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주인공보다 더 극적인 발터 벤야민의몇 가지 장면에 관하여
“내가 세상을 견뎌낼 수 있었다면, 그것은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해방구 학교 앞 막걸리집 산골소녀들은지금 어디에 있을까 레드 콤플렉스 번쩍했던 순간들 환멸의 기원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일제하 최고 베스트셀러,박계주 소설 『순애보(殉愛譜)』
문학은 시대를 성찰할 수 있는가 시 부문 - 낭만적 과잉의 시쓰기 소설부문 - 삶과 역사에 대한 노작가의 견인주의 평론부문 - 문학 , 밀거래된 꿈을 유통시키는 최후의 통로 번역부문 - 유려한 문장으로 원작 재창조
처절하게 상징적인 꽃시들
글 김은경_번역가,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교수. 1959년생
- 스페인어역 송기원 시집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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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꽃을 시작으로 진달래, 개나리 또 모란, 구절초를 거쳐 동백꽃으로 끝맺고 심지어는 눈꽃까지 다양하게 다루면서 왜 작가는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이라는 제목으로 이 시집을 엮었을까? 왜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했을까? 왜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내 꽃이라 했을까? 어쩌면 이 시집의 번역 과정이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서시 「꽃이 필 때」에서 작가의 지나온 모든 순간이 꽃이라 했고, 또 그 꽃이 삶의 굽이굽이에 오지게 흐드러졌다고 했다. 꽃이 상징하는 것이 작가의 지나온 인생의 부분 부분 조각들이라면, 이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함은 못 보았다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자조적 표현임과 동시에 이제는 관조적으로 볼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를 드러낸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해석을 바탕으로 한 편 한 편 번역을 진행했다. 꽃을 소재로 삼아서 그런지 시집에 포함된 시들에서는 전반적으로 매우 서정적이고 순수한 감정이 느껴진다. 더구나 시집은 매 시마다 해당되는 그림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마치 시화전을 보는듯하다. 얼핏 제목이 시사하는 꽃의 시각적 이미지로 인해 각 시 구절이 마치 꽃에 대한 작가의 느낌을 눈으로 보는 듯하고, 그래서 외형 그대로 순수한 서정성 하나 만으로도 시를 읽는 즐거움이 느껴지며, 감정 이입 내지 감정 동화가 자연스레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비단 나만의 느낌만은 아닐 것이다.
시집은 6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는 ‘그대에게 가는 길’이라는 소제 하에 7편의 꽃시들을 수록했고, 2부는 ‘하르르, 황홀하게’라는 제목 아래 10편의 꽃시들을, 그리고 3부와 4부는 각각 ‘사방천지 꽃 향기’, ‘치자꽃 향기처럼’을 제목 삼아 각기 10편, 7편의 꽃시들을, 5부는 눈꽃시 5편을 ‘마지막 기다림마저 지워버린 다음’이라는 제목으로 엮어놓았으며, 마지막으로 6부에서는 ‘꽃봉오리가 터져나는 노래’ 아래 4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1부와 2부의 꽃시들은 마치 인생의 소년기, 청년기의 순수하고 열정적이며 다양하고 풍부한 감정적 체험을 시사하는 것 같고, 3부와 4부는 인생의 장년기, 노년기의 열정은 식어있을지 몰라도 깊이를 더해가는 감정과 젊음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을, 5부는 이미 모든 것을 체험해 어떠한 감정도 포용할 수 있고 그러므로 이제는 어떠한 감정에도 휘둘리지 않는, 어쩌면 이 시집을 엮은 작가의 현재의 내면을 반영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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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의 1부에서 5부까지 다루어진 내용들은 서시에서 밝힌 것처럼 삶의 굽이굽이에 오지게 흐드러진 꽃들에 대한 것이라면, 6부의 ‘꽃봉오리 터져나는 소리’는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었다기보다는 타인을 조명하고 그 아픔마저도 끌어안고 가는 느낌이다. 1부에서 5부까지의 경험과 체득을 통해 모든 환부, 치부를 극복하는 자비심을 얻게 되었음을 그래서 이제는 세상을 마주할 자신감이 생겼음을 작가는 6부를 통해서 드러낸다. 