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소설 주인공보다 더 극적인 발터 벤야민의몇 가지 장면에 관하여

디지털 현실 속에서 구원과 신성을 성찰하다

라이따이한에 관한 거짓 혹은 진실

삶의 주인이 되는 길

선택과 배제를 넘어서

“내가 세상을 견뎌낼 수 있었다면, 그것은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해방구 학교 앞 막걸리집 산골소녀들은지금 어디에 있을까 레드 콤플렉스 번쩍했던 순간들 환멸의 기원

책상은, 책상이다?

운명, 미워하지 않는다

폭설 속에 새긴 궁핍한 시절의 꿈 하나

빈자리

신촌, 유령이 떠도는 거리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일제하 최고 베스트셀러,박계주 소설 『순애보(殉愛譜)』

문학은 시대를 성찰할 수 있는가 시 부문 - 낭만적 과잉의 시쓰기 소설부문 - 삶과 역사에 대한 노작가의 견인주의 평론부문 - 문학 , 밀거래된 꿈을 유통시키는 최후의 통로 번역부문 - 유려한 문장으로 원작 재창조

詩샘

판의 미로 데자뷰

밤에 듣는 밤 이야기

뻐끔담배 우산을 꽃이라 불러보는 오후 새들은 어디서 날아오나 시간을 담는 용기 흔해빠진 자살 여행

우리시대의 화제작

궁핍했던 시절이 주는 위안

글 이현식_평론가,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 관장. 1966년생
평론집 『곤혹한 비평』『일제 파시즘 체제하의 한국문학비평』 등

