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로의 한 노천카페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이강백(오른쪽)과 김명화   © 운영자

Ⅰ. 1994년 봄날 오후에 나는 혼자서 극작가1) 이강백 선생을 훔쳐본 적이 있다. 예술의전당 미술관 앞 광장이었다. 바야흐로 해빙의 무드 속에서 그 미술관은 민중미술을 전시하고 있었지만, 역시 해빙의 분위기라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차였다. 덕분에 미술관 앞 광장도 전시장을 둘러보고 나와서 볕을 쬐던 나 혼자 독점하고 있었다. 마치 무대에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타나 연극의 흐름을 바꾸듯, 갑자기 미술관에서 이강백 선생이 걸어 나오셨다. 빠른 보폭이었더라면 나는 선생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선생은 어린 시절에 소아마비를 앓으셨고 빨리 걷지 못하신다. 슬로 모션처럼 그가 천천히 광장을 가로지르는 동안, 극작가로 등단하지 못해 안달 중이었던 나는 선망의 눈으로 선생의 보행을 눈이 빠져라 지켜보았던 기억이 있다.
사소한 사건이지만 그 해 가을 선생이 「불 지른 남자」를 발표하는 바람에 그 봄날의 일화는 내 기억 깊숙이 각인되고 말았다. 지금은 아룽구지로 개칭된 옛 성좌소극장에서 채윤일 선생이 연출했던 「불 지른 남자」는 선생의 구십 년대 대표작 중 한 편이다. 주인공은 미국문화원에 불을 지른 죄로 투옥되었다가 해빙의 분위기 속에 출감한 방화범으로, 뒤바뀐 세상에 느닷없이 나타난 사상범의 눈을 통해 해빙의 시대를 조명한 작품이었다. 현실 역사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그 현실을 추상적으로 여과해 온 선생의 작품 편답치곤 꽤 직설적인 작품이었고, 포스트모던이 회자되며 너도나도 말랑말랑해지던 그 시기에 그렇지 않은 작품을 만날 수 있어서 관객의 감회도 남달랐던 공연이었다.
그런 작가의식도 좋았지만, 그 작품이 개인적으로 나를 사로잡았던 이유는 주인공이 친구를 만나기 위해 잠깐 들렀던 민중미술 전시관 장면 때문이다. 어두운 객석에서 나는 왕가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빠른 템포로 진행되던 시퀀스들이 어느 순간 정지할 때처럼 가슴이 철렁했다. 머리 속에서 지난 봄에 미술관에 들렀던 선생의 행보가 그 장면과 빠르게 연결되었고, 한 작가가 한 편의 작품을 쓰기 위해서 들였던 시간의 흔적들이 막연히 짐작되었다. 극작가의 길이 한 순간의 영감으로 한 세계를 구축하는 화려한 일이 아니라, 세상을 더듬거리며 만지고 관찰하고 생각을 곱씹는 작업이라는 것을 예감하게 된 것이다. 내가 그토록 열망하던 극작가의 길이 고독하고 지난하리라는 예감에, 젊은 나는 객석에서 코가 시큰해질 정도로 감동한 것 같다. 그런데 이제 선생을 만나 깊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겼다. 미술관 앞 광장으로부터 십년이 흘러 나는 그토록 원하던 극작가가 되었고, 내가 예감했던 고독과 지난함은 겪어보니 감동이 아니라 끔찍함이며, 그 끔찍함을 이기지 못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작품 쓰기완 무관한 시간들이 많아지는 중이다. 그러나 그 동안에도 선생은 일년에 한 편 정도씩은 꼭 신작을 발표하는 중이고, 이 가을에도 신작 「맨드라미꽃」의 공연을 앞두고 있다. 