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소설 주인공보다 더 극적인 발터 벤야민의몇 가지 장면에 관하여

디지털 현실 속에서 구원과 신성을 성찰하다

라이따이한에 관한 거짓 혹은 진실

삶의 주인이 되는 길

선택과 배제를 넘어서

“내가 세상을 견뎌낼 수 있었다면, 그것은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해방구 학교 앞 막걸리집 산골소녀들은지금 어디에 있을까 레드 콤플렉스 번쩍했던 순간들 환멸의 기원

책상은, 책상이다?

운명, 미워하지 않는다

폭설 속에 새긴 궁핍한 시절의 꿈 하나

빈자리

신촌, 유령이 떠도는 거리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일제하 최고 베스트셀러,박계주 소설 『순애보(殉愛譜)』

문학은 시대를 성찰할 수 있는가 시 부문 - 낭만적 과잉의 시쓰기 소설부문 - 삶과 역사에 대한 노작가의 견인주의 평론부문 - 문학 , 밀거래된 꿈을 유통시키는 최후의 통로 번역부문 - 유려한 문장으로 원작 재창조

詩샘

판의 미로 데자뷰

밤에 듣는 밤 이야기

뻐끔담배 우산을 꽃이라 불러보는 오후 새들은 어디서 날아오나 시간을 담는 용기 흔해빠진 자살 여행

단편소설

데자뷰

글 남윤수_소설가, 2008년 대산대학문학상 수상. 1982년생
소설 「당신의 얼굴」 등

그런 악몽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서는 순간 어떤 꿈을 꾸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정체 모를 희뿌연 색감만 강렬했을 뿐 구체적인 장면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세면대 앞에 마냥 선 채로 영훈은 문서파쇄기에 손이 빨려 들어갔던 지난 사고를 떠올 렸다. 어쩌면 그 상황이 꿈으로 펼쳐진 건지 모른다. 살이 찢기는 고 통과 함께 새하얘졌던 눈앞의 아찔함, 희뿌연 이미지는 당시의 충격 이 그대로 반영된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영훈은 이내 갸우뚱했다. 곰곰이 돌이켜보니 그 일은 꽤 오래 전에 일어난 일이었고 꿈에까지 나타날 만큼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 사건은 아니었다. 끝내 답이 나오지 않자 하는 수 없이 수도레버 를 돌리고는 연거푸 얼굴에 찬물을 끼얹었다. 평소 같았으면 여지없이 컴퓨터를 켜고 꿈 해몽 사이 트를 찾아봤겠지만 최근 업무상 노트북을 회사에 두고 오는 일이 잦았다.
세안을 마친 영훈은 수건으로 얼굴을 훔쳤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오니 아내가 식탁 위에 밑반찬 을 놓고 있었다. 영훈이 나오는 인기척에 아내는 어떤 반응이나 대응이 없었다. 마치 없는 사람을 대 하는 것처럼 영훈을 지나 작은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영훈은 괜히 머쓱해졌다. 곧 작은방 쪽에서 아내가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서 밥을 먹자며 아이를 어르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영훈은 밥그릇을 들고 와 식탁 앞에 앉았다. 무심코 고개를 들었을 때 사방의 벽과 천장이 눈에 들 어왔다. 물결무늬 벽지 곳곳이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고 군데군데 시커먼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영 훈은 밥그릇을 내려다보았다. 어쩐지 밥이 입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숟가락을 도로 내려놓을 때 였다. 아이의 방이 쥐죽은 듯 조용했다. 가만히 귀 기울여 봐도 아내나 아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 았다. 의자에서 일어났다. 다가가 슬며시 문을 미니 아내가 침대 앞에 앉아 잠든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의중을 알 수 없는 망연한 눈길이었다. 영훈이 말했다.
괜찮아?
아내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몸을 일으키더니 영훈의 어깨를 스치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 벌써 사 흘 째 아내와의 사이가 서먹했다. 아내가 화장실로 들어간 뒤 영훈은 침대 옆에 놓인 스케치북을 집 어 들었다. 시커먼 울타리 안에 검붉은 촉수가 어지러이 뒤엉킨 그림이었다. 그 한 가운데 사람의 형 태가 그려져 있었다. 다음 장을 넘기고 그 다음 장을 넘겼다. 전부 엇비슷한 그림이었다. 처음에는 티브이영화에서 나오는 괴수가 파워레인저를 공격하는 모습을 그린 것인 줄 알았다. 그림 뒷장에는 비뚤한 글씨로 ‘가족’이라고 적혀있었다. 영훈은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았다. 스케치북을 내려놓고 아 이의 이름을 불렀다. 아이는 꿈쩍하지 않았다. 어깨를 잡고 한 번 흔들자 아이는 칭얼대며 벽 쪽으 로 돌아누웠다.
일어나자. 밥 먹어야지.
아이는 대꾸가 없었다. 시계를 보니 예상했던 출발시각보다 이미 삼십 분이 지나 있었다. 영훈은 이불을 걷고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찜찜한 기분은 가시지 않았다. 간밤에 꾼 꿈의 여파가 여전히 사 라지지 않고 있었다.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아내가 현관 앞으로 나왔다. 영훈은 아이를 안고 뒤따라 나오다가 거실의 티브이를 끄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뉴스가 보도 중이었다. 앵커는 금융 위기가 불거지면서 국가 전 체 가계 빚이 육백육십칠조 오천억 원에 달한다고 전하고 있었다. 부채는 매해 증가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공기업 부채까지 감안하면 국민 일인당 지고 있는 빚은 약 사천만 원에 이른다고 했다. 영훈 은 어쩐지 죄를 지은 기분이 들었다. 리모컨을 들어 전원 버튼을 몇 번 눌렀지만 티브이는 꺼지지 않 았다. 티브이 버튼의 글씨가 다 지워져 새삼 어떤 게 전원이었는지 분간되지 않았다. 버튼을 이리저 리 눌러보다가 순간 화면이 바뀌었다. 거대한 강이 펼쳐졌다. 양양 남대천에 대한 재방송 다큐멘터리였다.
……연어로 태어난 물고기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내레이터의 목소리였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영훈은 어깨가 짓눌린다는 기분이 들었는데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아내는 이미 현관을 나가고 난 뒤였다.

* 본 원고의 전문은 <대산문화> 2014년 겨울호 지면을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