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기완 시인의 아버지 성찬경 시인    © 운영자

 

나는 시인의 아들이다.
그리고 나도 시인이다.
20대 때에는 서슴없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었다. 그러기 싫었다. 아버지에게 내 시를 보여드린 적이 거의 없었다. 내 시는 아버지 세대의 시와 다르다고 생각했었다. 어쩌다 집에 일찍 들어가 저녁을 아버지와 함께 먹을 때면 아버지와 나는 격렬하게 논쟁을 했다. 나는 운동권도 아니었지만 아버지의 세계관이나 정치관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시나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동의할 수 없었다. 한 마디로 나는 아버지와 달랐고 다르고 싶어 했다. 사실은 성격도 그리 비슷하지는 않다. 아버지는 평생 대쪽으로 살아오신 분이고 나는 대쪽과는 거리가 먼 히피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나는 세상의 공포를 위로받는 수단으로 시를 택했었다. 시는 반짝이는 별과도 같은 천재적인 말들의 펼쳐짐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런 말들이 버린 쓰레기 같은 말들을 주워 모아 그 안타까움과 불쌍함과 천함들 속에서 힘을 길어내고 싶었다. 그러니 나도 결국은 80년대의 자식이기도 한 것이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팝을 들었다. 아버지에게 그건 음악이 아니었다. 아버지에겐 베토벤과 쇼팽과 모차르트와 슈베르트가 있었다. 내겐 블루스가 있었다. 밥 딜런과 비틀스와 지미 헨드릭스를 들었고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굉음을 즐겼고 아버지는 그 소리 자체를 좋아하지 않으셨다. 때로는 드러내놓고 혐오를 표현하셨다. 나는 재즈로 빠져 들어갔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명반 ‘비치스 브루 Bitches Brew’를 들으며, 그 프리한 즉흥연주의 세계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아. 비치스 브루. 이 대목에서 나의 회상이 한 번 반전된다. 당시 한국에서 구하기 힘들었던 그 LP를 내게 사다 주신 분은 바로 아버지였다. 잠깐 외국에 갔다 오시면서 내가 부탁했던 몇 장의 LP를 아버지가 사오셨던 것이다. 오리지널 체스 레코드사 라벨이 붙어 있는 머디 워터스의 원판, 딜로니우스 몽크의 라이브 음반, 그리고 두 장짜리 마일즈 데이비스의 ‘비치스 브루’. 나는 그 선명한 인쇄 상태와 깨끗한 음질상태를 지닌 음반들을 신주단지처럼 모셨다. 아버지는 여전히 그 음악을 싫어하셨다. 나는 용돈을 아끼고 또 아껴가며 500원짜리 빽판을 사 모았다. 주로 아버지가 집에 안 계실 때 그 음악들을 들었다. 아버지가 들어오시면 마루에 있던 전축을 끄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진정한 프리뮤직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결정적인 계기도 아버지가 제공하셨다. 아버지는 지금도 계속하고 계시는 공간 시낭독회를 당시 인사동 근처의 공간사랑에서 한 달에 한 번씩 하셨었다. 구상, 박희진, 조정권 같은 시인들이 주요 멤버였는데,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의 어느 날, 아마도 수요일이 아니었나 싶은데, 아버지가 나더러 공간사랑에 같이 가자고 하셨다.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공간사랑은 80년대 초의 숨도 쉴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독특한 문화적 역할을 했던 곳으로 여겨진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갔던 날, 공간사랑에서, 지금은 프리 재즈의 대가로 전 세계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강태환의 프리 뮤직을 처음 들었다. 작고한 김대환이 퍼커션을 했고 트럼펫 주자 한 명이 더 참여한 트리오 형식이었다. 강태환의 프리 뮤직이 끝나자 김덕수 사물놀이 패가 나와서 사물의 진수를 보여 주었다. 당시에는 무명에 가깝던 그들이었다.
그 날, 집에 돌아오면서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셨다.
“시끄러워서 영……”
감수성이 예민했던 십대의 나는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난 후의 흥분상태 속에 있었다. 그 때는 그러면서도 몰랐다. 그저 그 프리 뮤직의 흥분을 나 혼자서 발견한 것으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왜 내 옆에서 그 ‘시끄러움’을 견디고 계셨을까를 나에게도 자식이 생기고 나니까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나는 아버지가 어떤 시를 써 오셨고 또 쓰고 계시는지 잘 안다. 아버지도 내가 어떤 시를 쓰고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잘 아신다. 서로 같은 시의 길이 아니지만 지금에 와서 확실히 인정하게 되는 것은 내가 아버지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첫 시집 『화형 둔주곡』을 여전히 제일 좋아한다.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금강석처럼 빛나는 언어들로 채워진 무거운 시집이다. 지금도 응암동 집 마당을 뒹구는 아버지의 나사들을 좋아한다. 길에서 나사들을 주워 때를 벗겨내고 기름칠을 해서 거기에 새로운 예술적 생명을 부여하시곤 했던 아버지, 일요일의 작업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성균관대학교)이셨지만 주말에도 학교 연구실에 나가 연구를 하는 타입은 아니셨다. 대신 주말에는 ‘오브제 장난’들을 하셨다. 쇳덩이를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지금도 주워온 쇳덩이를 가지고 뭔가를 만드는 걸 참 즐기시는데, 나 어렸을 때에도 공부하시는 모습보다는 일종의 ‘쇠의 오브제 설치’를 하시느라 꼬박 주말을 보내시거나 더운 여름 방학을 나시던 모습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마당을 뒹구는 쇠의 오브제」라는 시도 있다. 아버지의 시 「유쾌하게 빌었다」를 좋아한다.
유쾌하게 빌었다.
파쇠 긁어모아 새 사람(鳥人) 만들 때
그 새가 날 불가지의 공간을 그려보며
유쾌하게 빌었다.
(……)
확실히 나는 그 새가 날 불가지의 공간을 어느 정도는 날고 있다. 아버지의 세대는 날지 못했다. 일제시대에 교육을 받으셔서 여전히 구구단은 일본말로 하신다. 일본 군가를 아직도 가사 하나 안 틀리고 외우신다. 그러면서도 일본인들에 대한 증오는 때로 섬뜩하기까지 하다. 천재적인 데가 있으신 아버지를 날지 못하게 만든 것은 너무도 자명하게 일제 시대였고, 일본에 패망한 우리의 전통이었다. 아버지는 우리의 전통이라는 것을 그리 크게 신뢰하지 않으셨다. 대신 서양의 합리적 전통을 자신의 이상으로 삼았다. 아버지는 의미를 세우셔야 했다. 그래서 끝끝내 절대적인 의미에 매달리신다. 내가 두 번째 시집 『유리 이야기』를 내서 아버지께 드렸을 때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해체할 의미들이 있지만 내겐 없었다고. 그래서 아직도 의미를 세운다고.
의미의 극단까지 간 시들을 요새 쓰신다. 딱 한 글자로 이루어진 ‘일자시’라는 극단의 시들을 실험하고 계시는데, 일흔 여섯의 나이에 그렇게 실험을 하시는 걸 보면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 그런 시인은 아직 없었다.
나도 열심히 실험하는 시인이다. 전통적인 서정시의 맥락 바깥에서 언어를 다루려고 한다. 그 안에 안주하려면 차라리 시 쓰기를 고만 두겠다. 어떤 의미로 나는 2대째 시적 실험을 하고 있는, 시의 실험실에서 태어난 자식인지도 모른다. 태생을 거부할 필요 없이, 그 실험 정신을 나 역시 극단으로 몰고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