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주인공보다 더 극적인 발터 벤야민의몇 가지 장면에 관하여
“내가 세상을 견뎌낼 수 있었다면, 그것은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해방구 학교 앞 막걸리집 산골소녀들은지금 어디에 있을까 레드 콤플렉스 번쩍했던 순간들 환멸의 기원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일제하 최고 베스트셀러,박계주 소설 『순애보(殉愛譜)』
문학은 시대를 성찰할 수 있는가 시 부문 - 낭만적 과잉의 시쓰기 소설부문 - 삶과 역사에 대한 노작가의 견인주의 평론부문 - 문학 , 밀거래된 꿈을 유통시키는 최후의 통로 번역부문 - 유려한 문장으로 원작 재창조
번역부문 - 유려한 문장으로 원작 재창조
글 | 유석호_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 1953년생
역서 『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 『팡타그뤼엘 제3서』 『팡타그뤼엘 제4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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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르브렝 불역
『Hors les murs』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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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려한 문장으로
원작 재창조
2014년 대산문학상 번역부문의 심사 대상이었던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불역된 작품의 수가 무려 80여 권에 이를 정도로 최근 불어권의 번역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우리 문학의 국제화를 위해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양적인 풍성함 못지않게 번역의 수준 역시 전보다 훨씬 높아졌다는 것이 이번 심사에 참가한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우수한 번역서들 중에서 심사위원들은 심사숙고 끝에 엘렌 르브렝 번역의 박완서 작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번역부문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이번 수상작은 우리 문학작품의 외국어 번역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할 만한 역작이다. 역자 엘렌 르브렝은 그 어렵다는 프랑스 대학교수 자격을 취득한 고전문학 전공의 학자로서 고려대와 서강대 불문과 교수를 역임한 바 있고, 오랜 한국 체류를 통해 우리 문화와 정서를 제대로 알고 번역 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외국인 번역전문가 중의 한 사람이다. 이번에 박완서 작품은 공역자 없이 단독으로 번역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불역판에는 우리말 구사 능력을 갖춘 외국인 번역자의 단독 번역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장점과 단점이 다 같이 발견된다. 우선 장점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우리말 원문을 단어 하나씩 따라가며 그대로 옮기는 식의 번역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문학작품으로 원작을 재창조해내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원문의 의미뿐 아니라 관용적 표현이나 우리의 생활 습관의 맛과 분위기까지 그것에 대응되는 프랑스적 상황과 대역어를 찾아 자연스럽고 유려한 불어 문장으로 옮김으로써 번역투를 탈피한 새로운 문학작품으로 완성시킨 번역자의 역량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대신 단독 번역의 취약점 역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번역자의 우리말 해독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번역을 통해 충분히 입증된 사실이지만 완벽하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우리말 구문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원문과 다르게 번역된 부분이 없지 않다는 것이 옥의 티라 할 수 있다. 앞으로 단독 번역을 계속하더라도 번역을 일단 끝내고 나서 출판하기 전에 양쪽 언어에 두루 능통한 전문가의 감수를 거치는 것이 보다 완벽한 번역을 위해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박완서의 자서전적 소설로서 작가가 개성 근처의 박적골이라는 농촌 마을에서 보냈던 유년 시절부터 1950년 6·25 전쟁 발발 초기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는데, 특히 행복했던 어린 시절 고향의 추억이 매우 아름답게 서정적으로 묘사된 작품이다. 이 같은 작품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원래의 제목과 다르게 불역판에는 역자가 임의로 정한 ‘Hors les murs’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다. 우리말로 직역하자면 ‘성벽 밖’이고 의미상으로는 ‘문밖 동네’ 또는 ‘문밖 사람들’을 가리키는 사회적 함의가 담긴 표현이다. 역자는 출판사 홈페이지에 올린 불역판에 관한 인터뷰에서 제목을 바꾼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선 프랑스에 싱아라는 풀이 없어 불어에서 적당한 대역어를 찾는 것이 불가능할 뿐더러 작가가 고향을 떠올릴 때 느끼는 애틋한 그리움과 관련해 그 풀이 환기시키는 이미지를 제대로 살릴 수 없었기 때문에 원작의 제목 대신 역자가 박완서 소설을 읽는 핵심적 주제어로 판단한 도시 변두리 지역 서민들의 삶을 연상시키는 이 용어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서울의 사대문 안 중산층 주택가와 도시 외곽의 산동네 빈민촌, 문안과 문밖이라는 거주 공간의 차이가 인물들의 의식 속에서 어떻게 대조적인 모습을 띠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으므로 나름 설득력 있는 선택으로 여겨진다. 제목 하나 허투루 정하지 않고 작품의 성격에 맞는 제목을 고르기 위해서 고심한 역자의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를 엿볼 수 있는 것 같아 번역에 대한 신뢰를 더해준다. 아무쪼록 언제나 다정한 눈길로 세상과 사람들을 지켜보며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 안으려는 박완서 문학의 잔잔한 감동을 이 작품을 통해서 불어권 독자들이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