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송기원의 연작소설 『사람의 향기』는 나의 세 번째 독어 번역이다. 대산문학상 수상작인 작품의 번역은 영예인 동시에 원작의 문학성을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중압감 역시 육중하게 다가왔다. 이 소설 역시 한국어로 읽을 때는 보이거나 느껴지지 않다가 막상 번역에 들어가면 돌출되는 많은 어려움을 드러냈다. 이는 작가의 미흡한 문학적 역량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한국어와 독일어 또는 서양어가 가진 언어특성의 차이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이런 문제점들은 이미 여러 번역자들에 의해 『대산문화』에 발표된 바 있기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국제무대에서 우리 문학의 입지를 강화하려면 조속한 개선의 여지가 요망된다. 번역자의 손에서 해결될 수 있는 범위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사람의 향기』를 독일어로 옮기면서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번역자의 역할과 책임감에 대해 느낀 바가 많았다. 한국문학을 외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번역자들이 봉착하는 근본적인 의문은 우리 고유의 표현을 어디까지 살려야 할까 하는 것이다. 미시적 관점에서 보면 번역자의 역할은 한 작가의 원문을 타국의 언어로 충실히 옮겨 작가의 문학성을 알리는데 있다. 그러나 문학작품에는 그 나라의 문화가 녹아내려 있기 마련이기에 거시적으로는 한 나라의 문화를 외국에 알리는 전도사 역할도 부여받았다고 본다. 근자에 한 주간지에서 “언어는 최고의 상품”이란 제목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자국의 언어를 세계에 널리 알려 궁극적으로 그 나라의 문화 수출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한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이런 기치를 들고 전 세계를 상대로 수출 사업을 벌여 엄청난 이익을 챙기고 있는 나라를 들라면 미국, 영국 그리고 호주를 들 수 있겠다. 물론 한국어가 영어에 버금가는 수출 상품이 되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팔짱을 끼고 방관할 일만도 아니다. 문화 수출에 관한 한 이미 영상매체가 선봉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욘사마가 일본에 널리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사람들은 욘사마가 입에 오를 때마다 자연스럽게 한국을 생각하게 될 것이고 한국을 생각하다보면 한국에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이는 것은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이다. 욘사마를 사랑하는 일본은 아시아권에서는 가장 먼저 번역을 문화콘텐츠 사업의 일환으로 활용해 문화 수출에 성공한 나라이다. 가미가제, 하리기리, 닌자, 스시, 기모노, 스모 등은 서양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일본 표현들이다. 이 외에도 수없이 많은 일본 단어들이 브리태니카 사전에 등록되어 있다. 물론 서양인들이 이런 표현에 익숙해지는 데는 일본문학에 등장하는 고유의 표현을 그대로 살려 옮긴 번역자들의 꾸준한 역할이 주요했다. 아무리 낯선 단어라 할지라도 끊임없이 번역서에 올리면 언젠가는 친숙한 표현이 되는 법이다.
번역이 일종의 문화콘텐츠 사업이며 우리 문화를 세계로 수출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공역자와의 심도있는 논의를 거친 끝에 『사람의 향기』에 나오는 “아이고, 서당, 제사, 한복, 추석” 등과 같은 표현을 그대로 살리는 대신 옆에 설명을 달기로 했다. 물론 독일 독자 입장에서는 낯선 단어가 전혀 나오지 않는 번역서가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그렇다고 번역자 입장에서 한 나라의 문화가 담겨있는 표현을 모두 독일 독자가 소화하기 쉬운 독일 표현으로만 옮길 수는 없는 일이다. 번역이 문화수출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더더욱 그렇다.
한복의 경우, 이미 국제 패션쇼에서도 빈번히 소개되었고 우리 겨레가 만들어낸 의상문화의 정화(精華)이다. 이처럼 우리의 의복문화와 역사가 숨쉬는 표현을 독일 독자가 알기 쉬운 표현으로만 옮긴다면 문학을 통한 문화수출을 애당초 포기하겠다는 뜻과도 같다.
“아이고”의 경우는 한복과는 다소 다른 이유로 인해 살리기로 했다. 한국인이 기쁠 때나 슬플 때, 분하거나 아플 때 쓰는 “아이고”란 표현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광범위하다. 언뜻 보면 사소한 표현으로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아이고”는 우리네 정서가 그대로 함유된 소리 표현이다. 그때그때 문맥에 따라 다른 독일어 표현을 적용하는 것보다는 그대로 살려두는 편이 작품 속의 인물들이 표출하는 정서를 더 적확하게 명시한다고 판단되었다. 더군다나 『사람의 향기』에 “아이고”는 총 47번이나 나오기에 설명을 달지 않아도 독일 독자가 그 뜻을 충분히 헤아리는데 어려움이 없으리라 사료되었다.
『사람의 향기』를 번역하면서 얻은 수확이 있다면 앞으로도 더욱더 자신있게 우리 표현을 살려야겠다는 것이다. 번역을 대하는 관점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에 모든 번역자들이 이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번역자들도 문화 수출의 작은 역할을 도모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바이다.
※ 『Menschenduft 사람의 향기』는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아 2006년 3월 독일 Pendragon출판사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