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주인공보다 더 극적인 발터 벤야민의몇 가지 장면에 관하여
“내가 세상을 견뎌낼 수 있었다면, 그것은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해방구 학교 앞 막걸리집 산골소녀들은지금 어디에 있을까 레드 콤플렉스 번쩍했던 순간들 환멸의 기원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일제하 최고 베스트셀러,박계주 소설 『순애보(殉愛譜)』
문학은 시대를 성찰할 수 있는가 시 부문 - 낭만적 과잉의 시쓰기 소설부문 - 삶과 역사에 대한 노작가의 견인주의 평론부문 - 문학 , 밀거래된 꿈을 유통시키는 최후의 통로 번역부문 - 유려한 문장으로 원작 재창조
환멸의 기원
글 손홍규_소설가. 1975년생
소설 『사람의 신화』 『봉섭이 가라사대』 『톰은 톰과 잤다』 『귀신의 시대』 『청년의사 장기려』 『이슬람 정육점』 『서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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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겨울날과 다름없이 차가웠던 어느 날 문익환 목사의 부음을 들었다. 대학생이 되어 맞은 첫 겨울방학이었고 나도 곧 누군가의 선배가 된다는 생각에 가벼운 흥분과 두려움을 느끼던 시절이었다. 해가 짧고 밤이 긴 겨울에 들려오는 부음은 그것이 누구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든 상관없이 이상하리만치 계절에 어울렸다. 어쩌면 그런 계절에는 내 죽음을 알리는 부고를 받는다 해도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말 수 있을것 같았다. 그러나 문익환 목사의 부음에는 가슴이 저렸다.
그이의 죽음이 유난히 날카롭게 가슴을 찔러왔던 건 먼발치에서 몇번 건너다 본 게 전부라 할지라도 그이가 누구보다 단단한 사람임을 한눈에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그이를 부수거나 파괴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고 그이의 그늘 아래라면 언제나 안전할 것 같았다. 그러나 밤새 몰아치던 폭풍이 지나가고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하게 갠 아침, 거리에 나섰다가 허리가 뚝 분질러진 유서 깊은 나무를 목격했을 때처럼 상실감에 사로잡혀야 했고 그해가 결코 잊을 수 없는 한해가 될 것임을 예감해버렸다. 다시 말해 나는 무언가를 환멸하게 될 것임을 예감했다.
그 즈음 나는 시를 쓰던 어느 선배의 반지하 자취방에서 더부살이라 말하기는 뭣하고 말 그대로 기생하고 있었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는 친척집에 거처를 정했으나 석 달 만에 친척이 집을 전세로 내주고 지방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문학동아리 교류를 통해 알게 된 어느 문청의 자취방으로 들어가야 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버스마저 끊긴 밤 깊은 시간이면 서너 시간을 걸어가야 할 만큼 통학이 불편했으나 월세 3만5천원만 내면 됐기에 나로서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고시원이나 독서실도 그 돈으로는 어림도 없었으며 하숙비는 독방이 아니라 두어 명이 함께 쓰는 방이라 할지라도 삼사십만 원이었기에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 방은 두 사람이 나란히 누우면 상대를 불쾌하게 하지 않고서는 까딱도 할 수 없을 만큼 좁았으나 둘 다 오갈 데 없는 촌놈인데다 문학 한답시고 폼 잡던 녀석들이었기에 우리는 그 좁은 방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이주시킬 수 있었다. 꿈의 크기는 방의 크기와는 무관했다.
