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4월. 문인들의 이집트와 이스라엘 여행에 동행했다. 이집트로 직행하는 항공편이 없어 일본 도쿄에서 갈아탄 이집트 항공기. 2층 맨 뒷좌석 둘 중 하나를 배정받아 앉았는데, 옆자리에 외국인 여성이 앉아 있어서 큰일났다는 생각을 했다. 십여 시간을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과 나란히 앉아 있어야 했으니 말이었다.
그러나 이 여인과 무수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허리를 다쳐 쉬고 있다는 이집트인 스튜어디스. 27세. 이름은 ‘할라’. 아버지는 농부이고, 자신은 스튜어디스 월급을 모아 알렉산드리아에 2층집을 사놓았고, 이 여객기 부기장에게서 2호 부인이 돼 달라고 청혼받고 있다 등등……
중고등학교 때 외웠다가 다 잊어버린 줄 알았던 영어 단어와 문장이 놀랍게도 되살아나 할라와의 대화를 이어가게 했다. 동행한 문인들은 이집트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며 나를 놀리고 부러워했다.
카이로공항에서 할라와 헤어졌지만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한동안 할라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곤 했다. 이집트 요정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