IMF 시대의 소설, 김주영의 『홍어』

1998년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김주영의 장편소설 『홍어』가 3위에 올라가 있다.
『홍어』는 이른바 본격 소설에 들어가므로 이렇게 높은 순위에 올라간 것이 오히려 이채로워 보인다. 같은 해 베스트셀러 1위는 법정스님의 『산에는 꽃이 피네』라는 수필집이었고 4위는 『광수생각』이라는 만화책이었다. 양귀자의 『모순』은 대중 소설로 위력을 발휘하여 이 해에는 베스트셀러 2위에, 다음 해에도 9위에 올라가 있었다. 베스트셀러 상위권의 목록을 보면 김주영의 『홍어』가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본격 문학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진입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흔한 일은 아니다. 물론 좋은 소설을 눈 밝은 독자들이 찾아 읽고 입소문이 나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이 상식에 부합하는 판단이다. 그것이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유이긴 하겠지만 『홍어』가 조금 더 널리 읽힌 데에는 다른 사연도 있다.
쉽게 추측할 수 있듯이 그 이유를 당시 한국사회가 IMF의 관리 체제로 들어갔다는 사실과 연결시켜 생각해 볼 수 있다. 1997년 겨울은 참으로 신산스러웠다. 급격한 경기 악화로 인한 기업들의 연쇄 부도, 구조조정과 대량 실업 등 그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경제적 위기를 겪었다.
실업자가 양산되고 청년들은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할 길이 막연했다. 이제 막 취직을 한 회사가 없어지는 판이기까지 했다.
1998년 출간된 『홍어』가 사람들의 심금을 달래준 건 이런 상황 덕이 있었다. 어린 시절, 궁핍했으나 그래도 따뜻했던 시절을 『홍어』는 사람들에게 환기시켰다. 1950년대나 60년대 쯤 경상도의 한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가며 집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한 소년의 성장담이 왜 이 시기에 그렇게 많이 팔릴 수 있었을까.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이 소설이 대중의 이목을 크게 끌어들일 흥미로운 내용이거나 감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치유와 위안이 필요한 시절이 IMF로 인해 도래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홍어』를 읽으면서 궁핍했던 과거의 삶에 묘한 공통의 정서를 느끼면서도 어린 시절의 생활과 추억에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현실의 엄혹함은 사람들로 하여금 과거로 눈을 돌리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게 평화로웠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궁핍했으나 평화롭고 따뜻했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며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잊을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홍어』의 주된 배경이 겨울이었다고는 해도 소설 속의 겨울은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이 아니라 함박눈이 내리는 포근한 겨울로 다가오는 것도 그게 평화로운 시골의 과거 어느 한 때였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홍어』가 평화롭고 따뜻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만을 담은 소설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홍어』는 한 소년이 성장과정에 겪는 내면의 고통과 갈등을 주제로 한 문제작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는 중요한 두 명의 여인이 등장한다. 이 두 여인은 주인공인 세영을 가운데 두고 서로 대척점에 있다. 어머니와 삼례가 그들이다. 어머니는 절제와 전통적 윤리에 충실한 분이고 지나친 절제는 세영이도 마음 깊은 곳에 반감을 갖게 만들 정도이다. 그에 반해 삼례는 자유분방하며 약삭빠르고 때로는 일탈적인 생활도 마다하지 않는 존재이다. 그래서였을까?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세영에게 삼례는 여성이면서도 그리움의 대상이다. 세영의 성장통에 삼례가 어지간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누이 같으면서도 여성적 존재인 삼례에 대한 그리움, 함께 살던 남자를 버리고 술집 작부가 되어버린 삼례에 대한 갈망은 세영이 남자로 성장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세영이 남자로서 여성인 삼례를 발견해가는 과정이 『홍어』의 주된 축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세영에게 삼례는 성적인 존재이면서도 일탈의 상징이기도 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세영이가 추운 겨울날 삼례를 찾아 읍내로 가는 발길을 멈추지 않는 것도 그가 단순히 여성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에 비해 어머니는 삼례와는 정반대 지점에 존재한다. 세영은 물론이고 스스로에게조차 엄하고 법도와 윤리에 어긋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존재가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집을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는 것만이 삶의 이유이고 여성으로서의 욕망도 억누른 채 살아간다. 자기 세계를 강하게 지키며 자기 원칙대로만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가는 어머니이다 보니 세영이가 본의 아니게 어머니의 일탈을 기대하게까지 되는 것이다. 한참 사춘기를 겪는 세영에게 어머니는 어머니인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고 아버지를 대신해 세상의 중심에 떡 버티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아버지가 부재한다는 사실이 문제적이다. 아버지를 상징하는 존재인 홍어가 사라지면서 모든 혼란이 시작된다는 것도 암시적인데, 삼례가 모자(母子) 둘만이 사는 공간에 틈을 뚫고 들어오는 것도 홍어가 사라지는 것과 때를 같이 한다. 아버지가 부재한 현실은 세영에게나 어머니에게 모두 현재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뜻한다. 함박눈이 그득히 쌓인 시골이 비록 평화로워 보이지만 아버지가 없으므로 완전한 평화는 아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어머니와 달리 윤리적인 사람이 아니다. 일종의 속죄의 의미로 낯선 곳을 떠도는 떠돌이 신세인 것이다. 작품의 말미에 아버지의 등장은 이런 불완전한 질서가 바로 잡히는 것으로 읽히기는 하지만 공교롭게도 아버지의 귀가는 어머니의 가출로 곧바로 이어지고 있다.
『홍어』는 평화로운 시골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이렇게 완전하게 충족되지 않는 가족과 그 가운데에서 사춘기를 겪으며 성년이 되어가는 세영의 눈을 통해 궁핍했던 시절의 삶을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눈 쌓인 시골의 풍경은 한가롭고도 낭만적이기는 하나 그 이면에는 성장통을 겪어내는 소년이 있고 떠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고독이 있으며 거친 세상과 싸워나가는 삼례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람들은 지나간 시절의 아련한 기억처럼 모두 아름다운 것이다. IMF 체제 아래에서 한국인들은 『홍어』를 읽으며 세영이가 겪었던 성장기의 고통처럼 현실의 고통이 한때의 지나가는 열병이기를 바랐던 것일지도 모른다.

1 9 9 8 년 교 보 문 고 베 스 트 셀 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