문학을 두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은 어디나 우리의 해방구였다. 그곳이 여느 해방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처음부터 해방되어야 할 대상도 해방의 주체도 없다는 것이었다. 문학은 점령하는 대신 하나가 되는 것이라 믿었고 바로 그것이 인류 역사에서 인간이 늘 포기해야 했던 열망이라고 믿었다. 때로는 나직한 목소리로 때로는 열에 들뜬 목소리로 어느 소설가의 문장을 읊조리거나 그 문장에서 도약한 삶의 이미지들을 그리고 있노라면 이 세계 전체가 부드럽게 우리를 감싸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이모가 물려 준 여성용 버버리코트를 무척 좋아했는데 시집을 꽂기에 안성맞춤인 주머니가 달렸기 때문이었다. 내게 그건 단순한 주머니가 아니라 하나의 비밀의 방이었다. 키가 작은편인 나는 그 외투가 썩 잘 어울린다고 착각했으며 주머니에 기형도나 이성복, 황지우나 신경림 따위를 꽂고 다니며 서울에 온 보람마저 느꼈다. 그러나 방주인은 1학기를 마치고 군대에 가버렸다. 그러면서 보증금도 가져가버렸다. 나는 할 수 없이 내가 속했던 문학동아리 방으로 짐을 옮겼고 쥐가 새끼를 치는 소파에서 누군가의 토사물이 말라붙은 더러운 이불을 덮고 자야 했다. 쥐벼룩이 옮아 늘 몸이 가려웠고 얼굴을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깨곤 했다. 마땅히 몸을 씻을 곳이 없어 학교 근처 대형병원의 화장실에 딸린 샤워실을 도둑고양이처럼 드나들었다. 그래도 즐거웠다. 비록 아무도 훔쳐갈 생각을 하지 않는 책들만 꽂힌 책장이었으나 깊은 밤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그곳은 나만의 도서관이었다. 오랜세월 문청들이 시선으로 어루만지고 손으로 쓰다듬었던 책들을 탐독하는 밤들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아마도 그때 처음으로 나는 문학을 두고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만큼이나 책과 대화하는 것이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듯하다. 그런 순간에는 이미 그 책을 읽고 지나간 사람들을 비롯해 내 뒤를 이어 그 책을 읽게 될 사람들까지 마주대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윽고 겨울이 되어 석유난로 하나에 의지해 밤을 견뎠으나 난로는 타오르는 날보다 꺼져있는 날이 많았다. 세상과 싸워보기도 전에 추위에 투항해버리기 직전이었고 그 꼴을 보다 못한 선배가 자신의 자취방으로 나를 몰고 갔다. 그곳은 따뜻하고 아늑했다. 선배의 누나와 여동생 그리고 남동생 둘까지 더불어 사는 그곳은 언제나 복작거렸으나 누구 하나 군식구인 내게 눈치를 주지 않았고 나는 점점 대범해져서 마치 원래 그곳이 내 방이었던 것처럼 편히 지내게 되었다. 돈 한 푼 지불하지 않고서도 말이다. 그 겨울 내내 나는 한 편의 단편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끙끙거렸고 어느날 성에를 닦아내기 위해 손을 댔다가 와장창 소리를 내며 깨져버리는 유리창을 바라보듯 문익환 목사가 죽고 사라진 서울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어쩌면 그때 소설을 쓴다는 게 쓸모없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처음으로 솟았던 건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나는 젊었기에 죽음을 사유하기보다 죽음이 불러일으키는 관념을 헤아리는 일을 더 즐겼을 테고 길을 걷다 발부리에 차인 돌멩이가 굴러가는 꼴만 보아도 문학을 떠올렸기에 그이의 부음을 듣자 너무나 당연하게도 소설의 운명 따위를 생각했을 거였다.
