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판의 가을은, 매 해 그러하듯, 이런저런 문학상 수상자 발표와 시상식, 뒤풀이로 부산했다. 뭐든 맺는 때와 자리면 으레 상을 주고받는 - 하다 못해 감사패나 공로패, 경품이라도 - 풍속이 맺음의 형식을 완성하는 성격도 있다는 의미에서, 가을은 문학의 한 해를 결산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 의미와 무관하게 상(賞)의 논리와 형식은 불가피하게 폭력적이다. 줄 세우기의 형식이 그렇고, 주관적이고 다분히 우연적인 서열화의 논리가 그렇고, 원하든 않든 그 대열에 포섭돼야 한다는 현실이 그러하다. 그러니 덕담과 축하의 말잔치에는 으레 뒷말도 섞이기 마련인 바, ‘누구’를 흠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한 이 뒷말들이 올해도 적지는 않았다. 올해 문학상의 화제 가운데에는 한국일보문학상도 포함되지 않을까 싶다. 38년을 이어 온 이 상은 올해 등단 3년차의 25살 젊은 작가가 차지했다. 5시간 가까이 이어진 격론과 논의의 출렁임 끝에 심사위원들은 ‘계급장 떼고 작품만 보자’는, 어쩌면 당연한 원칙을 재확인했다. 심사 대상에 든 작가의 나이 경력 성취 평판 경향 인연 친소관계는 물론이고 심사의 직ㆍ간접적 영향과 파장까지 덮고 본심에 오른 작품만 보자는 것이었다. 운 좋게 그 자리에 끼여 앉아 구경꾼으로서 느낀 신선함이, 지금껏 알게 모르게 젖어있던 모종의 불온한 편견 탓인 듯해 오히려 당혹스럽고 민망했다. ‘표절’ 논란이 있었다. 한 작가의 소설집에 든 작품의 일부 서사가 어떤 이의 수필집 내용을 차용했다는 게 논란의 대강이었다. 그 작품집이 한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논란의 수위가 증폭된 듯도 하다. 소설가가 서사를 얻는 경로는 다양할 것이다. 자신의 내밀한 체험일 수도 있고, 주워들은 이야기나 책의 한 구절, 신문 기사나 인터넷, CF의 한 장면일 수도 있다. 작가는 그것들을 만지고 키우고 버무려서 자신만의 문체와 감각을 통해 생기를 불어넣는 존재다. 소설의 서사는 어쩌면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재구(再構)되는 것이며, 작품의 성취는 서사의 내용 못지않게 재구의 방식에 의해 평가되는 것 아닐까. 다만 서사 모티프의 출처를 공개하는 문제에 있어, 작가의 성의(혹은 예의)가 아쉬웠다는 지적은 적지 않았다. 우리가 주빈국으로 참가한 ‘2005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이 열렸다. 평가가 다소 엇갈리기는 하나, ‘무난했다’ ‘그만하면 성공이다’는 평가가 우세한 듯하다. 행사의 화제는 단연 한국과 독일 작가들의 친선축구대회가 아니었나 싶다. 등산화를 신고 경기에 나선 누구는 뛴 시간보다 잔디구장에 뒹군 시간이 길었을 것이라고도 하고(잔디구장에 등산화는 쥐약이다), 시합 전 섣부른 비관론을 폈던 누구는 선배들로부터 ‘패배주의자’란 엄중한 질책을 받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마라톤으로 다진 체력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뛰고 빛나는 한 골을 성취한 누구는, 스코어가 10대0으로 밀리던 상황에 독일 헤센방송국이 청한 인터뷰에서 “우리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전의를 불태웠다고. 결과는 15대3으로 석패. 우리측 골키퍼의 선전에 힘입은 선방이었다는 평가였다. 한편, 여러 차례 국제도서전 행사에 다녀온 바 있는 출판계 한 관계자는 예년과 달리 올해는 기념품과 간식거리가 눈에 띄게 줄었더라고 전했다. 그는 “해마다 미국쪽은 소소한 기념품들을 많이 나눠줬고, 유럽쪽 부스에는 사탕이며 비스킷 등 먹을거리가 풍성했는데 올해는 거의 자취를 감췄더라”며 출판시장 사정이 다들 어려운 탓 아니겠냐고 했다. 17년간 한국 소설만 고집스레 출판해 온 ‘문이당’이 최근 프랑스 작가의 소설을 번역 출간한 데 이어 일본 작가의 작품을 계약하는 등 해외 문학으로 눈을 돌린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와중에 ‘김영사’는 문학쪽으로 한 발 다가서 몇몇 시인의 산문을 시작으로 점차 시·소설 쪽으로도 지평을 넓혀갈 참이라 한다. 최근 선집(6권)을 낸 장정일 씨의 행보도 주목된다. 칩거하다시피 해 온 그가 방송 책 소개 프로그램 사회자로 나서고 대학에서 시창작 강의를 맡더니,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재개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시 쓰는 법을 잊어버렸다”던 그의 새 시를 조만간 보게 될지 모르겠다. 90년대 한국 문단을 주름잡던 소설가 이순원 구효서 박상우 윤대녕 씨가 약속이나 한 듯 작품집과 장편소설을 출간하며 건재를 과시했고, 김이듬 김근 등 젊은 시인들의 첫 시집들이 풍성했다. 박남철 이윤학 정일근 허수경 시인의 시집이 눈길을 끌었고, 천운영 씨가 첫 장편소설을 발표해 호평을 받았다. 소설가 김형경 씨는 한류스타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된 영화의 시나리오를 소설로 출간, 영상문화 시대의 문학의 자리를 묻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52세의 소설가 이인성 씨는 이번 학기를 끝으로 서울대에 교수사직서를 제출, 전업을 선언했다. 문학수첩의 ‘해리포터’ 시리즈가 6권(초판 100만 부)을 출간하며 통산 1,000만 부를 돌파, ‘이문열 삼국지’의 기록(1,400만 부)에 육박했고, 70년대 말 첫 선을 보인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2005년 개정판(28권)에 박범신 윤후명 이순원 이혜경 이승우 박상우 이응준 이만교 씨가 이름을 올렸다. 문청(文靑)들의 말수가 적어지고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한다는 11월이다. 그들의 겨울이 따뜻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