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주인공보다 더 극적인 발터 벤야민의몇 가지 장면에 관하여
“내가 세상을 견뎌낼 수 있었다면, 그것은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해방구 학교 앞 막걸리집 산골소녀들은지금 어디에 있을까 레드 콤플렉스 번쩍했던 순간들 환멸의 기원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일제하 최고 베스트셀러,박계주 소설 『순애보(殉愛譜)』
문학은 시대를 성찰할 수 있는가 시 부문 - 낭만적 과잉의 시쓰기 소설부문 - 삶과 역사에 대한 노작가의 견인주의 평론부문 - 문학 , 밀거래된 꿈을 유통시키는 최후의 통로 번역부문 - 유려한 문장으로 원작 재창조
억압적 현실에 대한 적극적 응전
글 김동식_평론가,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1967년생
저서 『냉소와 매혹 기억과 흔적 소설에 관한 작은 이야기 잡다(雜多) 등
80년대 무크(MOOK)지의 등장
“민중의 최전선에서 새 시대의 문학운동을 실천하는 부정기간행물(MOOK) 창간호”.
1980년대 무크지 전성시대의 효시인 《실천문학》의 표지 문구이다. 소설가 박태순의 회고에 의하면, 1978년 9월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주요 멤버인 김병걸·박태순·이문구·이시영 등은 시국 성명서 발표라는 단기 전략과 무크지 발간이라는 장기 전략을 구상하게 된다. 그리고 1980년 3월 동아일보 해직 기자 출신 김진홍이 대표로 있는 전예원에서 무크지 《실천문학》 1호를 발간한다. 이들은 창간호에 1979년 10월에 사회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준비과정이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박태순은 《실천문학》 창간호의 경우 2만 부가 판매되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정기간행물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해서 재판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실천문학》은 좀 당돌한 방식으로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연결시키는 문화적 유격전을 전개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러한 문화 돌격대 정신이 1987년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 게릴라 출판물의 한 문화원형을 이루고 있었다고 하겠지요.1)
1980년 6월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 《씨을의소리》, 《뿌리 깊은 나무》 등 주요한 계간지 및 정기간행물들이 신군부에 의해 강제 폐간된다.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 양대 계간지의 폐간은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크지는 정치적 탄압을 전략적으로 버텨나가고 문화운동을 확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대안적인 매체로서 주목을 받게 된다. 무크지는 1973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등장했으며, 연속간행물(Magazine)과 단행본 서적(Book)을 줄여서 만든 합성어이다. 무크지는 출판 기일에 제한되지 않고 여러 필자의 다양한 글을 수록할 수 있고 자유로운 레이아웃(본문편집)을 시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1980년대의 무크지는 계간지가 불가능한 시대를 채워나갔던 매체이며, 시대의 긴박함에 대응할 수 있는 몸 가벼움을 갖춘 매체였다. 신군부는 1980년 12월 31일에 제정 공표된 언론기본법을 통해 “정기간행물이란 연2회 이상 발행되는 계속적인 간행물”(5조 2항)이라고 규정함으로써 무크지가 1년에 최대 1회까지만 발행되도록 법적 제한을 가하게 된다.
무크지는 잡지의 편집과 단행본 출판 전략 모두에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인 예로서 계간지를 강제 폐간 당한 창작과비평사와 문학과지성사의 사례를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1985년 《창작과비평》은 무크지로 형태를 바꿔서 출간된 바 있고, 13인 신작시집 『우리들의 그리움』, 21인 신작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 신작평론집 『한국문학의 현단계』를 발간하여 단행본의 무크지화를 시도한 바 있다. 문학과지성사의 경우 1982년 이성복·이인성·정다비를 동인으로 하는 무크지 《우리 세대의 문학》을 창간하였고, ‘현대의 사상’ 시리즈를 마련하여 단행본 출판을 전략적으로 기획하게 된다. 1980년대의 출판문화운동은 지적·문화적 대항 헤게모니를 확보하기 위한 매체 전략을 마련해 갔는데, 그 중심에는 무크지의 매체적 가능성이 가로 놓여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에 무크지가 전성시대를 맞을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양대 계간지의 폐간으로 대변되는 지적·문화적 공백상태에 대한 민감한 자의식이 작동한 사실과 5공화국의 억압적인 언론출판 정책에 맞서 저항의 거점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들이 집합적으로 형성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거론할 수 있다. 하지만 1980년대 무크지의 집단적 발간은 1970년대의 문제의식을 확대 심화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1980년대의 억압적인 정치현실에 대한 적극적 대응방식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1979년 미술계에서는 임옥상·오윤 등을 중심으로 ‘현실과 발언’ 그룹이 등장하여 민중미술을 제창한 바 있으며, 1983년부터는 연극의 ‘연희광대패’, 노래모임 ‘새벽’, 영화의 ‘서울영화집단’ 등 다양한 소집단들이 민중문화운동의 공간을 넓혀 갔다. 또한 지역문화운동에 근거를 둔 무크지 《마산문화》, 《지평》, 《삶의 문화》 등은 서울/지방, 문화/비문화의 이분법의 타파를 핵심적인 의제로 내세웠으며, 민족문화의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는 장소로서 지방을 새롭게 재발견하고자 했다. 1970년대의 문학동인지 《반시》, 《시와 경제》 등은 동인지의 외연을 확대하여 무크지적인 성격으로 자기변화를 모색하기도 했다. 무크지가 전성시대를 맞을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으로는, 1970년대 유신통치 아래에서 배출된 해직기자·해직 교수·제적생 등 인쇄매체에 대한 이해와 편집 기획에 대한 감각을 갖춘 사람들이 대거 출판영역으로 이동했다는 점을 거론할 수 있다.
