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대산문화재단과 민족문학작가회의가 공동으로 명명한 ‘탄생 100주년’이라는 표현은, 가혹하기 짝이 없는 근대사를 살아온 우리에게 어떤 숙연함을 가지게 한다. 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100년 전에 태어난 그 문학인이 우리 근대문학사의 한 긍정적 모형으로 남은 인물이건, 아니면 반면교사로 남은 인물이건, 우리는 그들이 살아온 시대와 그들이 발화(發話)한 언어들에 대해 먹먹한 눈길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것이 일정하게 국가주의적 감상성을 동반할 위험을 내포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들을 새삼 문학사적 지평으로 정중하게 불러들여 우리의 근대문학사를 다시 한번 먹먹하게 응시하는 일은, 우리의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부실한지에 대해 서늘한 자각을 주기에 충분한 기획이라 할 것이다.

지난 2001년에 시작하여 올해로 다섯 번째를 맞은 이 행사가 ‘해방 전후, 우리 문학의 길찾기’라는 이름으로 지난 9월 29일 열렸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분들은 김광섭(金珖燮), 김태준(金台俊), 김태진(金兌鎭), 김화산(金華山), 마해송(馬海松), 박팔양(朴八陽), 박아지(朴芽枝), 유치진(柳致眞), 이헌구(李軒求), 정인섭(鄭寅燮) 등이었는데, 이날 열린 심포지엄은 문학사적 비중이나 작품적 성과가 상대적으로 문제적인 김광섭, 김태준, 마해송, 박팔양, 유치진 등에 대해 집중적인 시간을 할애하였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문학제 행사는 오후 6시를 넘겨가며 열띤 논의를 이어갔다.

먼저 총론을 발표한 최원식 교수는 ｢나라 만들기, 우리 문인들의 선택｣이라는 글에서, 분단 이후 남과 북에서 각각의 국민문학 구축에 기여한 바 있는 문인들의 궤적을 통해 그들이 통과해온 한 시대를 조명하였다. 그는 해방의 타율성으로 인한 자기비판의 집합적 결여를 지적하고, 분단 시대의 정치적 선택 속에서 갈라진 그들의 문학적 운명을 조감하는 커다란 밑그림을 그려주었다. 다음으로 염무웅 교수는 ｢눌변의 시학｣을 통해 ｢성북동 비둘기｣를 비롯한 김광섭의 후기시가 고평된 측면이 있다고 보고, 민족주의 우파 문인으로는 유일하게 감옥살이를 했던 김광섭의 후기 행적이 타협적 민족주의의 실현이라고 보았다. 말하자면 김광섭의 정치적 지향과 문학적 성취 사이의 연관성을 성취와 과오의 차원에서 균형있게 검토한 것이다. 이날 홍정선 교수가 책임 편집한 󰡔이산 김광섭 시전집󰡕과 󰡔산문집󰡕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발간되어 더욱 자리를 빛내주었다.

이어서 김태준에 대해서는 두 명의 발제자가 나섰다. 김재용 교수의 ｢김태준과 민족문학론｣과 정혜경 교수의 ｢󰡔조선소설사󰡕의 탈식민적 가능성｣이 그것이다. 김태준은 평북에서 출생하여 이희승, 조윤제 등과 조선어문학회를 결성하였고 조선공산당 활동을 하였다. 8․15 폭동음모사건 관련 체포되어 1949년 사형당한 문제적 이력을 가지고 있는 그는 󰡔조선한문학사󰡕, 󰡔조선소설사󰡕 등을 펴냄으로써 일제 시대의 대표적인 국문학 연구자로서 자신의 위상을 확고히 한 바 있다. 김 교수는 해방 직후의 민족문학론 수립 과정에서 김태준의 역할을 규명하고, 이를 일제하의 문제의식의 연장선으로 파악하였다. 국제주의와 조선적 특수성 사이의 균형이 해방 후 그의 민족문학론을 가능케 하였고, 그 연속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그의 연안(延安) 체험이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정 교수는 󰡔조선소설사󰡕에서 김태준이 보여준 비교문학적 접근이, 소설 형성 과정을 입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으며, 일제 강점기에 식민주의를 극복하는 담론을 형성해주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이러한 발표들이 끝나고 우리는 김광섭과 김태준이 상이하게 걸어간 해방 전후의 정치적․문학적 행적에 새삼 주목하면서, 그것이 우리 근대문학사의 비극적 파행을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표지(標識)임을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일제 말기는 ‘국민문학’이라는 상황적 강제에 의해, 그것을 어느 정도 내면화하고 양식화하는가에 따라 문학사적 스펙트럼이 펼쳐지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였다. 그러한 상황이 극단의 정점으로 치달았을 때 “도적처럼”(함석헌) 찾아온 해방은, 우리에게 모처럼 자주적인 국민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기회와 과제를 부여하였다. 그만큼 해방 후의 정치적․문화적 움직임은 자주적인 국민국가의 건설이라는 과제와 분단 극복을 통한 통일의 완성이라는 과제를 중심으로 하여 진행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내적 역량이 채 정비되지 못한 데다 외세가 깊이 개입하면서 우리는 엄청난 갈등을 겪으면서 궁극적으로 분단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 같은 시대적 성격은 문학인들에게도 고스란히 관철되었는바, 김광섭이 택한 분단 조국의 남쪽 이데올로그로서의 노선과 김태준이 자임한 통일전선의 구체화라는 노선은 선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우리 근대문학사의 균열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어서 원종찬 선생이 ｢해방 전후의 민족 현실과 마해송 동화｣를 발표해주었다. 강대국의 약소국 침탈과 제국주의 세계 질서를 풍자한 ｢토끼와 원숭이｣를 중심으로 마해송의 삶과 문학 활동을 재조명하였다.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발표 시간에 아동문학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청중으로 다수 참여하셨고, 토론자로 나선 김용희 선생이 아동문학가들에 대한 그동안의 문학사적 홀대를 지적하면서 앞으로 이런 행사에서 아동문학에 헌신한 문학인들을 적극 평가해야 한다고 역설한 점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아동문학이나 수필문학 같은 범주를 주변부로 몰아세웠던 우리 학계에 대한 연구사적 반성이 요청되는 순간이었다.

