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오정희_소설가. 1947년생. 소설 『불의 강』 『유년의 뜰』 『바람의 넋』 『불꽃놀이』 『새』 등
아직 어슴프레 박명에 잠겨 있는 방에서 잠을 깨고도 한참만에야 나는 지난밤 차가운 비를 맞으며 독일 북부의 한 작은 도시에 도착했음을 기억해 냈다. 여행지에서의 긴장 탓일까, 집을 떠나면 늘 신새벽에 잠을 깨게 마련이고 일과가 시작되기까지의 그 시간이란 다시 잠을 청하기에도 책을 읽기에도, 아침산책을 하기에도 아깝기에 나는 대체로 창문을 활짝 열고 바깥풍경을 바라보는 것으로 보내곤 한다. 나로서는 엑조틱한 정서에 감각을 여는 한 방식인 것이다. 하늘은 무겁게 내려앉아 비가 흩뿌리고 잿빛 지붕위로 비둘기들이 구구대고 있었다. 이른 아침, 뼈에 스미는 늦가을의 부슬비에도 불구하고 나를 방에서 이끌어낸 것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종소리였다. 한국에서는 수도원이 아니라면 듣기 어려운, 종탑에서 울려오는 맑은 종소리였다. 종소리의 향방을 좆아 걷는 젖은 거리에 낙엽들이 우수수 떨어져 흩날리고 길모퉁이 처마 밑에서 커다란 개를 끌어안고 잠든 노숙자 앞을 사람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바삐 지나쳐갔다. 낯선 이국의 거리는 아무리 정밀한 지도를 갖고 있다 해도 미로일 뿐이다. 하나 낯선 풍경, 평생 다시 만날 일이 없을 사람들과의 스침, 전혀 해득할 수 없는 언어 속에 놓인다는 것, 일없이 배회할 수 있다는 점을 뺀다면 외국여행의 재미와 의미는 반감되리라. 그것은 일상, 그 익숙하고 길들여진 감옥에서 탈출하여 완벽히 혼자라는 이상한 충족감과 외국인으로서, 이방인으로서, 국외자로서의 예민한 관찰과 감각의 확장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되돌아와야 함에 대비하여 길의 표지판을 눈여겨보는 일도 잊은 채 하냥 종소리를 따라 걷던 나는 문득 따뜻하고 향긋한 빵냄새가 가득한 빵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빵가게 진열장 거울에 내 모습이 담겨 있었다. 나는 집을 멀리 떠나온 자의 불안과 피로로 한결 늙고 남루해 보이는 여자의 모습을,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의 생의 한순간을 마치 영화나 소설 속의 한 장면처럼 오래,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가까운 친척 노인의 병문안을 갔을 때 그 집안의 벽과 장롱에 붙어 있는 거울들이 모조리 짙은 빛깔의 시트지로 가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치매를 앓는 노인네가 자꾸 거울 속으로 들어가려 하기 때문이었다. 거울을 깨뜨려 몸에 상처를 입은 적도 여러 번이라고 했다. 거울이 가려지자 노인은 정말 출구를 잃은 듯 당황해 하였다. 출입문을 활짝 열어놓아도 그곳으로 드나들지 않고 한사코 없어진 거울만을 더듬고 찾았다. 내게는 거울 속 세상으로 들어가려는 노인의 필사적인 안간힘은 치매의 한 현상이라기보다 처절한 회귀본능으로 보여졌다. 우리는 누구나 거울 속의 세상을 꿈꾸고 상상하고 그곳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서의 시기를 거쳐 성인의 세계로 입사한다.
작가마다 글쓰기의 습관이 다르듯 자주 차용하는 장치나 이미지가 있고 그것은 의외로 작가 자신 의도하거나 계산하지 않은 것일 경우가 많다. 내 경우 첫 창작집의 해설을 써준 김현 선생이 ‘붉은 빛’을 잡아낼 때까지 나는 소설집 전편에 차고 넘치는 붉은빛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내 소설 속에 유난히 거울, 아니 거울에 비친 얼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등단작인 「완구점여인」에서부터 주인공은 절망적인 절도행위 후에 “검게 번들거리는 거울면”에 자신의 모습을 비쳐본다. 이후에 쓰게 된 소설 속의 주인공들 역시 내면의 심한 갈등이나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과 혼란스러운 상황, 깊은 상실감과 삶의 균열을 느낄 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거울 앞에 선다.