그로부터 한 달이 채 못 되어 나는 고려병원 장례식장에서 문상객들을 대접할 상을 날랐다. 누군가가 돈을 쥐어주면 약국으로 달려가 박카스를 사왔고 술을 달라면 냉장고에서 꺼내 가져다주었으며 잠시 틈이 나면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가난한 작가들을 노려보았다. 김남주 시인의 영결식은 경기대에서 치러졌고 나는 문학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비탈에 앉아 무릎에 이마를 대고 한 시대가 소리 없이 무너지는 광경을 보았다. 나는 그이의 시 「가엾은 리얼리스트」를 퍽 좋아했던 터라 시인의 죽음 앞에서도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스스로를 두고 그 시의 한 구절처럼 ‘나는 어쩔 수 없는 놈인가’라고 읊조릴 수밖에 없었다. 시인이 되기를 열망하던 한 친구는 내 옆에서 오열했고 이 세계를 증오하지 않기 위해 문학을 하던 한 친구는 말이 없었다. 내 마음은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한 사람의 시인이 시인인 동시에 전사일 수도 있었던 시대는 김남주 시인을 마지막으로 사라졌고 시인도 못 되고 더더군다나 전사가 될 수도 없었던 우리는 인정하고 싶지 않으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환멸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살펴보아도 환멸의 정체는 모호하다. 그러나 그때부터 문학에 대한 신념은 흔들렸고 나는 여전히 흔들리는 중이다. 그 시절의 문우들 가운데 대부분은 문학을 떠났으며 문학을 떠났다는 사실을 그다지 아쉬워하지 않았다. 여기, 지금 내가 문학을 하고 있는 이 자리는 그 시절의 문우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자리이건만 그들은 나만 홀로 남겨둔 채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그들이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잘 알았기에 그 이유가 여전히 나를 뒤흔들었기에 나는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 번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으나 홀로 남은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는 알 수 있었다. 문학은 더이상 가망이 없다는 말일 것이다.
문학은 가망이 없었다. 그해 봄 나는 금호동의 철거 현장을 몇 번 찾아갔다. 철거민들이 골리앗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허약하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조악한 철 골구조물에 지나지 않는 철탑에 오른 메마르고 강파른 얼굴의 사내를 보았다. 철탑 아래서 또래들과 어울려 노는 사내의 아이도 보았고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허공을 올려다보는 사내의 아내도 보았다. 그 사내가 석유를 제 몸에 끼얹고 불을 질러 죽은 날에도 분명히 무언가를 보았다. 전경들이 봉쇄한 현장 주변을 서성거리다 발걸음을 돌렸을 때 시를 쓰던 친구는 그 자리에서 구토를 했고 나는 내 두 손을 들여다보았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단 한 편의 소설조차 완성할 수 없는 손이었으며 단 한 사람의 목숨마저 구원할 수 없는 손이었다.
모든 소설은 무언가의 일부분이다. 소설은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이 세계의 일부로만 존재한다. 그러기에 모든 소설은 미완이며 완성이야말로 소설의 죽음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간절히 바라고 바랐다. 소설의 죽음을.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은 자가 소설의 죽음을 바라는 것이야말로 일 년 내내 농토를 부린 농민이 미처 수확도 하지 않은 농토에 불을 지를 때의 심정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재로 뒤덮인 농토를 서성이며 겨울을 보낸 농민이 곡우에 이르면 다시 못자리를 만들 듯이 소설가는 폐허가 된 소설 앞에서 다시 소설을 시작해야 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문학은 가망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가망이 없는 녀석이었던 거다. 문학은 언제나 가망이 없었을 따름이며 문학을 죽음 직전에서 일으켜 세우는 건 언제나 인간의 몫이다. 나의 환멸은 뿌리가 깊다. 어쩌면 그 해를 지나쳐 더 머나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문학이 무언지 모르던 시절까지 혹은 문학이 생겨나기 이전까지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학이 없는 그곳에 이르면 아마도 누군가는 기어이 그곳에서 문학을 만들어 내고야 말 것이다. 그들은 어딘가에 묵새기고 앉아 문학을 이야기할 것이며 설령 벽도 천장도 없는 벌판 한가운데라 할지라도 혹은 오로지 별과 달만이 머리 위에 빛나고 있을지라도 그 별과 달을 쓰기 위해 기꺼이 고독해질 것이다. 그리고 아마 알게 될 것이다. 문학이란 문학에 환멸한 자가 가까스로 참고 견디며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