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주인공보다 더 극적인 발터 벤야민의몇 가지 장면에 관하여
“내가 세상을 견뎌낼 수 있었다면, 그것은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해방구 학교 앞 막걸리집 산골소녀들은지금 어디에 있을까 레드 콤플렉스 번쩍했던 순간들 환멸의 기원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일제하 최고 베스트셀러,박계주 소설 『순애보(殉愛譜)』
문학은 시대를 성찰할 수 있는가 시 부문 - 낭만적 과잉의 시쓰기 소설부문 - 삶과 역사에 대한 노작가의 견인주의 평론부문 - 문학 , 밀거래된 꿈을 유통시키는 최후의 통로 번역부문 - 유려한 문장으로 원작 재창조
유독 가혹했던 운명의 손길
글 이윤재_번역문학가, 1950년생
역서 『번역사』(레일라 아부렐라 작) 등
토머스 하디의 『캐스터브리지의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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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1830년 무렵 시골의 가축시장에서 만취상태의 일꾼 헨처드가 아내 수전을 한 선원에게 팔아넘기는 사건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소설은 처음의 시공간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배경을 이동시키는데, 시간은 곧바로 근대 영국의 절정기인 빅토리아 시대(1837-1901)의 초반이 되고, 공간은 웨섹스 주(州)의 작은 자치도시 캐스터브리지가 된다. 웨섹스는 작가 토머스 하디(1840-1928)의 고향인 잉글랜드 남부 도싯(Dorset)을 약간 변형시킨 대안적 지명으로, 당시에 벌어지던 다양한 제도적 사회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 과거의 전통과 흔적이 비교적 풍부하게 남은 지역이다.
소설 초반부에서 새로운 배경으로 바뀌면서 헨처드는 어느새 캐스터브리지의 시장으로 등장한다. 최초 사건에서 일자리조차 구하지 못하던 그가 그 사이 어떻게 성공하고 시장까지 되었는지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없다. 앞으로 소설의 관심은 오로지 헨처드가 어떻게 몰락해 가는가에 집중될 것임을 시사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모두 외지(外地) 사람이다. 헨처드 외의 남자 주인공은 캐스터브리지를 지나다 우연히 헨처드에게 발탁되어 정착하게 된 스코틀랜드 사람 파프레이다. 헨처드는 기존의 패러다임에 집착하는 구식 인물로 감성적이고 충동적이며, 파프레이는 새로운 변화를 적극 수용하는 신식 인물로 이성적이며 타산적이다. 여자 주인공은 세 사람이다. 팔려갔다가 캐스터브리지로 헨처드를 찾아와 재혼하는 순박한 수전, 헨처드가 수전과 재회하기 전 결혼하려던 자유분방한 옛 연인 루시타, 그리고 수전과 선원 사이에 태어난 침착한 성격의 엘리자베스-제인이 그들이다. 반면 예전부터 캐스터브리지에서 살아온 현지 주민들은 때때로 사건에 끼어들기도 하나 기본적으로는 주인공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설의 사건과 상황을 제3자의 입장에서 관찰하고 평가하는 구경꾼에 머문다. 헨처드와 파프레이는 초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우호적으로 공존하지만 두 사람의 뚜렷한 성향 차이는 곧바로 그들을 서로 갈라놓고 치열한 경쟁에 빠져들게 만든다. 두 사람 사이의 승부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파프레이에게 항상 유리하게 진행된다. 헨처드는 실수와 오해와 후회를 반복하며 자기의 권력과 명예, 재산 그리고 연인 루시타 마저 차례차례 파프레이에게 넘겨준다. 원래의 빈털터리 인생으로 회귀한 그는 마지막으로 의붓딸 엘리자베스에게 마음의 위안을 기대하나 그녀에게도 냉대를 받고 절망감 속에서 쓸쓸하게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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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디는 이 소설에 ‘A Story of a Man of Character’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러나 헨처드의 성격이 유별나고 그가 실수를 거듭한다고 해도 운명의 손길이 유독 그에 대해서만 그토록 가혹하고 그를 끈질기게 외면하는 모습은 지나치고 안타깝다. 충동적이고 승부욕이 지나치지만 헨처드는 자기의 잘못을 곧바로 후회하고 반성하며 타인의 사랑과 인정을 갈구한다. 또 타인의 고통에 쉽게 공감하고 쉽게 용서하며, 이기적으로 자기 잇속만 차리지도 않는다. 그에게 모자라는 것은 시대의 변화를 재빨리 이해하고 기회로 포착하지 못하는 우둔함과 과거의 방식에 대한 고집스런 집착이다. 그렇다면 그의 됨됨이는 매번 실수를 반복하고 후회하는 대다수 현대인의 자화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생 초반의 실수가 원죄처럼 인생 전체를 실패로 몰아가는 냉혹함도 오늘의 세태에서 낯설지 않다. 승부에서 계속 지고 빼앗기며 무력하게 허물어지는 19세기 영국 주인공의 가련한 이야기는 그래서 21세기 한국에 사는 우리 자신의 불편하고 우울한 현실을 연상시키며 연민을 일으킨다.
하디는 서른 무렵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 소재나 주제가 시대 상황에 부적절하다는 냉담한 평가에 시달린다. 그랬던 그가 어느 정도 소설가로서의 입지를 굳힌 1886년에 발표한 이 작품에서 ‘아내 판매’라는 충격적 소재에 (당시의 관행과는 달리) 귀족이나 젠트리 계층을 등장시키지 않는 등 다시 독자들에게 부담과 긴장을 준다. 이러한 하디의 과감성과 파격성은 이후의 작품에 계속 이어져 『더버빌가(家)의 테스(Tess of the d’Urbervilles, 1891년)』와 『무명의 주드(Jude the Obscure, 1895년)』는 격렬한 찬반논쟁을 유발한다. 결국 『무명의 주드』가 그에게는 마지막 소설이 된다.
※ 『캐스터브리지의 시장(The Mayor of Casterbridge )』은 재단의 외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아 필자가 번역을 완료하였으며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로 출간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