그 꾸준함의 비결이 무엇인지, 어떻게 유신시대부터 민주화를 거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이르기까지 그토록 부침이 많은 역사를 현재진행형의 작가로 견디어냈는지, 글쓰기로 종결되지 않고 공연이라는 다음 단계를 겪어야 하는 희곡의 고독한 이중성을 감내했는지, 나는 지금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Ⅱ. 그런데 이를 어쩌나. 막상 만나보니 그가 이야기 하려 하지 않는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긴 하였지만,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할 뿐이다. 대신 그는 진행되는 연극의 변화에 대해 진단하고 싶어 했고, 마침 내가 잡지에 실린 선생의 신작을 읽고 왔노라 했더니 반응이 어떤지 궁금해 하신다. 그의 출발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고 하면 출발 당시의 문화적 분위기나 연극의 위상에 대해 들려주고, 과거 그가 누구의 영향을 받았느냐고 물어보면 현재 읽고 있는 한국의 판소리나 셰익스피어에 대해서 이야기해 줄 뿐이다. 마치 그의 작품 같았다. 현실에 대해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보편적인 비유로 인간세상을 그려나가는 그의 비유극처럼, 그래서 독자와 관객이 작가의 의도를 정면으로 이해하는 대신에 이리저리 머리 굴려 추론해야 하는 것처럼, 그와의 인터뷰도 관찰하고 헤아리고 추론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인터뷰 시간은 장소를 옮기며 길어졌고 나는 당신의 속을 보여 달라고 한두 번 떼를 썼으며, 다행히 곁을 보여주려 하지 않던 그도 속을 짐작할만한 단서 정도는 몇 가지 던져주었다. 가령 내가 인상 깊게 들었던 첫 번째 단서는 이런 것이다. 세상 모두가 고독하고 불우했으리라 짐작하는 그의 청년기, 홀로 있었던 그 시간들이 사실은 그가 여타의 작가들과 다른 글을 쓸 수 있었던 원동력, “축복의 시간” 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만 말하고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아마도 인터뷰만 하면 같은 질문이 반복되는 것이 귀찮았을 것 같기도 하고, 그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투명하게 수용하는 대신에 적당히 미화하거나 왜곡하는 세상의 귀와 혀에 마음의 문을 조금 닫아 건 것처럼도 보였다.
한 명의 독자로 그의 고독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나는 그 침묵이 좀 섭섭했다. 첫 번째 희곡집에서 선생은 자신의 초기 작품들에 나프탈린처럼 고독이 배어 있다고 고백하기도 하였고, 얼음처럼 차가운 새벽공기 속에서 어젯밤보다 수천 배나 더 넓어진 황야를 지키는 쓸쓸한 「파수꾼」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도 나를 매혹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명의 작가로 나는 선생의 침묵이 옳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가십이 아니라 작품이다. 여전히 세상은 작가에 대한 정보를 기준 삼아 작품을 읽어나가거나, 혹은 반대로 작품을 기준 삼아 작가를 넘겨짚으려 한다. 그렇지만 작품은 작가를 넘어서서 투명하게 존재하는 영역이고, 한 명의 작가는 그렇게 쉽게 넘겨짚을 수 있는 단순한 존재가 아닐 것이다. 나는 그의 단서를 그저 내 경험에 비추어 그 정도로 이해하기로 하였다.

