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조경란_소설가. 1969년생. 소설『불란서 안경원』『나의 자줏빛 소파』『코끼리를 찾아서』『국자 이야기』『식빵 굽는 시간』『가족의 기원』『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등
이번 학기에는 일주일에 한번씩 Y대학에 가서 학생들에게 ‘소설쓰기'라는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팔자에도 없는 선생 노릇을 잠시 하게 된 셈이다. 그 일이 또 생각만큼 만만치가 않아서 시간을 꽤 쏟아 부어야 하고 수업을 어떻게 지루하게 하지 않을까, 고심하기도 했다. 그래서 몇 가지 고안을 짜낸 것이 있다. 세 시간짜리 수업 중, 한 시간 반은 학생들이 써서 제출한 소설을 텍스트 삼아 합평회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단편소설 한 편씩 소개하여 매주 그 소설을 복사해서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는 한다. 소설을 복사해서 읽게 된 이유는 물론 책을 사는 것을 학생들 대다수가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책이라는 건 사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첫 수업 시간에 나는 좀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드러낸 채 그렇게 물었다. 자취를 하고 있다는 한 학생이 손을 번쩍 치켜들더니 그것이 자신에게는 큰 부담이 될 거라고 하였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내가 소개한 소설을 갖고 있는 학생이 그 책을 학교 복사실에 맡겨, 다른 학생들이 그걸 돈을 내고 찾아가는 형식으로 읽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책을 읽는 게 어디냐. 갑자기 나는 안도가 되는 것을 느꼈다. 수업을 하면서 내가 놀랐던 여러 가지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문학을 하겠다는 학생들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혹은 내 기대만큼)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한국소설은 물론이고 외국소설은 일본 소설을 제외하곤 거의 읽지 않는 것 같았다. 수업 시간마다 나는 여태 내가 읽어왔던 좋은 소설들, 꼭 읽어야 하는 소설들을 소개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래도 안 읽겠다면 뭐 하는 수 없고. 나는 의기소침해졌다. 요즘 학생들 남의 작품은 전혀 안 읽고 오로지 자기 글만 쓴다는 이야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문인 몇 명을 만날 적마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고 실제로 그 비슷한 이야기를 몇 번인가 함께 나눌 기회도 있었다. 요즘 학생들은 다 그런가보다, 라고 무심코 생각하고 있다가 막상 내가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보니 그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처럼 느껴졌다. 그렇게들 안 읽고 어떻게 글을 쓰나, 어디 소설 한 번 보자. 나는 단단히 별렀다. 이것도 소설이라고 썼냐? 이것도 문장이라고 썼냐? 남의 글을 그렇게 안 읽으니까 내 것도 못 쓰는 거야. 그런데, 결국 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인 지금까지도 나는 그런 말들을 단 한 번도 해볼 기회가 없었다. 학생들이 써서 제출한 소설들은 거의 대개가 나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독서량이 많지 않아도 저마다 개성 있게 소설을 제법 잘 쓰는 건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타고난 재능이 있어서일까. 그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정말이지 나는 난감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예전에 나는 말이야, 라고, 작가가 되기 전에 오 년 동안 방안에 틀어박혀 줄곧 책만 읽어대다가 드디어 작가의 꿈을 이루었다는 내 과거를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것도 어째 좀 시들하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몰라 오로지 책만 들입다 읽어대던 그 시절, 나에게는 신앙처럼 뿌리 깊은 한 가지 믿음이 있었다. 책 속이 길이 있다는, 바로 그 오래된, 구닥다리 같은 믿음 말이다. 그런데 그건 정말 사실이었고 책 속에서 길을 발견한 나는 곧 문학하는 삶으로, 용기를 내어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단 한 권의 좋은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꾸어놓을 수도 있다고 믿는 진지한 세대에 속하는 것이다. 아무려나. 요즘은 내 세대, 혹은 내 소설과는 다르면서도 낯설고 새로운 학생들 소설을 읽는 재미에 빠져 있다. 에이, 여기에 독서량까지 많다면 정말 훨씬 더 근사한 소설을 쓸 수 있을 텐데. 멋쩍게 혼자 히죽거리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