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영국 극예술의 황금기로 일컬어지는 엘리자베스/제임스 1세 시대를 대표하는 극작가는 물론 셰익스피어다.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너무도 유명한 바람에 또 하나의 당대 최고의 극작가이면서도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는 바로 벤 존슨이다. 사실 두 극작가는 오랫동안 돈독한 교분을 나누던 친구 사이였다. 그들의 교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존슨은 셰익스피어가 세상을 떠나고 7년 뒤에 나온 셰익스피어 작품집에 서문 형태로 ｢사랑하는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씨와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것을 기억하며｣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시대의 영혼이여! / 갈채이며, 환희이며, 우리 무대의 기적이여! / 나의 셰익스피어여, 일어나시오!…… / 그는 한 시대의 인간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인간이었다오!”라는 구절이 보여 주듯, 존슨은 셰익스피어를 향해 최고의 찬사를 보냈던 것이다.

셰익스피어와 존슨은 절친한 친구 사이였지만, 그들의 작품을 비교해 보면 극예술에 대한 접근 태도가 얼마나 달랐던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셰익스피어가 극예술의 전통에 제약을 받지 않은 채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했다면, 존슨은 삼일치의 법칙 등 고전적 극예술의 전통을 성실하게 지키면서 창작 활동을 했다. 사실 정규 학교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던 셰익스피어와는 달리 존슨은 당시의 명문인 웨스트민스터 학교를 졸업하는 등 대단한 학식의 소유자였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존슨은 결투에서 동료 배우를 살해한 죄로 교수형에 처해질 뻔했으나, 유창한 라틴어 실력으로 이를 모면했다고 한다. 당시 사법 처리 과정에 성직자에게는 일반인과 달리 특권이 주어졌는데, 그는 성직자가 아니었으나 유창한 라틴어 실력으로 성직자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라틴어뿐만 아니라 희랍어에도 능통해 있었는데, 어쩌면 이런 사정이 그에게 극예술의 고전적 전통에 적극적 관심을 갖게 했는지도 모른다.

작품의 경향을 보아도 존슨은 셰익스피어와 차이점을 보이는데,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대체적으로 인간의 심리를 깊이 있게 천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존슨의 작품은 당대 영국 사회 - 특히 런던으로 대표되는 도시적 삶의 사회 - 의 저변을 밀도 있게 풍자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당대 영국 사회의 인간들이 보여 주는 탐욕과 허위의식을 풍자적으로 묘사하는 데 발군의 능력을 보였던 존슨이 그의 작품에서 다루었던 인간성의 문제적 측면들은 당대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의 특징적 측면이기도 하다. 바로 여기에 우리들이 존슨의 작품에 적극적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놓인다.

하지만 그 동안 존슨의 작품에 대한 우리 문화계의 관심은 무시해도 좋을 만큼 지극히 미미한 것이었다. 과문한 탓일지는 몰라도, 몇몇 대학에서 강의와 연구 대상이 되고 있긴 하나, 우리나라에서 그의 작품이 번역되거나 연극 무대에 올려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 점을 감안하면, 존슨의 「볼포네, 또는 여우」(이하 「볼포네」로 약칭)와 「연금술사」에 대한 임이연의 번역은 대단히 값진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교활한 인간 볼포네가 와병을 구실로 하여 주위 사람들을 타락과 불의로 이끌다 결국에는 제 꾀에 넘어가 죄과를 치르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볼포네」 및 주인이 없는 사이에 사기꾼 연금술사와 창녀를 집으로 불러들여 온갖 방법으로 남의 재물을 옭아내는 하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연금술사」는 존슨이 남긴 풍자 희극 가운데 백미로 꼽히는 작품으로, 최소한 이들 작품에 대한 번역만이라도 진작에 이루어졌어야 했다.

흔히 하는 말이긴 하지만, 17세기 초엽의 영어로 씌어진 문학 작품을 번역하기란 결코 만만치 않다. 당시의 영어와 오늘날의 영어를 비교할 때 어휘의 의미나 문장의 스타일에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존슨의 언어는 어렵기로 정평이 나 있거니와, 결코 쉽지 않은 셰익스피어의 언어보다 접근이 한결 더 어렵다. 이로 인해 존슨의 작품에 대한 우리말 번역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임이연은 정확하면서도 유려한 번역을 통해 우리나라의 영문학자들에게 지워진 채무 하나를 덜어 주었다.

하지만 옥에서 티를 발견하는 심정으로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전체적으로 무리가 없는 번역이긴 하나, 어투나 호칭 등이 부자연스러운 경우가 더러 눈에 띄기 때문이다. 예컨대, 「연금술사」에는 황금을 탐하는 기사 매몬에게 도사연하는 사기꾼 서틀이 “자네가 조급해하거나 육욕을 범할까 두려운 마음이 드는구나”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자네가 조급해하거나 육욕을 범할까 두려운 마음이 드는군”으로 바꾸는 것이 어떨지? 그리고 또 다른 사기꾼인 하인 페이스를 “대장” 또는 “장군 각하”로 칭하는 것이나 창녀 돌이 귀부인 행세를 하면서 매몬과 만나 그를 “경”으로 지칭하는 것 등도 부자연스럽다. 영어의 “캡틴”(captain), “로드 제너럴”(lord general), “써”(sir)를 이처럼 번역한 것인데, 좀더 자연스러운 표현을 찾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특히 우리말에서 “경”을 대명사로 사용하는 경우는 임금이 신하를 지칭할 때임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드물지만 번역의 정확성 면에서도 문제가 눈에 띄기도 하는데, 한 예로 「볼포네」의 끝 부분에서 볼포네가 청중을 향해 “이제, 이 여우가 법에 의해 처벌되더라도, 여러분께 뭔가 잘못을 저질러서 벌을 받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는 부분을 보자. 이 말은 마치 “벌을 받는 일”이 “여우”에게 없기 바란다는 쪽으로 읽히기가 쉬워, 그 뒤에 나오는 말인 “그렇다면, 여우를 비난하세요”와 잘 연결되지 않는다. 원문을 참조해서 다시 번역하면, “이제, 이 여우가 법에 의해 처벌을 받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바라는 것이 있으니, 여러분의 마음에 거스르는 일을 저지름으로써 고통을 안겨 드린 것은 아니었기를”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 번역도 “행여 고통을 느끼셨다면, 이 여우를 비난하세요”가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물론 이 같은 문제점들은 전체적인 번역을 놓고 볼 때 지극히 사소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작품을 실제로 무대에 올리고자 할 때에는 고려 사항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려운 번역 작품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역자에게 찬사를 보내면서도 이 같은 지적을 함은 「볼포네」나「연금술사」와 같은 작품이 어서 빨리 우리의 연극 무대에 올려지기 바라는 충정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