▲ 이강백    © 운영자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선생의 집요함과 스케일이었다. 선생은 내내 연극에 대해서만 이야기 했다. 역시 희곡을 쓰시는 윤조병 선생이 잠깐 합류하여 저녁 식사를 같이 하던 시간을 제외하곤, 정말 연극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희곡만 쓰는 세 작가가 함께 한 그 저녁식사는 소박하고 유쾌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선배 작가들과 인간적인 자리를 함께 한 기억이 많지 않다. 다른 극작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골방에서 혼자 작업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극작가들은 본능적으로 사람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혼자 있는 고독함 보다는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고독함이 더 크고, 극장 로비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하는 시달림에 고통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조병 선생이 떠나자, 그는 다시 자신의 집요한 주제로 돌아갔다. 때론 최근 그의 작품 경향처럼 구체적이고 작은 이야기를 들려주기기도 했고, 때론 마틴 에슬린과 셰익스피어가 등장하는 멀고 큰 이야기도 있었다. 인터뷰 내용을 점검해보니, 멀고 큰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가령 그는 유럽 현대극의 진로를 놓고 고민했던 에슬린의 예를 들며, 우리의 연극이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 탐색 중이었다. 영화에서 게임에 이르기까지 삶의 전 분야에 드라마가 범람하지만 실질적인 연극은 상업극과 소극장 연극으로 분열되어 구심점을 찾기 어려운 이 시대에, 셰익스피어나 몰리에르처럼 한 시대를 대표할 작가가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해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극작가는 한 시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적 글쓰기에 대해서 고민해야 하고, 자신의 비유극이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고 넌지시 알려주기도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문득 나는 그의 스케일에 압도 되었고, 이 결백해 보이는 작가의 야심이 엄청나다는 사실에 혼란을 느꼈으며, 현상적인 글을 간혹 쓰는 나를 이런 식으로 야단치는 것은 아닌지 어림짐작하기도 했다. 그리곤 다시 환원적인 생각, 어쩌면 그의 심대한 야망이 희곡의 장르적 운명, 혹은 극작가로 가져야 할 당위적 전제라는 생각도 들었다. 공연을 통해 비로소 생명을 확인받는다는 점에서 희곡의 생명은 짧기도 하고, 세속적인 시간을 초월한다는 점에서 길기도 하기 때문이다. 호머의 서사시를 제대로 읽는 독자는 드물더라도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은 아직도 세상의 도처에서 꾸준히 연구되고 공연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 김명화     © 운영자

그러고 보니 나도 예전에 비슷한 발언을 해서 한 기자를 아연하게 한 기억이 있다. 그리스 비극을 해체했던 내 작품을 설명하다가 사르트르의 「파리떼」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다. 시를 쓰기도 하는 경향신문의 김중식 기자는 그 순간 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얼굴로 - 십중팔구 주제 파악을 전혀 못하는 바보를 만났다는 얼굴로 - 사르트르와 비교하는 것은 너무 큰 것이 아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시인의 입장에선 황당한 비교겠지만 장르의 관습이 까다로운 희곡에서는 그런 비교들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다. 희곡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극작가들은 무수한 전범들, 심지어 기원전의 전범들과도 씨름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강백 선생은 나보다 더 척박한 시절에 희곡을 선택했고, 구체적인 모델이 부족한 한국적 현실을 견디려면 셰익스피어부터 브레히트에 이르는 거대한 기준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미루어 짐작했다.
