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소설 주인공보다 더 극적인 발터 벤야민의몇 가지 장면에 관하여

디지털 현실 속에서 구원과 신성을 성찰하다

라이따이한에 관한 거짓 혹은 진실

삶의 주인이 되는 길

선택과 배제를 넘어서

“내가 세상을 견뎌낼 수 있었다면, 그것은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해방구 학교 앞 막걸리집 산골소녀들은지금 어디에 있을까 레드 콤플렉스 번쩍했던 순간들 환멸의 기원

책상은, 책상이다?

운명, 미워하지 않는다

폭설 속에 새긴 궁핍한 시절의 꿈 하나

빈자리

신촌, 유령이 떠도는 거리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일제하 최고 베스트셀러,박계주 소설 『순애보(殉愛譜)』

문학은 시대를 성찰할 수 있는가 시 부문 - 낭만적 과잉의 시쓰기 소설부문 - 삶과 역사에 대한 노작가의 견인주의 평론부문 - 문학 , 밀거래된 꿈을 유통시키는 최후의 통로 번역부문 - 유려한 문장으로 원작 재창조

詩샘

판의 미로 데자뷰

밤에 듣는 밤 이야기

뻐끔담배 우산을 꽃이라 불러보는 오후 새들은 어디서 날아오나 시간을 담는 용기 흔해빠진 자살 여행

창작 후기

한 권의 책 속에 들어있는 사람들

글 이창숙_동화작가. 1964년생
동화 『매』『무옥이』『개고생』『효자동 파란집 장서민 대통령』『조선의 수학자 홍정하』 등

▲ 이창숙 © 운영자

영정 사진 속, 화가 선생님의 눈을 봤다. 잠자리를 잡으러 곧 들판으로 떠나는 소년처럼 천진난만해 보였다. 살아생전 단 한 번도 못 만나고 이렇게 삶과 죽음이 나뉜 순간에야 보는구나 싶었다. 우리는 같은 시대, 같은 나라 안에서 화가와 작가로 살았지만 직접 만나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 수 있는 인연은 아니었나 보구나.
부인과 아들이 맞절을 했다. 멀리서 어떻게 왔냐고 두 손을 잡는 부인은 뜻밖에도 화가 선생님과는 십 몇 년 전에 이혼을 한 사이라고 했다. 법적으로는 남남이 된 지 오래 되었지만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는 아들과 함께 화가 선생님이 머물던 시골집으로 달려간 사람. 그 분의 마지막이 너무 외롭지 않게 간간이 살펴보고 툭툭 털고 일어나라고 격려해준 사람. 정 힘들면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해 ‘애엄마가 오라지만 난 갑갑해서 서울로는 안 갈래요’라고 지인들에게 자랑처럼 말할 수 있게 해준 사람. 한없이 두려웠을 죽음의 순간에 옆을 지키며 손을 잡아주고 사흘 내내 조문객을 맞고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사람.
“아들이 있으니까요.”
그래. 우리 삶이 그렇지. 칼로 자를 수 없는 질기고 슬픈 관계들이 있지 않은가. 남자와 여자로서는 오래 전에 끝났고 조금의 미련도 남아 있지 않은 건조한사이겠지만 인간으로서는 차마 외면할 수 없는 투명한 끈들이 두 사람 사이를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그 끈은 평소에는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게 느슨하다가도 어떤 순간에는 서로를 은근하고도 묵직하게 끌어당겼을 것이다.
병 때문에 그리지 못한 그림을 자신이 대신 그릴 테니 마음 편히 가지라고 하고 부인은 글을 읽고 그림을 구상하고 색칠을 했다고 한다. 물론 부부 화가라서 가능한 일이겠지만 아무리 부부 화가라도 그렇게 결정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몰라라 해도 아무 상관없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흔쾌히 그림을 그리기로 하고 최대한 빨리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책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는 듯 참고 있다가 책이 나오자마자 하늘로 떠난 화가 선생님.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내내 차창 밖 어둠을 보았다. 어둠 속에도 집들이 있고 사람들이 있고 미움과 원망과 사랑과 연민들이 숨 쉬고 있을 것이다. 내 책 한 권 속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어있는 것일까.
처음 동화를 쓰면서 한 편 한 편 써두었던 단편들이었다. 40대 중반에 우연히 쓰기 시작한 동화는 나를 얼마나 매료시켰던가. 곳간에 곡식을 쌓아놓듯이 컴퓨터에 동화를 써 저장해 놓으며 얼마나 뿌듯했던지. 때로 내가 쓰는 글에 내가 감동받아 울며 쓴 적도 있었다. 글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 이야기 속에 내가 아는 사람들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가족, 친구, 지인들의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그 사람들을 생각나게 했다.
그렇게 써서 모은 단편들로 창작기금을 받게 되었을 때, 나는 당연히 곧 책으로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단편집이 내 인생 최초의 책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첫 출판사에서 일 년 반이 지난 뒤 흔쾌하지 않은 이유로(물론 나의 생각이다) 출간이 중단되었을 때에도 곧 다른 출판사에서 책으로 내리라 생각했기에 그다지 서운하지 않았다. 짐작과는 다른 일들이 인생에는 너무도 많다는 것을 알 만큼은 나이를 먹었을 때였으니까. 다른 출판사로 옮기고 나서는 수월하게 일이 진행 되어갔다. 교정을 마치고 화가 선생님에게 그림을 맡겼다는 연락을 받고 책이 나올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일 년이 지나도 화가 선생님이 그림을 보내주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의아했지만 믿고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또 한참이 지나서야 화가 선생님이 나쁜 병에 걸렸고 이미 돌이키기 힘든 지경인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제야 책 출간이 문제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마치 한참을 머뭇거리던 의사선생님으로부터 뱃속에 든 아이가 많이 아프다는 말을 들은 산모와 같은 기분이었다. 뱃속에서 몹시 아프고 태어난 아이에게 부모가 여러 가지를 바라지는 않을것이다. 그저 단 하나, 건강하기만 하다면.
나도 이 책을 보며 가만히 속삭인다.
‘고생했구나. 너는 그 자체로 나에게는 무한한 기쁨이란다. 고마워.’

※ 필자는 재단의 대산창작기금을 받아 동화 『개고생』을 2014년 상상의힘에서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