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필자는 2001년 대산문화재단의 외국문학 번역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거꾸로 A Rebours』를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하는 번역자가 되었다. 원고를 탈고한 후 책이 출판되기만을 기다리던 중, 『대산문화』의 지면을 통해 여러 독자들에게 『거꾸로』를 소개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거꾸로』의 원저자는 아직 국내의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조리스 카를 위스망스라는 프랑스 소설가이다. 1848년에 태어나 1907년에 사망한 위스망스는 19세기 말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의 하나로 꼽힌다. 동시에 그는 프랑스의 수도 파리의 작가로 불리기도 한다. 한평생 파리에서 생활한 그는 그 누구보다도 파리지엥다운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현대화에 밀려 하나둘씩 사라져가던 파리의 골목길 풍경을 아쉬움어린 시선으로 그려낸 산문가이기도 하다. 또한 카톨릭으로 개종한 이후 위스망스는 신비주의를 열렬히 주장하는 기독교 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위스망스의 인생에서 소설 『거꾸로』 만큼이나 결정적인 전환점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선 이 소설을 계기로 위스망스는 스승인 동시에 동료이던 에밀 졸라의 후견을 벗어나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만들어나가기 때문이다. 또한 대단히 독창적인 이 소설은 19세기 프랑스 소설 전통의 종착점이자 새로운 세기의 소설 유형의 시발점이 되고 있다. 더욱이 이 소설은 ‘데카당의 필독서’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데카당스’라 불리는 세기말의 문화적, 심리적 분위기를 밀도 있게 반영하고 있다. 한마디로 『거꾸로』의 집필은 위스망스의 이름을 후대가 기억할 수 있게 해준 결정적인 사건이다. 폴 발레리와 앙드레 브르통 등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음을 두말할 것도 없고, 현재 프랑스 작가 중 노벨문학상에 가장 근접해 있는 미셸 투르니에 조차도 공개적으로 위스망스 문학의 후계자임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거꾸로』의 어떤 점이 이처럼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것일까? 소설의 줄거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삼백여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은 ‘한 귀족 가문의 마지막 후손이 세상에 염증을 느껴 대략 일 년간 자신이 꾸민 인공낙원에서 칩거를 시도하나 결국 실패한다’라는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극적인 사건의 연속을 대신하여, 총 16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에서는 시각, 후각, 청각 등 감각에 관한 주제, 문학, 미술, 음악 등 예술 작품에 관한 주제, 작중인물의 내면세계에 대한 묘사와 같은 다양한 주제들이 마치 작가가 아무런 의도 없이 늘어놓은 듯 뒤엉켜 있다. 그리하여 다수의 등장인물과 탄탄하게 짜여진 줄거리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이 소설의 산만하고 느슨한 구성방식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거꾸로』가 지닌 진정한 독창성은 바로 제목 자체에 집약되어 있는 내용적인 참신성에서 찾아야만 한다. ‘거꾸로’라는 제목은 이 소설에 담긴 몽상과 과거의 회상,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철학적이고도 미학적인 성찰의 대전제이자 결론이 되고 있다. 말하자면 퐁트네라는 마을의 저택에 칩거한 채 주인공인 데 제셍트가 벌이는 성찰과 실험, 논평과 분석은 부동의 현실로 인정된 우주 삼라만상을 뒤집어 바라보고, 모든 고정관념을 일단 부정하는 작업으로서 일관성을 지니는 것이다. 이 작업의 결과는 의외로 신선한 충격을 준다. 데 제셍트라는 이 가공의 인물은 고대 라틴 문학의 황금기에서 광휘를 제거하고,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무명시인에 불과하던 말라르메와 베를렌에게 경외에 가까운 찬사를 보내며, 르동이나 모로의 화폭이 지닌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발견하기도 한다. 그는 ‘거꾸로’의 원칙에 입각하여 자연, 혹은 본성에 맞서 인공적인 아름다움에 우위권을 부여한다. 그가 사회의 질서를 부정하면서 ‘무너져라, 낡은 세계여!’라고 절규하는 대목에 이르면 ‘거꾸로’의 원칙은 전복적인 철학적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위스망스의 소설 『거꾸로』가 지닌 매력은 바로 거꾸로 바라봄을 통해 삶과 예술과 사회를 새롭게 성찰할 기회를 준다는 점이다. 추악한 현실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여 비록 개인적인 차원이지만 정반대의 가상현실을 창조해낼 가능성을 제시한 까닭에 이 난해하고도 탐미주의적인 소설은 독자들에게서 열광에 가까운 호응을 얻어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