그러나 시대를 초월한 작품세계를 꿈꾸면서도 그는 현실적인 시간의 변화에 고민하는 눈치였다. 관객이야말로 연극의 내용과 형태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인데, 한국적 근대의 가속도 속에서 이 결정적인 요소들이 질풍노도, 맹렬한 속도로 변화를 거듭하기 때문이다. 아직 젊은 작가인 나조차도 그 속도에 현기증이 나는데, 선배작가들이 느낄 위기감은 아마 더 할 것이다. 문득 지난 90년대의 한 공연 프로그램에서 극장을 메운 젊은 관객들, 더 이상 성찰하지 않고 감각에 탐닉하려는 젊은 관객들과 자신의 연극이 교감할 수 있을지 회의하던 그의 글이 떠올랐고, 나는 조금 가슴이 아팠다. “허리케인이 와서 공기가 바뀌듯” 전체성을 강조하는 억압의 시대에 진지한 연극을 지지해주던 관객들은 일순간 모두 사라져버렸고, 관객의 공감을 전제로 글을 썼던 과거의 작가들은 이제 공룡의 알인지 황홀한 미래인지,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새로운 관객과 대적해서 또 새로운 무기를 암중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모색 속에서 그는 지금 공식과 인간 사이에서 고민 중인 듯 했다. 작품을 쓰던 칠십 년대 초기부터 지금까지, 극작가로서 그에게 중요한 작업은 인간과 세상을 규명할 공식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구체적인 현상 너머에 불변의 공식이 있을 것이고, 작가는 그 공식을 드러내는 사람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초기의 그런 작가의식은 관객과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서 차츰 장식이 붙고 희석된 경향이 있다고 그는 진단하면서, 앞으로 쓰고 싶은 것은 다시 장식 없이 명징하게 삶의 공식을 드러내는 뼈만 있는 작품이라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그는 바로 그 고백에 뒤이어 칠십 년대의 「파수꾼」이, 그 작품에 나타난 공식이 과연 인간 삶의 복잡한 결을 규명할 수 있는지 회의하였다. 어쩌면 세상의 공식보다도 인간 자체를 제대로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할 지도 모른다며, 뼈만이 아니라 살까지 갖춘 인간을 그릴 때가 된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아마 신작 「맨드라미꽃」은 그런 갈등과 고민이 내포된 작품일 것이다. 최근 들어 선생의 관심사는 메타적 주제로 흘러가는 중인 듯 했다. 배우의 존재를 성찰한 전작 「배우우배」도 그렇고, 허름한 하숙집을 공간 삼은 「맨드라미꽃」도 이면을 들여다보면 지어낸 이야기(허구)가 불러일으키는 파장을 다룬 것으로, 허구가 사실과 같은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연극의 공식을 구축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공식의 한 쪽에 그 동안 선생의 작품에서 배제되었던 삶의 냄새, 누추하고 옹색한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이다. 현상 너머의 명징하고 본질적인 공식과 불투명하고 잡다한 현상들이 과연 어떻게 만나질지, 우리가 흔히 이강백 스타일의 연극이라고 불렀던 그 비유의 영토는 또 새로운 지평을 모색 중인 듯 했다.
인터뷰는 그 정도에서 끝났다. 그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고 판단한 것 같았고, 나는 그처럼 오랫동안 작품을 썼고 한 세계를 구축한 작가가 여전히 고민하고 변화를 모색 중이라는 사실에 눌려서 더 붙잡지 못했다. 후배작가로서의 나의 고민을 하소연하고 싶던 처음의 욕망은 서리 맞은 꽃처럼 사그라졌고, 이제 겨우 다섯 편의 희곡을 발표해 놓곤 절망에 압사하기 직전인 내가 엄살의 여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짐이 있어서 차가 있는 곳까지 바래다 드리고 싶었는데, 선생은 굳이 혼자 가신단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선생을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내가 알게 된 것들은 그저 짐작이거나 내 욕망이 해석한 무엇일 것 같기도 하고, 모를 부분들은 굳이 알아 뭐하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선생이 연극과 작품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 싶어 하시니, 그걸 알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그의 희곡을 제대로 읽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언젠가 그의 작품 속에 녹아있는 공식을 찾아낼 수 있다면 혹은 현상만이 아니라 현상 너머의 본질을 공식화한 김명화의 비유극 한 편만 쓸 수 있다면, 그것도 참 좋을 것 같았다.

Ⅲ. 선생의 신작 「맨드라미꽃」에는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맨드라미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등장인물 중에는 그 꽃을 알아보고 마치 사람을 대하듯 밥을 먹이는 사람도 있고, 해바라기 꽃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으며, 아예 존재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정말 맨드라미꽃이 존재했는지 모두가 알 수 없어지는 상태에서 막이 내린다. 나는 그 비유가 좋았다. 마치 그 꽃은 어느 날 문득 사람의 마음속에 돋아났다가 눈 녹듯 사라지는 욕망 같기도 하고, 무대 위에 올라갔다가 자취를 감추는 연극 같기도 하며, 지구보다 더 천천히 흘러가는 행성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이유 없이 태어나고 사라지길 반복하는 인간들의 모습 같기도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