…… 한쪽 벽에 버티어 선 거울은, 줄줄이 피를 흘리고 있는 버짐투성이의 메마른 계집애를, 슬픔과 증오와 수치심으로 비참하게 일그러진 열여섯 살 사내아이의 초라한 모습을 비추며 오연하게 번쩍였다. 오빠는 참담한 얼굴로 거울을 노려보다가 발길로 걷어찼다. 삽시간에 방은 발디딜 자리도 없이 잘디잔 거울 조각으로, 번득이며 튀어오르는 빛으로 가득 찼다. 저녁마다 화장을 하던 어머니의 얼굴이 천 조각 만 조각으로 깨어졌다……
소녀들이 달 없는 밤, 은장도를 이마에 대고 들여다보는 거울은 땅속에 묻어버린 한 조각 빛의 아우성으로, 깊은 우물로, 우물 속에 사는 전설 속의 금빛 잉어로, 그림자로, 넋을 뒤흔드는 바람으로, 얼음 속에 갇힌 죽은 자의 얼굴 - 죽음의 형상으로 변용되기도 한다.
그것은 계산된 의도가 아니라는 점에서 거의 원형적인 감수성이나 잠재의식의 소산이랄 수도 있겠지만 그 연원에 짚이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나의 놀이 상대는 거울이었다. 유년기 기억의 소산인 소설 「유년의 뜰」에서 기술한 대로 어머니가 시집올 때 해오셨다는 직사각형의 등신대 거울은 피난살이 단칸방에서 유일하게 흠없이 온전하고 훌륭한 물건이었다. 삼팔선을 넘어오는 위험한 길에도 어렵게 간수하여 가지고 왔다는 그 거울을 어머니는 애지중지 아껴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닦았기에 언제나 얼룩 한점 없이 번쩍이며 방 한구석에 버티고 서서 가난하고 황폐한 우리들의 삶과 헌 바가지 속의 풀때기처럼 뒤엉켜 나날이 품위를 잃고 남루해져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거울의 눈으로부터 숨을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잠에서 깨어나 윗목의 요강을 타고 앉아 오줌을 눌 때도 싸움질을 할 때도 허겁지겁 밥을 먹다가도 문득 눈을 들면 거울 속에서 낯설고 부끄럽게 만나지는 자신의 얼굴이 있었다.
나는 식구들이 없을 때면 언제나 거울 앞에서 놀았다. 혼자 노래를 하고 이야기를 하고 거울 속으로 들어가는 공상을 하고 거울을 등에 업고(지고) 방안을 맴돌았다. 들킬 때마다 치도곤을 맞곤 하면서도 왜 내 키보다 컸던 거울을 업고 다녔을까. 나는 어느 날 그예 그 큰 거울을 깨뜨렸다. 거울조각에 찔려 여러 군데 피를 흘렸지만 산산조각이 난 거울을 보며 겁에 질려 울지도 못했던 기억이 있다. 한동안 나는 식구들에게나 이웃사람들로부터 아메리카 인디언식의 ‘거울을업고돌아다니다가깨뜨린계집애’ 라는 긴 별명으로 불리웠었다.
…… 영로를 묻었을 때 그는 그가 묻고 돌아선, 미쳐가는 봄빛을 이기지 못해 성급히 부패하기 시작한 시체가 아니라 한 조각 거울이었다고 생각했었다.
샤워꼭지 밑에서 쏟아지는 더운 물줄기에 몸을 맡기고 섰다가 섬뜩 놀랐다. 거울 속에 내가 없다. 수증기 탓에 거울이 흐려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반드시 있으리라는 것이 없다는 것은 두렵다. 나는 샤워기의 물을 잠그고도 한참을 그대로 거울을 보며 서 있었다. 차츰 수증기가 걷히고 맑아지는 거울 면에 아주 먼곳으로부터 다가오듯 천천히 얼굴윤곽이 살아났다. 잘못 당겨진 천처럼 좌우대칭이 깨진 얼굴.
…… 그때 그는 얼음 밑의 얼굴을 보았다. 투명한 얼음 아래에서 검고 긴 머리칼을 올올이 푼 흰 얼굴이 그를 보고 있었다. 무엇인가 말하려는 듯한, 자신이 만난 낯선 세계에 대한 공포를 나타내는 순간 얼어붙어버린 듯한 눈과 입이 한껏 둥그렇게 열려 있었다……
거울, 거울에 비친 얼굴에 대한 편집증이 스스로 읽어내지 못하는 나르시시즘이든 지나친 자의식의 반영이든, 고착된 이미지이든 한갓 취향이든 나는 그것을 낯설고 무섭지만 아름답고 이상한 세계, 어쩌면 내가 떠나왔고 또 돌아가야 할 곳에의 꿈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러나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던, 흠없이 온전하던 거울을 깨뜨린 ‘거울을업고다니다가깨뜨린계집애’로서의 보속기간은 충분히 지났고 날카로운 조각에 찔려 피 흘렸던 상처는 이제 흔적없이 사라졌다.
어느 결에 종소리는 그치고 나는 거울 앞을 떠나 발길을 되돌린다. 여기가 어디지? 어디로 가야 하지? 거울 앞을 떠나자 방향감각을 잃어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는 낯선 거리, 점차 활기를 띠는 삶의 소음 속에 서서 혼란스러워진 머리로 돌아가야 하는 길에 불안해 하며, 내게 남아 있는 시간들을 뼘으로 재며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