이어서 필자가 ｢현실성과 서정성의 갈등과 통합｣을 통해 박팔양은 근대 시사의 다양한 정신적 단면을 자신의 화폭에 두루 담아낸 개성적 시인이었으며, 그의 시적 기조는 한결같이 현실성과 서정성 사이의 갈등과 통합이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식민지 근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시 내부로 응축해 들어가는 서정적 집중을 통해, 당시 프로시가 걸어갔던 서사화 경향과는 다른 미학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주된 논지였다. 다만 ‘카프→구인회→만주→월북’으로 이어지는 그의 정신사적 방황의 정치적 의미를 검토하여 해방 전후의 그의 행보를 규명하는 것은 다음 기회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마지막으로 양승국 교수는 ｢유치진 초기 리얼리즘 희곡의 구조와 의미｣를 통해 한국 근대 연극사의 주류인 리얼리즘 희곡을 확립한 유치진 초기 희곡의 구조적 성격을 재검토하였다. ｢토막｣에서 ｢소｣에 이르는 길을 통해 유치진 희곡의 리얼리즘적 속성과 방법적 특성을 희곡사적 지평에서 재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친일 희곡을 다수 남겼고 분단 후 연극계의 주류로 부상한 유치진의 정치적 행적에 대한 해석은 다음 기회로 미루어졌다.

결국 이들의 이러한 해방 전후의 행적들은 우리 근대문학사를 구성하는 풍부한 형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비록 분단과 전쟁이 차례로 이어지면서 근대사가 또 다른 미궁으로 빠져든 것이 역사적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해방은 우리에게 재건의 가능성을 충만하게 주었던 역사의 한 정점이었음에 틀림없다. 우리가 분단 시대를 통해서 줄곧 이날을 ‘광복(光復)’이라는 말로 지칭해온 것도 이러한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치적 어둠을 뚫고 나온 한 줄기 ‘빛의 회복’이라는 뜻의 이 명명은, 해방을 맞은 감격의 밀도가 얼마나 강렬했는가를 보여주는 비유적 표현이자, 앞으로의 역사가 밝고 긍정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믿음을 내포한 낭만적 표현이기도 하였다.

아무튼 해방은 우리에게는 식민지 파시즘 체제의 종언을 뜻했고, 동시에 새로운 역사의 전개에 대한 충일한 변혁 의지를 안겨준 사건이었으며, 이후 펼쳐지는 분단 체제의 첫 단추가 되는 비극의 진원지이기도 하였다. 우리가 이들 문인들의 정치적․문학적 분화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 근대사가 분단이라는 또 하나의 불구형으로 수렴되는 과정을 ‘먹먹하게’ 바라보게 되는 것은 이 같은 해방의 중층적 속성에 대한 추인과도 깊이 연관되는 것이다. 결국 해방은 우리 역사의 물줄기를 정치적․언어적․윤리적 근원에서부터 바꾼 전기를 마련했으면서도, 분단 체제가 형성․완결되면서 미완의 가능성을 안고 역동적인 자기 전개를 멈추게 된다. 그 멈춤의 지점에서 이들의 언어와 행보를 바라보는 일이 이번 행사의 의미였던 것이다.

근대문학의 창(窓)을 통해 해방 전후의 풍경을 응시한 뜻깊은 행사가 끝나고 나와보니, 서울의 상공에는 ‘성북동 비둘기’도 자취를 감추었고, ‘연안(延安)’이라든가 ‘만주’라든가 ‘고쿠민분가쿠(國民文學)’라든가 하는 당시 동아시아를 감쌌던 치열했던 기표들도 망각한 채 도심의 현란함만이 우리를 감싸안아 주었다. 바로 앞에 늘어선 대형 언론사의 커다란 비전에서는 ‘과거사 청산’과 ‘국가 정체성 시비’라는 상극(相剋)의 언어가, 요란한 굉음으로 그날을 재현하는 듯, 우울하게 우리 눈을 적시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