이와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면 어쩌면 1부에서 5부까지 이르는 논리체계에 다소 사족처럼 붙어있는 6부의 존재에 대한 작가의 의미부여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작가는 「마음공부에 대한 몇 가지 단상」(2008년, 작가세계)에서, “깨달음을 얻은 이들은 저마다 마음속에서 보물을 발견한 이들이라고 해도 좋을 터이다”라고 하며, 이어서 “비단 성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같은 평범한 이들도 저마다의 보물을 발견”할 수 있고, 어쩌면 “평범하면 평범할수록 더욱 많은 보물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하며 “문제는 그 보물의 실체를 발견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어서 “나에게 명상이란 그렇게 살기로부터 도망치려는 자신을 다잡으면서 하염없이 자신의 살기를 바라보는 것” 이며, “마침내 나는 마흔이 훨씬 넘도록 단 한번도 인정을 받지 못했던 그 생명의 에너지(살기)가 가여운 나머지 눈물이 났다. 그리고 그렇게 어롱어롱한 눈물 속에서 보물이 되었다”, “그 순간 보물이 된 것은 어찌 살기뿐이랴. 똥덩어리처럼 추악하기만 한 삶 전체가 한 송이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었다”고 하며 “모름지기 내 보물의 실체는 그처럼 혐오하던 자신의 삶 자체였던 것이다”라고 한 것으로 확인되듯이 어쩌면 이 시집은 일종의 자전적 시집으로 ‘자신의 삶’을 드러낸 것인지도 모르며 1부에서 5부까지는 자신의 이야기, 6부는 타인을 대상으로 한 자신의 이야기라 할수 있겠다.
번역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번역의 대상인 작품을 앞에 놓고 치밀하게 살피며 작가의 의도에 맞게끔 번역하고자하는 시각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필자가 오랜 기간 번역에 종사하며 도달한 일종의 지론이라면, 그러한 시각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진 번역물들이 해당 언어권 독자들에게도 그대로 반영된다는 것 또한 바로 그와 같은 지론을 더욱 공고히 해준 경험들이라 할 수 있겠다. 작가가 이 시집을 대상으로 김경미 시인과 나눈 대담에서 “탐욕을 버리는 것에 종교적 가치가 있는 거고, 탐욕 그 자체에서 값어치를 찾는 게 문학”이며, “서로 어울려 뒹굴며 사는 세상에서 그 탐욕이나 갈등 안에서 가치를 찾는 게 진정한 문학”이라 한 것처럼, 이 시집은 마치 작가의 문학관을 한 권의 시집을 통해서 간결하게 함축하여 나의 삶, 나아가서는 인간의 삶을 그리고 있다. 즉, 인간의 삶 속에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욕망들을 구도자의 마음으로 관조하는 것을 목표삼아 우리 문화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방법 대신 인종과 종교를 초월하여 이해가 용이한 보편적 진리에 가까이 가려는 방식으로 시집을 구성하고 있어 번역이 야기하는 A-B 언어 간의 의미적 비대응성을 최소화하고 있다. 한 마디로, 종교적 구도의 삶에 문화적으로 익숙한 스페인어권 독자들에게 더욱 용이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단지, 꽃이 내포하는 보편적 이미지를 욕망으로 점철된 삶, 아니면 욕망 그 자체, 나의 감정 등으로 상징화하여 이해하는 과정은 필자가 번역을 하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작가의 의도에 다가갔듯이 스페인어권 독자들도 필자와 똑같은 과정을 겪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아 있다. 시집 하나만 달랑 번역하여 스페인어권 독자들에게 작가를 제대로 소개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마치 장님 코끼리 만지기처럼 느껴진다. 시장통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시장 건달에서 문학청년으로, 인간에 대한 신뢰와 순수한 열정으로 여러 차례 감옥을 드나드는 민주화 투사로서의 경력을 안고, 인생의 고비마다 체험했던 격변하던 감정과 욕망들을 수많은 산문들을 통해서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공고히 한 이미 완성된 작가가 오랜 침묵을 깨고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이 단출한 시집에 담았다는 것을 독자들이 알고 있다면 이 꽃시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상징적인가를 알고 감동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다. 제대로 기회가 만들어진다면, 스페인어권 독자들은 세르반테스나 바이런 같은 그런 작가적 배경을 가진 작가로 이해하면서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집을 계기로 작가가 내놓은 초기 작품부터 하나하나 번역이 이루어져 작가에게서 세르반테스와 바이런을 느낀다면 우리 문학도 얼마든지 감동을 자아낼 수 있을 것이다.
※ 스페인어역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은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 지원을 받아 아르헨티나의 바호라루나 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
