는 불쌍히 여겨 자신의 궁전으로 데려온다. 금와는 한 줄기 빛이 항상 유화의 자궁 쪽을 비추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데, 몇 달 후 유화는 커다란 알을 낳는다. 금와는 이 알을 동물들에게 먹이도록 명령했으나 동물들은 이를 먹지 않았다. 금와는 알을 산에 내다버리도록 명령했으나, 동물과 새들은 알을 에워싸고 보호했다. 이제 금와 자신이 이를 부수려 했으나, 알은 깨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알을 어머니에게 돌려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알 껍질이 갈라지고 잘생긴 소년이 태어났다. 소년은 손재주가 뛰어나 7살에 혼자 힘으로 활과 화살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 활 솜씨에 놀랐으며, 그를 “활 솜씨가 능란하다”는 뜻을 가진 주몽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금와 왕 슬하에는 일곱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곧 주몽을 시기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주몽에 대한 음모를 꾸몄고 이 사실을 안 어머니는 주몽에게 집을 떠날 것을 권유했다. 일곱 아들들은 왕에게 주몽을 제거할 것은 간청했다. 주몽이 왕의 아들들에 쫓겨 강에 이르렀을 때 주몽은 수신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에 물고기와 바다거북이 다리를 만들어 주몽은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주몽이 강을 건넌 후, 동물들이 흩어져버렸기 때문에 왕의 아들들은 강을 건널 수 없었다. 후에 주몽은 남쪽 영토를 지배했던 왕들을 무찌르고 영토를 통일하여 고구려 왕국을 건설했다.
이 이야기에는 우주의 기원에 관한 언급은 없으며, 이야기 속에는 우주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 여기에는 여성이 낳은 알에서 나온 고구려왕의 특이한 출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라디오 코리아의 스페인어 사이트에는 알이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상징한다고 되어 있다. 오래되어 기한이 다 된 것은 소멸하고 다른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미르치아 엘리아데에 의하면 “알의 의식적 가치는 알을 배(胚)로 보는 경험합리적 평가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이 정당화하는 것은 알이 표현하는 상징, 단순한 성장 이상의 것, 즉 우주기원론 모델에 의거한 ‘재탄생’을 가리킨다.”
유화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아버지가 이해하려고 않기 때문에 괴로워하지만,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는 강한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한국 여성의 특성은 많은 이야기와 소설에 나타난다. 이들은 고통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기질적으로 약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주몽의 경우, 어려운 순간에 동물들을 통해 수신(水神)의 도움을 받는다. 이는 자연 요소와 주요 인물 사이의 조화를 의미한다.
한편 제주에서 전해 내려오는 “해녀와 질병의 신에 대한 전설, 제주 해녀 이야기”에 의하면, 질병의 신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병사들을 죽음으로 내몰곤 했다. 바람이 평소보다 더 거칠게 불 때면, 섬 사람들은 그 신이 가까이 오지 않도록 공물을 바치곤 했다. 하지만, 이 신은 매번 더 많은 공물을 요구했고, 질병과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주민들은 이 신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벽을 만들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신은 돌 사이의 틈새로 기어들었던 것이다. 주민들은 마을에서 도망치기도 했으나, 병은 이들을 따라다녔다. 마침내, 주민들은 항상 자신들에게 물고기와 해산물을 제공했던 바다의 용왕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주민들은 가장 유능한 해녀를 뽑았고, 그녀는 바다 한 지점에 있던 석신에게 도움을 청했다. 해녀가 잠수하여 검은 터널을 발견했지만, 숨이 차서 그 곳을 통과할 수 없었다. 세 번이나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네 번째 시도에서는 기력을 잃고 쓰러졌으나, 불굴의 의지로 마침내 터널을 통과할 수 있었다. 용왕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는 도움을 약속했으며, 석병들로 하여금 질병의 신과 싸울 것을 명령했다. 이 전쟁은 100일간 지속되었으며 섬은 무거운 흙먼지로 덮였다. 마침내 용왕이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섬 전체는 바위와 돌로 덮였다. 제주의 돌과 바위는 구멍이 많고 검은 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질병의 신 병사들의 화살과 화염으로 인한 것이다. 해녀는 섬 주민들의 칭송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았다. 해녀가 죽었을 때, 그 몸은 강인함과 의지를 상징하는 단단한 산호로 변했다. 이후 제주 해녀들은 잠수하기 전에 산호 한 조각을 몸에 지니고 간다는 말이 전해진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여성상 역시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여 악으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강인한 여성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로, 고대 인도에서는 “그라마 드바타 grama devata”라는 마을의 수호신이 있어서 주민들의 안녕을 보장하기 위해 공물을 요구했다. 하지만, 주민들이 이 신을 말을 듣지 않을 때에는 어김없이 질병과 죽음을 가져온 것으로 전해진다.
필자는 해녀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느낄 수 있었다. 질병과 죽음 앞에서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숱한 고통이 따를지라도 가능한 모든 것에 의지한다. 오늘날 인간들은 많은 새로운 것들을 개발했으나, 아직 우리 곁에는 앞 이야기의 질병의 신과 같은 많은 “악마”들이 존재한다. 신화가 우리 현실 세계와 다른 점은 신화의 세계에는 ‘신화적 의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신화적 의식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으며, 그 속에서는 모든 것이 의미를 지닌다.
포스트 모더니즘 사회에서 인간은 혼란과 분열 속에서 살고 있다. 인간은 많은 신화적 존재 속에서 재편되고,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한다.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불신과 고통으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보이지 않는 폭력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자연을 파괴하고, 절대자를 잊어버렸다. 이제 더 이상 인간들이 절대자를 기억하고 있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신화와 전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이것들은 원시 사회나 과거의 것이 아니다. 신화와 전설에 귀를 기울여 보라. 개별 문화의 가치를 보존하고, 공통점들을 발견하고, 진정한 의미의 인간이 되도록 노력하고, 그러기 위해 의사소통하라고 말해 줄 것이다. 그렇게 할 때에야 비로소 신들은 인간을 창조했다는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