무크지는 1980년대 문화운동의 상징이다. 아쉽지만 1980년대의 무크지에 대한 실증적인 자료 수집과 정리가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 있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1980년대에 발간된 대표적인 무크지는 다음과 같다.2)
1. 문학 종합 무크지 : 《실천문학》 《창작과비평》 《우리세대의 문학》 《여성문학》 《공동체문화》 《언어의 세계》《전망》 《시인》 《정통문학》 《문학의 시대》 《민중》 《문학과 예술의 실천논리》 《문학예술운동》 《노동문학》 《노동해방문학》 《녹두꽃》 《우리문학》 등
2. 르포 및 노동자 수기 중심의 무크지 : 《르뽀시대》《땅의 사람들》 《현장문학》 등
3. 지방 출간 무크지 : 《삶의 문학》 《오늘의 문학》(이상대전) 《지평》(부산) 《마산문화》(마산) 《민족과 문학》 《민족현실과 지역운동》 《민족과 지역》(이상 광주) 《포항문학》(포항) 《분단시대》(대구) 《표현》(전주) 《여성운동과 문학》 《민의》 《문화비평》(이상 서울) 등
4. 역사, 종교, 사회과학 무크지 : 《역사와 기독교》(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민중》(청사) 《한국사회연구》(한길사)《현실과 전망》(풀빛) 《현단계》(한울)
5. 미술 관련 무크지 : 《시각과 언어》(열화당) 6. 무크지 성격의 동인지 : 《작가》 《제3문학》 《시운동》《오월시》 《시와 경제》 《말과 힘》 《반시》 《목요시》 《자유시》 《瑞世樓의 詩人들》 등
1980년대의 무크지는 문학, 미술, 연극, 영화 등 다양한 소집단 운동들 사이의 상호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으로 기능했으며, 지방문화/문학의 특수성을 자각하고 서울과 지방의 서열적·비민주적 관계에 대한 비판을 담아낸 지방문화운동의 주요한 거점이었다. 또한 1980년대의 무크지는 한국의 문학장(文學場)과 그와 관련된 담론공간의 재배치를 가져온 주요한 계기이자 원동력이었다. 무크지의 시대를 거치면서 20·30대의 젊은 문학인들이 대거 등장하게 되고, 해방 이후 처음으로 기존의 등단 추천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한국문인협회 중심의 문단이 출판사·문예지를 중심으로 재편성됨으로써 문학과 관련된 인적·담론적·제도적 지형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1980년대의 무크지 전성시대로부터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역사적인 평가를 내리기에 충분한 시간적 거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떠한 경우가 되었든 간에 1980년대의 무크지들에 대해 “우리 시대 문학사 및 정신사의 비극을 적극적·능동적으로 반영 극복하려는 숭고한 의지의 발현”(원재길)이며 “근본주의적 부정 정신 위에, 그리고 광주 체험 위에 이루어진 일종의 문화적 통일전선” (성민엽)이라는 평가를 부여하는 데 있어 조금이라도 주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크지는 1980년대를 대변하는 매체이며 1980년대 문화운동의 상징이다.
1) 박태순·이명원 대담, 소설가 박태순에게 들어보는 1980년대와 《실천문학》, 그리고 문학 운동, 《실천문학》 2012, 115면
2) 무크지 현황은 『문예연감』(1981~1989), 황지우의 무크 바람(《르뽀 시대》 1, 실천문학사, 1983), 원재길의 80년대 문학 종합 무크지의 실태(《문화예술》 124호, 1989), 임헌영의 1980년대 무크지를 통한 문학운동(《작가연구》 15, 2003) 등의 글과 필자가 조사한 내용에 기반하여 작성 된 것이다. 무크지와 관련된 추가적인 자료수집과 실증적인 확인 작업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